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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당신의 자장가/주인석/수필시대발표

테오리아2 2013. 1. 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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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장가/주인석

 

 

그리움이 사무치면 사람의 심장에서도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터질 것 같은 가슴에 베개를 덧대고 이불로 깁스한 채 잠든 시간이 쌓이고 또 쌓여 시계마저 바늘을 돌리기 힘든 듯 보인다. 생과 사의 별리로 부러진 인연의 뼈가 아직도 아물지 않아 불면의 밤을 보낼 때마다 퇴원을 꿈꾸며 가위표로 달력의 하루하루를 잘라낸다. 퇴원의 날을 ‘기일’이라는 글자로 보여주며 완전한 이별을 확인시켜주는 세월의 냉정함 앞에 내 가슴에서는 또 터짐소리가 들린다.

연분이라는 것도 생명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늘이 베풀어준 인연으로 이생에서 아버지와 딸로 만나 43년을 피와 살을 나누며 살아주고 떠났으니 당신은 연분의 도리를 다 하고 떠난 셈이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날 수 있는 인연이 이어진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의 아버지가 되어 꼭 해 주고 싶은 것이 있노라며 달력에 배인 눈물을 눌러 닦는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는 손수건만 필요한 줄 알고 살아왔다. 당신이 떠난 다음에야 나는 당신보다 더 당신 같은 사람의 품에서 당신을 발견했고 그의 가슴에서 손수건이 아니라 ‘당신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당신처럼 이별하고 난 뒤에 애틋해하는 사랑이 아니길 바라며 울꺽울꺽 올라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누르느라 목젖에 힘을 주며 그의 목을 틀어 안는다. 당신은 내 손을 맨 처음 타인에게 건네줄 때도 눈을 감았다. 딸을 ‘치웠다’며 한 짐 덜어낸 당신의 평안을 그렇게 표현하더니 마지막을 또 그렇게 눈을 감고 당신은 영원한 안녕을 맡기고 떠났다.

그 옛날에도 오늘처럼 그랬다. 한 여름 더위에 예민하여 잠 못 이룬 나, 오빠랑 다투어 엄마에게 야단맞고 훌쩍이던 나,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나를 업고 당신은 노래를 불러주었다. 당신의 등에 내 심장을 겹쳐 붙이고 당신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고 당신을 끌어안았다. 노래가 동일한 구절을 반복할 즈음 내 손엔 힘이 빠졌고 나는 엄마를 원망하기보다 당신을 사랑하면서 잠이 들었다.

당신의 자장가는 사랑의 묘약이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두려움과 불안증을 보인 내게 온갖 감정의 상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약을 달고 산다며 타박 아닌 타박으로 안타까운 속내를 하소연으로 드러낸 엄마로부터 분리시켜 통증을 달래준 다음, 잠 못 이룬 나를 잠에 빠져들게 해 주었다. 아무렇게나 지어낸 당신의 반복된 곡조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평상시 바람을 말로 담은 당신의 가사는 나를 자신감 있게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뜨끈한 등을 타고 울리는 음성은 주제가 되풀이되고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처음에는 경쾌하게 시작되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느려지는 당신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절묘한 론도소나타였다.

자장자장 우리 경아 잘도 잔다.

꼬꼬닭아 울지 마라 멍멍개야 짖지 마라.

모기들아 물지 마라 벌레들아 오지 마라

자장자장 우리 경아 잘도 잔다.

우리경아 울지 마라 우리경아 야단맞지 마라

우리경아 아프지 마라 쑥쑥쑥쑥 자라거라.

자장자장 우리 경아 잘도 잔다.......

그날 일어난 일을 즉흥적으로 읊어가며 반복된 곡조를 붙여 불러주는 것이 당신의 자장가였다. 점점 횟수가 줄어가긴 했지만 내가 결혼하고 난 뒤에도 당신의 자장가는 계속 이어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저녁이 아닌 새벽에 불러졌다는 것이고 잠을 재우는 것이 아닌 깨우는 것이었다. 친정집에서 당신과 함께 자는 새벽이면 당신의 자장가는 어김없이 내 잠을 깨웠다. 칭얼거리는 이가 없어지자 당신의 자장가는 시간 인지가 없어지더니 지금은 북망산천의 노래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당신과 나 사이에 특허 낸 자장가는 필연의 노래가 되어 내 아이들을 키워냈고 지금도 불러주고 있으니 당신의 자장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그리 섧다 할 일만은 아니라고 자위해 본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당신의 자장가보다는 ‘모차르트 자장가’와 ‘섬집 아기’를 불러주었다. 당신의 자장가는 어쩐지 촌스럽고 뭉텅뭉텅 썰어 놓은 고깃덩어리 같아서 불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동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가사 내용을 따져 묻기 시작했다. ‘잘 자라 우리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중략) 온 누리는 고요히 잠들고 선반의 생쥐도 다들 자고 있는데 뒷방서 들려오는 재미난 이야기만 적막을 깨뜨리네.’ 새들과 아가 양은 어디 있으며 선반의 생쥐는 왜 이렇게 일찍 자며 뒷방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뭐냐고 물었다. 또 ‘섬집 아기의 엄마는 왜 아기를 혼자 두고 굴 따러 갔느냐’고 캐물으며 ‘엄마도 우리를 두고 혼자 어딜 갈거냐’고 했다. 따뜻한 감성을 심어준다고 불러주었던 노래가 오히려 현실감 떨어진 노래가 되고 말았다.

아이들의 말이 맞았다. 아니 당신의 자장가가 맞았다. 그때부터 나는 ‘당신의 자장가’를 어설프게 불러주었다. 아이들이 ‘구름다리’라 부르는 내 팔로 양팔베개를 해 주고 몇 가지 곡조에다 가사를 지어 불러주었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처럼 일상의 노곤함이 있었다. 처음에는 가사를 듣느라 속눈썹이 달달거리다가 반복된 구절이 나오면 이내 쌕쌕 소리를 내며 구름다리를 건너 잠에 빠져 들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큰 시련이 왔다. 희망했던 학교에 가지 못하자 몇날며칠을 낙담했고 나는 아들을 안고 밤마다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곁에 있다’고 나도 모르게 촉촉이 젖은 음성으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아들을 위해서.......

그런데 나는 왜 사십년 넘게 ‘아버지’라 불렀던 당신에게 단 한 번의 자장가도 불러주지 못한 채 이별을 했을까. 당신이 한 달 넘게 중환자실에 있을 때, 화장을 결심한 오빠가 원망스러워 당신에게 일러바치듯 ‘빨리 낫지 않으면 오빠한테 뜨거운 맛보게 될거라’고 지청구만 했지 당신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생각은 못했다. 열 개도 넘는 호스가 당신의 몸을 파고들고 끝내는 산소호흡기가 당신의 입까지 막아버리는 상황에도 나는 구경만 하고 서 있었다. 면회시간마다 ‘아부지, 아푸나?’ 물었을 때, 당신은 미세하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나는 당신의 아픔을 눈물로 밖에 나눌 줄 몰랐다. 그때 한 번이라도 당신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더라면 고통을 이겨내고 잠들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신과 내 연이 다시 닿는다면 내가 당신에게 꼭 해 주고 싶은 일이 이것이었다고, 때늦은 깨달음으로 가슴 앞자락을 쥐어뜯는다.

가슴을 지불해야만 나오는 노래, 자장가는 아기를 위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기까지 인생의 절반을 투자했다. 동일한 음에 반복된 가사가 가지는 주술의 힘은 부모가 아기에게, 연인이 연인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그리고 자식이 부모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불러줄 때도 똑같은 에너지를 낸다. 스킨십을 동반한 당신의 자장가는 보채는 영혼을 어르는 마법의 약이 될 것이다. 누구든 실천만 한다면.

 

 

출처 : 주 인 석
글쓴이 : 이담주인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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