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꽃 6짝 5동도
주인석
꿈은 많을수록 좋다. 또, 꿈은 펄펄 살아 날뛰는 생물일수록 좋다. 이 생물을 낚기 위해서는 꿈의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워야만 한다. 인생의 심해에서 꿈을 건져 올리는 일, 그 짜릿한 손맛은 ‘꿈의 낚시’를 해 본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다. 낚을 것이 많은 낚싯대가 춤을 잘 추듯이 꿈이 많은 사람은 삶의 리듬을 잘 탄다. 삶의 리듬을 타는 일, 그것은 꿈과 끊임없는 호흡 맞추기를 하며 떠나는 여행이다.
일전에 여수 관광을 하고 돌아왔다. ‘수필의 날’ 행사에도 참여하고 겸사겸사 나선 길이었다. 여수에서 이틀을 보내고 돌아와서 가슴과 머리에 내내 맴도는 말이 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여수에 내 섬이 있다.”
이 한마디는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여수의 작은 섬들을 보면서 여수의 꿈을 너머 미래의 내 꿈을 설계할 수 있었고 그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가슴 가득해서 세상이 달리 보였다. 사람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오히려 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곁에서 사람과 부대끼며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어쩌면 아름다운 꿈을 이루기 위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그 근본이 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미래의 꿈이 됨을 보아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은 섬들은 여수의 꿈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수에는 365개 이상의 섬이 있다고 한다. 일일이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그 정도 개수의 섬이 되는 모양이다. 이 섬들 중에 내가 가 본 섬도 있고 이름만 들어본 섬도 있는가하면 생소한 이름의 섬도 있다. 태초에 마고할미가 하늘에서 던져놓았던 조약돌이 뿌리를 내리고 앉아 섬이 되었던 것일까. 올망졸망한 섬들이 사람의 마음을 잡기에 충분한데, 각 섬마다 특징이 있으니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섬이라 하겠다. 여수와 여수의 섬들을 보고 있자니 이웃에 사는 자식 많은 호동댁이 생각난다.
우리 형제도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닌 육남매를 두었건만, 엄마는 늘 자식 많은 호동댁을 부러워했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호동댁처럼 엄마가 12남매를 두었다면 나는 천덕꾸러기였을 것이다. 내 이름을 한 번 부를라치면 큰 언니부터 차례대로 다 부른 다음, 맨 마지막에 나를 부르는 참으로 비경제적인 아버지의 호출도 그럴 것이고, 책이든 옷이든 대물림에 대물림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호동댁의 절반인 우리 형제의 수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나도 엄마처럼 형제 많은 집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키울 때는 힘들고 북적대서 정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형제자매가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명절에나 한 번씩 모이다 보니 식구가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일만 그러한가 싶었는데 여수에서 이와 같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여수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부모를 중심에 둔 자식들 같았다. 섬을 관리하느라 힘든 시기도 분명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섬들이 이제는 관광의 명소가 되어가니 여수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뿌듯할까 싶다. 도심이 전부인 다른 지역에서 보면 여수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잘 자란 자식이 부모의 꿈이 되듯이 바다에서 울퉁불퉁 자란 섬들이 여수의 꿈이 될 것이다.
큰 섬, 작은 섬, 꽃 섬, 모래 섬, 공룡섬 등 특징도 다양하다. 하나씩 재주를 가진 섬들이 이제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각자 할 일을 척척 알아서 해 내는 호동댁의 자식들처럼 여수의 섬들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지금까지 여수의 도심에서 해 내지 못한 일을 섬들이 해 낼 것이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루어 내서 부모의 한을 풀어주듯 여수의 섬들은 꿈의 대물림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여수에 가면 내 섬이 있다는 것, 참으로 매력적이지 않는가.
“여수의 365개 섬을 일 년 365일로 의미부여를 하려합니다. 지금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가족계획이고 관광계획인가. 여수의 섬은 ‘꿈의 섬’이고 ‘달력섬’이며 ‘생일섬’이다. 내 생일날 찾아가 쉴 수 있는 나만의 섬,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꿈을 설계하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섬을 가지고 있어. 너에게도 섬 하나 선물할게.”
생일날, 이런 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들으면서 여수의 섬으로 여행을 간다면 지상 최고의 생일 이벤트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이벤트를 덧붙이자면 날짜가 있는 달력섬, 생일날 찾아가게 되면 나와 생일이 똑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인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황홀한 인간관계가 될 것인가. 나와 생일이 같은 사람은 지구상에 몇 명이나 될까.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내 섬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우선 여수의 섬 중에서 특징이 두드러진 섬은 세 개의 꽃섬과 짝을 이룬 여섯 개의 섬과 이름만 들어도 동백꽃 냄새가 나는 오동도다.
“3꽃 6짝 5동도”
하화도와 상화도 오동도는 꽃섬이다. 상백도와 하백도, 추도와 사도, 대경도와 소경도는 짝을 이룬 섬이다. 그리고 여수의 대표섬 오동도다. 이외에도 짝을 이루고 꽃이 화려한 섬이 많겠지만 이름이 예쁜 섬을 먼저 골라 보았다. 이 섬들 중에 내 생일의 날짜가 꽂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불러본다.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관광은 ‘생물관광’이다. 우리는 싱싱하고 활기찬 것을 좋아한다. 이왕이면 꿈의 낚시를 해 볼 수 있는 곳, 그것도 펄펄 살아있는 ‘날 꿈’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관광지가 있다면 그곳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여행이 잦아졌으나 무미건조한 여행이 많다. 이런 때, 여수가 내 놓은 관광의 꿈은 많은 사람들이 삶의 리듬을 탈수 있도록 연주해 주는 ‘작곡의 관광’ 역할을 해 주었다. 내 몸이 악기가 되어 여수가 켜주는 곡에 맞춰 한 판 춤을 출 수 있는 곳, 바로 여수의 ‘꽃ㆍ짝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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