8층 사람들
세상의 모든 가장자리가 좋았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세계를 내 안으로 함몰시켰다. 현실과 절연하면 할수록 나 홀로 누리는 골방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허나, 언제부턴가 서서히 밀실의 한계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내 안위의 진공 속에서 고독의 향락을 누리는 동안, 나 보다 더 아픈 이들의 간곡한 곡비曲庇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쯤, 기가 막힌 도피성을 찾았다. 숨어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자리, 자아를 세계화 할 수 있는 곳, 바로 수필의 성城이다. 이곳에는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 있다. 면면이 뭉클하다. 피해갈 수 없는 노안老眼으로 코끝에는 돋보기 하나씩 걸려있다. 지고 가는 생의 짐이 무거워, 턱 아니 괴고는 앉아 있을 수 없나 보다. 이래저래 빙 둘러앉아 있는 모습에서 뭔지 모를 아릿함이 느껴진다. 회룡포의 이슬방울 우주아이, 기와집 재건의 며느리, 땡큐 총무, 숨비소리, 포토 에세이 신영, 전국을 초토화시킨 수필의 귀재 가얏고, 굿닥터 정, 서예가 박사임당, 빗속의 소년 선두, 열정의 수필가 숲의 정령......, 이들은, 치열하게 걸어왔던 생의 고비만큼 험하고 높은 8층 사람들이다. 버턴하나 누르면 3초 만에 도달하는 이곳에 오르기까지 어찌 이토록 오랜 세월을 돌아왔을까.
누구나가 혼자다. 하지만 외로울 겨를이 없다. 글이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고독자들, 글벗이 있기에 그렇다. 버텨내기 힘들 때 8층으로 오면 된다. 생生이 더 모질게 느껴질 때면 글밭에 쪼그리고 앉아 뭐라도 쓰면 피가 돌고 솜털까지 살아난다.
아, 수필로부터 나 자신을 깊이 감춘 시간들이 아스라하다. 이제, 다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또 그럴 마음도 없다. 가쁜 숨 턱턱 막히는 수필의 고갯마루를 힘겹게 넘어가는 8층의 사람들과 함께, 수필의 성에서 천년만년 글놀이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화요일, 굽이치는 생업의 모퉁이를 지나 묵묵함으로 여덟 층을 오르내리다 보면, 머지않아 그 사무쳤던 영광이 쉼터처럼 기다리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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