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옥의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 떠나기 서평>
순응과 수용, 서정의 개울에서 서사의 천렵
수필가 주인석
1. 단상
작가가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육십년 동안 산책길에서 주섬주섬 주워 모은 것들을 옹골지게도 묶어 두었다. 바람을 따라 걸었으나 바람 들지 않은 삶, 이리저리 거닐었으나 결코 비틀거리지 않는 삶이 51편의 수필로 몸을 풀었다. ‘산책’을 읽으면서 ‘정말 진솔한 작가’라는 말이 자꾸 되씹어진다. 꾸밈없는 원석의 문체에 순응의 삶이 숨겨져 있고, 걸림 없는 서술에 수용의 삶이 녹아 있다.
순응하며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작가는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남들은 밤이 어둡다고 말할 때, 작가는 새벽이 오기 전까지 달을 보며 두 손을 모으는 시간이라 말한다. 또, 남들은 이별이 아프다고 말할 때, 작가는 만남이 오기 전까지 옷에 베인 아이의 우유 냄새를 맡는 시간이라고 한다. 작가는 순응을 기다림이라고 은근 슬쩍 말하고는 뒤로 빠진다.
사십 년 전, 남편을 만나게 해 준 대나무 바지랑대가 한없이 정겨워서 만져주었다는 작가는 대나무 하나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인연이 있었다고 받아들인다.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에 대한 끝없는 사랑, 부족한 것 없이 살면서도 허투루 살지 않는 검소함, 반평생 교직생활을 하였음에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 마음이 작가가 가진 세 가지 수용의 보석이다.
원석에서 보석을 캐내는 일, 그것은 문학의 천변에서 언어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야기를 건져 올리는 작업이다. 서정 수필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서사 수필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이때, 작가가 보여준 서정적 배경은 잊히거나 잃어버릴 우리의 정서를 건드려주고, 여기에 덧붙여 소소한 일상을 옆 사람에게 들려주듯 그대로 열거하는 일은 서사 수필을 받아들이면서 서정 수필까지도 맛보게 해 준다. 이선옥 수필가의 첫 작품집 ‘산책’을 읽는 것은 서정의 개울에서 서사의 천렵을 하며 문학을 즐기는 나들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
2. 산책
이선옥 수필가의 ‘산책’은 사단과 칠정이 고즈넉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묘한 재미가 있다.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해명하고 그 인간성을 찾아내며, 우주 속에서 인간의 지위와 가치를 찾아가는 이순耳順의 인간학이다.
‘산책’은 5부 51편의 수필로 서정을 살려 서사를 돋보이게 한 구성이다.
1부에는 작가의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 이에 호응을 맞춰준 가족들의 응원이 담겨 있다.
먼 하늘 끝에 어머니가 계시긴 한데 뵙지 못하고 편지만 받게 되어
평소에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울었습니다.
고향 소식이 목마를 때마다 어머니가 쓰신 삐뚤빼뚤한 옛글자,
그건 아픔 같은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중에서-
영국에서 오랜만에 보름달을 본다.
화들짝 놀라며 습관적으로 달을 향해 두 손을 모은다.
그립던 옛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눈시울이 젖는다.
나를 알던 사람들도 이 달을 보고 있을까?
미신적인 것일 지라도 소원을 비는 존재가 있음은
큰 재산을 갖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을보며-
계단을 오를 때나 껌껌한 만장굴을 걸을 때는 부축을 하려고 해도
엄마는 시어머니 눈치를 보시고 잡으면 더 불편하니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부터 먼저 차를 태워 보내 드린 다음에,
시어머님이 안 계시니 눈치 볼 일이 없어서
걸음이 좋지 않은 친정어머니를 업고 우정 지하도를 건너서 시내버스에 태워드렸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친정어머니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 -딸과 며느리-
그 분이 미쳐 버리지 못한 묵은 것들을 정리하면서
생명 있는 씨앗들만은 아이들이 소중히 받아 온 것이라 생각하니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나팔꽃을 키우며-
등산을 하면서 내 건강상태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고,
남편과의 정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꼈다.
남편 왈 산악회를 만들어 자주 산행을 하자면서
산악회 이름은“둘이 산악회”로 하자고 했다.
산악회 대장은 내가 맡고 자기는 대원이라고 해서 함께 웃었다. -등산-
20대에 내가 강물에 떠내려가 사라졌더라면 너무 억울했을 것이다
더구나 아무 죄 없는 우리 오빠를 멀리 보냈다면
그 죄 까지도 받아야 하지 않았겠는가.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더라면 그동안 너무 욕심내어 살았던 것을 만회하지 못해서 부끄러웠을 것이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고서야 착해지는가 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
한 해는 열무가 하도 많아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차 트렁크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노다지로 열무를 싣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문수경기장 주차장을 찾았다.
뜻밖에 “이것, 공짜로 줍니까?”하면서 달라는 남자들도 있었다. -모전여전-
우리는 결혼을 했다. 바지랑대를 걷어차고 8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결혼 후 처음 시댁에 가자마자 문제의 바지랑대를 보니 감회가 깊었다.
굵은 대나무로 된 바지랑대는 비바람에 시달려 퇴색되고 낡았지만
오랜 손때의 흔적에서 예의 그 바지랑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굵고 긴 바지랑대가 오래 잊었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갑고 정겨워서 한없이 어루만져 주었다. -바지랑대 인연 -
그 동안 얼마나 예쁜 짓을 많이 했는지 우리의 혼을 다 빼 버렸다.
잘 웃고, 소리 지르고, 때로는 의젓하던 우리 아기가 떠나고 나면
허전해서 어찌할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외손자에게 해줄 것도 없고 기분이 허탈해서 아기 손수건을 몽땅 다림질했다.
둥지에 털만 벗어놓고 날아간 새처럼 아기는 조가비만한 옷을 벗어두고 갔다.
옷에 베인 아가의 우유 냄새를 맡으려고 그 옷은 씻지 않기로 했다. -외손자를 보고-
삐뚤빼뚤한 글자에 정을 느끼고, 달만 보면 손을 모으는 사람, 친정엄마를 업고 뛸 줄 아는 막내딸, 차마 버리지 못해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살려내고, 둘이 산악회를 도모할 줄 아는 사람, 걷어찬 바지랑대 인연으로 부부가 되어, 손자를 보고, 우유 냄새를 맡으며 그리움을 잊으려고 손자의 옷도 씻지 않은 채 보관하는 작가의 인간적인 모습은 ‘따뜻하다’ 말하기 보다 ‘뜨시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 그 정제되지 않은 본심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작가는 결코 감정을 남발하지 않는다. 작가의 기본자세 중 으뜸을 지켜낸 셈이다. 작가의 산책이 가벼울 수밖에 없는 것은 신이 주신 그대로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가슴으로 녹여버리기 때문이다.
2부에는 작가가 반 세월을 교단에서 보내면서 꿈을 꾸고, 꿈을 펼치고, 꿈을 이루는 과정이 오롯이 들어 있다.
퇴직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이 하도 많아서 굶주린 상태였으므로 한꺼번에 모두 하려고 했다.
그것이 빛나는 나의 삶이라 생각하고 원도 한도 없이 해 보았다.
그러나 제대로 되는 것은 없었고 만족은 어디에도 없었다.
배움이란 똑 부러지게 일시에 성과가 나는 것이 아니니
한 가지를 제대로 배우려면 몇 년씩 걸리기 마련이다. -달콤한 휴식-
나의 일을 위해 가정을 팽개치다시피 하는 자신이 죄스럽다.
중학생인 딸에게 밥을 해먹고 도시락을 싸가게 하는 내가 잔인하고 아이가 애처롭다.
아직도 막내는 엄마 옆에만 있으려고 하는데......
그러나 길은 하나다. 오늘은 봉급날이다.
사실 지난밤에는 잠을 세 시간 정도나 잤는지 모르겠다.
얼마를 받을지 모르나 그 돈을 남편에게 갖다 바쳤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떨어져 살면서 남편과 아이들 고생시켜서 번 돈이니 물질적으로라도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충청도에서의 교직생활-
가을을 서늘한 바람에 나뭇잎들이 서걱거리며 슬픈 몸부림을 치는 조락의 계절
또는 남성의 계절이라 말한다.
춘여사(春女思) 추사비(秋士悲)라고 했던가.
봄날의 여인은 사랑에 설레고 가을철의 선비는 슬픔에 빠진다는 뜻이지만,
가을 슬픔이 어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하기야‘가을타는 여자’란 노래도 있듯 나는 누구보다도 가을을 많이 탈 사람이다.
“느티나무 낙엽은 운치를 위해서 이틀에 한 번씩만 쓸도록 하세요.”-11월의 나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OX퀴즈 문항 중 하나는
‘교장과 교감이 줄넘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이었는데 교감을 택한 아이들이 승리를 하였다.
교장이 양보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것이야말로 복불복이었다.-운동회-
부임한지 며칠도 안 되었지만 급한 김에 치마를 입은 채로
톱과 낫을 들고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오엽송 가지가 땅에까지 닿아 있어서 두 가지 정도를 톱으로 잘라내니
산뜻해져서 보기가 좋았다. 저 여자가 웬일로 저리 별나게 설치나?’
나무 가지 사이로 햇볕이 들어오고 새들이 폴폴 날아다니니 소나무가 싱글벙글 웃는 것만 같았다.
새들이 가지위에 올라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까불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마치“여기가 내가 앉았던 가지가 맞느냐? 그 나무가 맞니?”라고 묻고 있는 듯 했다. -학교 숲 가꾸기-
책상 옆에서 뭔가를 가득 넣어 어수선하게 테이프를 발라놓은 헌 종이 가방 하나를 발견했다.
열어보니 간장 한 병과 된장 한 통을 넣고 그 사이에 신문지를 구겨 넣어 고정시킨
정이 듬뿍 묻은 선물 가방이었다. 선물가방 안에는 메모지 한 장도 남겨져 있지 않았다. -선물-
설익은 밀을 불에 거슬리고 비벼서 밀알을 분리하여 간식으로 먹던,
삶의 슬픔과 낭만이 어려 있는 초여름 농촌 문화의 하나이다.
‘밀을 불에 사르다.’가 줄어서 된 말이다.
밀사리하던 아련한 옛 추억이 그리워 지난 가을에 텃밭에 밀을 조금 심었다.
“오늘은 여러분들과 밀사리 체험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밀사리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에
덜 익은 밀을 불에 거슬려 먹었던 최고 맛있는 간식입니다.” -밀사리 체험 행사-
두세 달에 걸쳐 새로 옮긴 학교의 전교생 인사말을“사랑합니다.”로 바꾸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다.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이 자꾸 뒤돌아 보여서 나 혼자서“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쓰기 투쟁을 시작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마술이 들어 있는 인사말이다. -사랑합니다 그 마술의 말-
하고 싶은 일이 하도 많아서, 내 일을 위해서 가정을 팽개치는 죄스러움으로 월급봉투를 통째로 남편에게 바치고 싶다는 사람. 가을 타는 여자, 전교생을 대상으로 ox퀴즈를 하고, 치마를 입은 채로 톱을 들 수 있는 여자, 신문지를 구겨 넣은 된장 간장 선물 상자에 감동하는 사람, 슬픔과 낭만이 배인 밀사리를 먹으며 얼굴을 숯검댕이로 만들면서도 웃는 사람, ‘사랑합니다’ 그 마술의 말을 혼자 투쟁하여 전교생에게 전염시킨, 꿈으로 시작하여 꿈으로 끝장을 보는 작가를 보면서 자연에 흡수되고 자연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작가는 삶에 대한 통찰력을 체험을 통해 말하고 있다.
3부에는 작가가 노후에 꿈꾸어 오던 황토집을 지었다. 그림 같은 마을에 지은 집은 순응과 수용의 결실을 똑똑 따서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과거를 하나씩 정리하여 현재의 책꽂이에 꽂아 나가고 있다.
산과 들은 옛 그대로인데 예전에 함께 지냈던 친구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노인네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우리 집은 주인이 바뀌어 낯선 사람이 보금자리를 틀고 있다.
부엌 뒤 참감나무 위에 널빤지를 깔아 원두막을 짓고, 거기서 책을 읽던 오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향1-
길 양편에 늘어선 집들의 택호를 마음속으로 불러가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유년 시절의 친구들이 하나씩 얼굴을 내밀며 내 뒤를 졸졸 따라 오는 것 같았다.
우리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고,
큰 언니의 비밀을 눈감아 주고 얻어먹었던 사탕 맛도 달디 달게 전해 왔다.
마당에 평상 깔고 어머니가 감자와 애호박을 넣어 끓여 주시던 구수한 수제비 냄새도 풍겨왔다.-고향2-
보기 좋은 집과 살기 좋은 집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겨울이면 대청마루 틈 사이로 칼바람이 올라오는데다,
둘이 누우면 몸이 붙을 정도로 작은 방엔 불을 많이 때어도
한 겹 창호지 문으로 겨울바람을 막지 못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10톤이나 되는 자갈을 싣고 남편은 리어카를 끌고 나는 뒤에서 밀며 마당에 실어 날랐다.
리어카에 복숭아 뼈를 다치고 삽질로 손바닥에 물집이 생긴 덕으로 마당은 환골탈태를 했다. -시골집을 가꾸며-
「치술령 산자락에 마음 다스리는 작은 집을 짓다 2005. 5. 10 입주 상량」
「새소리 들으며 차를 끓이고 차 한 잔 머금으니 마음이 맑아오네 2005.5.10」-황토집 상량식-
빨랫감을 모을 필요도 없이 생기는 대로 빨래터에 앉아서
빨래 방망이로 빨랫감을 두드린다.
옛날 시어머님이 쓰시던 방망이로 두드리면 어머님의 애환이 아련하게 전해져 온다.
동네에서는 ‘손빨래를 즐기는 사모님’이라고 소문이 났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곳에 상주하면서 텃밭에서 일하고
흙 묻은 빨래를 방망이로 탕탕 두드릴 힘이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빨래터-
여러 가지 그릇에 흙으로 밥을 만들어 담고,
물에 풀잎을 띄우고 썩어가는 나무를 찧어서 만든 참깨를 뿌리면 흡사 국 같아서 마시고 싶었다.
나물도 담고, 흙을 차지게 반죽하여 떡도 만들어 담아서 그럴싸한 밥상을 차려 놓고......
요즘 남편과 나는 소꿉을 산다.
어린 날에 소꿉을 살며 만들었던 가짜 음식 대신에
온갖 꽃들을 수조와 화분과 석부작 돌에 담아 죽담위에 한 상 가득 차린다.-미니꽃밭의 소꿉놀이-
소나무는 y자형으로 생겼는데 y자는 yes의 이니셜이므로
우리가 긍정적인 삶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소나무-
남편이 정성스레 쌓아놓은 장작개비를 어찌 축낼 수 있을까.
난로에 얹힌 큰 주전자에는 언제나 전통차가 끓고 있어서 손님에게 커피대신 대접하면 좋아들 한다.
지난 가을에 사두었던 고구마를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난로위에 두면 달디 단 냄새를 풍기면서“찌지직!”소리를 내면서 익는다. -나무난로에 불을 피우며-
우리 마을은 18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주말에 좀 늦을라치면 빨리 오지 않는다는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웃을 마치 오래 헤어져 있던 혈육을 기다리듯 목을 빼서 기다리는데......이 나이에 어디 가면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문원골-
밭이 작아도 할 일이 많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고, 때 맞춰 씨앗을 넣거나 모종을 심지 않으면 제때에 나는 채소를 그해에는 먹을 수 없으니 여간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텃밭 가꾸기-
참감 나무 위에 널빤지로 지은 원두막을 찾으며, 어린 시절 들었던 택호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추억속의 친구를 불러내는 사람, 둘이 누우면 몸이 붙을 정도로 작은 한옥 방을 만들고 정원을 꾸미며 행복해 하는 사람, 새소리 들으며 차를 끓이고, 빨래방망이 두들길 힘을 주십사고 기도하는 사람, 육십의 나이에도 소꿉놀이를 할 줄 아는 미소녀, 'YES''를 입에 달고 초긍정으로 무장한 삶, ‘찌지직’고구마 익는 소리는 문원골의 18세대의 생활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동네, 그곳에서 작가는 제2의 인생을 열면서 사물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글쓰기의 노른자, 그것은 작가의 참신한 시선이다.
4부에는 작가가 천렵에서 느끼는 재미를 별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열여덟 가구가 한 가족이 되어 떠나는 여행, 냇물에서 놀이로 하는 고기잡이는 그야말로 별난 맛에 별난 흥이 담겨있다.
처음 천렵을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귀찮다는 생각이 앞서서
거절할 핑계를 찾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근심 걱정 다 놓아버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떠들고,
웃고,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 옛날 마을 전체가 화전놀이나 단풍놀이를 하던 문화를
이 동네 사람들이 이어가다니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천렵1-
준비물을 보니 예사롭지 않았다.
그들은 큰 망치, 뜰망, 바케쓰, 바가지, 체, 지렛대 등을 준비하고 장화로 무장을 했다.
망치로 물에 잠긴 바위를 때려서 물고기를 순간적으로 기절시켜 잡는다고 했다.
천렵을 할 때마다 살생죄와 재미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오늘은 더욱 그렇다. -천렵2-
‘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좋지만 저 늙은이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눈초리로 보던 사람들도 내가 그럭저럭 자리를 지켜내니 신기해하며 칭찬을 했다.
내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족구-
밀알 껍질이 약간 검을 정도로 그슬렸다.
한 팀은 밀을 사위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한 팀은 그슬린 밀 이삭들을 고무 통에 모아서 비벼댄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슬리는 이도 비비는 이도 재미있어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무래도 비비는 사람이 더 많이 먹게 되어 있다.
밀이 다 그슬려지자 이삭들이 담긴 고무 통 2개에 사람들이 붙어 서서
밀을 비비고 불어서 입에 검댕이를 묻히며 먹기 시작했다. -추억의 밀사리-
세월을 붙잡을 수 없어서 어느덧 예순을 넘어서게 되었다.
폐경이 된 어느 날부터 근육이 뭉치고 뼈가 뻐근해지더니 골다공증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신장과 장에도 이상이 오고 혈압도 많이 올라갔다.
내 건강에 적신호가 오다니 믿기지 않았으며 공포가 밀려왔다. -걷기운동-
내가 전원주택을 마련한 것은 시골 생활에 대한 향수가 그리웠던 탓도 있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은퇴 후에 공기 좋은 곳에서 남편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독서를 하며 조용하게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때로는 혼자이고 싶다-
나는 행여 아주머니의 자존심을 건드릴까봐 조심스럽게 불렀다.
메뉴판을 내놓았다. 아주머니는 약간 계면쩍어 하면서‘뭐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라는 표정으로
받으시더니 물건 뒤에 쓱 밀어 넣어버렸다.
황급히 자리를 뜨면서 할 말은 해야겠기에
“그 종이판 뒷면에 양면테이프가 붙어 있으니 저것 떼고 이것으로 붙이면 되겠네요.”
하고는 도망치듯 돌아 나와 버렸다. -메뉴판-
화전놀이나 단풍놀이를 천렵으로 대신하는 사람들 틈에 끼여 망치로 돌을 두들겨 고기 기절시키는 것을 배우고 살생죄와 재미사이에서 쩔쩔매는 사람, 할 줄 아는 것은 없어도 자리를 지킬 줄 아는 의리와 밀사리의 추억을 되찾아 실천할 줄 아는 사람, 폐경이 되어 건강에 적신호가 왔으나 걷고, 차 마시고, 책 읽으며 극복할 줄 아는 여자, 엉망인 메뉴판을 새로 만들어주며 도망치듯 부끄러워하는 소녀 같은 사람을 이웃으로 둔 문원골 식구들은 오히려 작가를 두고 별난 이웃이라 말할지 모른다. 평범하면서도 신선한 문체와 예사로운 것 같으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소재를 다루어 글로 뽑아내는 것은 이선옥 수필가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5부에서는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깊은 울림이 있다는 것을 유미주의로 풀어나갔다. 작가는 4부까지 수필의 다섯 가지 관점을 끌어와 자연스런 글쓰기를 이끌어내고 표시내지 않고 자연으로 산책을 떠났다. 이로써 수필의 일곱 가지 관점이 ‘산책’ 속에 모두 용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쁜 새가 알을 낳았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지난주에 심은 단풍나무와 벚나무에 물을 주었다.
우리가 들락거리면 혹시라도 새들이 신경질이 나서
알을 돌보지 않을까봐 소리를 죽여 조심조심 다녔다.
뜰에 나갈 일이 있어도 우리는 죄인 아닌 죄인처럼 새들에게 미안해하며 조심했다.-새알-
울타리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을 생각하며
어느 저녁 무렵에 남편과 모의를 하여 그야말로 도둑질을 하러 다시 리조트로 갔다.
지천으로 늘어져 있는 줄기를 좀 꺾어 온다고 그리 죄가 되랴 하는 생각을 하며 용기를 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한줄기 훔치려니
어떻게 마음이 떨리는지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홍인동-
마을 맨 앞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집의 외등들은
마을의 밤을 아름답게 만드는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집들이 모두 불을 켜도 우리 집 불이 켜지지 않으면 앞니가 빠진 것 같아서 김이 샌다며,
우리가 불을 켜 주면 이웃들은 신이나 한다.
그래서 이웃들이 저녁에 손님을 친다면 ‘불 부조’를 해야 하는 의무감으로 시골 동네로 달려간다. -정원등-
집 근처 고갯길을 오르고 있는데 핸들을 잡은 손 바로 앞 계기판에
도마뱀이 며칠 동안 굶어서인지 빼빼한 몸으로 앉아서 정면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마뱀이 떨어지는 순간 기절을 하거나 죽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사뿐히 내려 앉아 졸졸 기어갔다.
노상에서 차에 치어 압사당할까 봐 솔가지로 쫓아서 산으로 보내주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도마뱀-
방금 산비둘기 한 마리가 높다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겨울 지내기가 힘들었을 텐데도 봄기운이 털에 닿아 그런지 털색이 곱고 반지르르하다.
이름 모르는 커다란 새 한 마리는 대문 옆 큰 소나무위에서 계속“삐삐삐삐!”거린다. -봄의 빛깔-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새 생명체가 처마에 살고 있다.
처마 밑에서 작지만 여치소리보다는 강한‘짹짹!’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체체체, 짹짹!” 틀림없이 새 새끼가 알에서 부화된 소리였다. -생명이 잉태되는 우리 집-
원두막 마루 바닥에 쥐의 머리와 꼬리가 가지런히 정돈돼 있고
주변에 피가 낭자하게 흘려져 있었다. 소름이 확 돋아났다.
원두막 바닥은 지상에서 1.3미터 높이에 있는데,
고기 좀 주지 않는다고 쥐를 잡아서 하고많은 자리를 두고
높은 원두막에 물고 올라와서는 매트위에서 그것을 희롱하고 놀다가
잔인하게 해체를 해서 몸통은 먹고 머리와 꼬리를 가지런히 남겨놓은 것이었다. -고양이의 앙갚음-
벌집은 색깔이 고상하고 무늬가 우아해서 예술적이었다.
멋있는 집과 사나운 벌! 매치가 잘되지 않았지만 나는 벌집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어떻게 저렇게 둥글고 예쁜 집을 지을 수 있는지 감탄한 나머지 떼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떼지 말자고 한 이유는 더 있었다.
벌집이 4m도 넘는 높이에 매달려 있어서 우리가 해코지하지 않으면
사람을 해칠 염려가 없었고, 저들도 살려고 나왔는데 죽이는 것은 아니다 싶어서였다. -벌집 퇴치-
예쁜 새가 돌틈에 알을 낳았다. 정원이 더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남편과 모의 끝에 꽃도둑이 되기로 했다. ‘불 부조’는 마을의 아름다운 밤을 만드는 가장 큰 역할이었다. 나를 위협하고 노려보는 도마뱀조차 도로에서 차에 압사 당할까봐 솔가지로 ‘훠이, 훠이’ 산으로 보내주는 사람, 대문 옆 큰 소나무에서 ‘삐삐삐삐’울어대는 새, 처마 밑에서 종족 번식을 하는 새와 말벌, 그들이 지은 집의 아름다움에 빠져 ‘적과의 동거’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어찌 ‘미를 위한 미’의 작가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3. 서정의 개울에서 서사의 천렵
이선옥 수필가는 감정을 절제 할 줄 알고, 삶을 살펴 볼 줄 아는 혜안이 있고, 사물을 보는 남다른 눈이 있고, 쉽게 이야기하는 듯 하나 깊은 울림이 있으며, 평범 속에 튀는 소재가 있고, 구어체를 쓰나 군데군데 신선한 문체를 부릴 줄 안다. 이와 같이 수필의 요건을 골고루 갖춘 점도 칭찬할 만하지만, 무엇보다 가치가 있는 일은 체험을 중심으로 쓴 글이라 사유가 다소 부족했는데 이를 유미주의로 커버했다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글쓰기의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잘 쓴다 못쓴다’가 아니라 수필을 다 읽었을 때 ‘인간적인 냄새가 나도록 글을 완결을 했느냐’에 있다.
이선옥 수필가의 글 속에는 언뜻 언뜻 외로움이 보인다. 외로워질 때 시간은 길어진다. 작가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서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없앴다. 밖으로는 최대한 단순해지고 안으로는 최소한 깊어질 때, 우리는 외롭지 않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외로울 때 달을 보세요. 외로울 때는 자연을 가꾸세요. 외로울 때는 언어의 떡밥을 들고 천렵을 떠나세요. 그리고 그대 곁의 사람들을 보세요.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어요. 그것을 알아야 해요.’
그의 수필은 촌스러움과 도시스러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중주 산책이다. 평범한 화소로 편안하게 구사하는 능력, 삶을 부리는 이선옥 수필가의 ‘산책’에 동행해 보라. 2012년 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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