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 억식이의 報恩
갯바람 매서운 이른 봄날, 막바지 채취한 물김을 한가득 지고 걸음을 재촉하던 아버지가 해변에 엎드려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한의사인 아버지는 假死상태인 그가 아직은 숨이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하고 김 지게 대신 그를 들쳐 업고 오셨다. 사랑방에 널브러져 있는 그를 본 이웃들은 괜히 큰일 치르지 말고 얼른 支署에 알리라고 야단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침도 놓고 손수 약을 달여 먹이고 정성껏 치료를 하셨다. 할머니도 한밤중에 미음 사발을 들고 사랑채에 드나들며 지성으로 간호하셨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그는 차츰 회복되어 갔다.
오갈 데 없는 처지라는 것과, 몸담고 일하던 어선이 풍랑에 뒤집히는 바람에 떠밀려 우리 집 앞 바닷가까지 오게 되었다는 사연과 이름은 억식이라는 것 말고는 그의 이력은 없었다. 억식이와는 그렇게 緣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어영부영 가족이 되어갔다. 그가 온 지 서너 달이 지나고 6,25전쟁이 터졌다. 서울을 점령한 공산군을 피해 공부하던 삼촌들이 내려왔다. 서해안의 작은 섬마을 면사무소에도 어느새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 광명천지가 되었다며 깃발을 들고 춤을 추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밤 사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인민위원회에 끌려가 총살당하는 이도 있었다. 그야말로 '밤새 안녕' 이었다. 평소 주인에게 불만이 많았던 머슴들은 인민군의 포섭 대상 1호였으니 정신 차릴 겨를도 없이 붉은 물이 들었다. 심지어 뉘 집은 머슴 손에 곳간이 털리고 몰상당했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런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하나둘 목선을 타고 피란길로 떠났다. 뒤숭숭한 마을을 뒤로하고 어쩔 수 없이 아버지도 셋째 삼촌만 데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셨다. 갓 결혼한 둘째 삼촌은 차마 새색씨를 두고 혼자 갈 수 없다며 눌러앉았다. 기약 없는 배 생활을 해야하니 여자들은 동행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삼촌 대학 동기인 이웃 마을 청년들이 무시로 우리 집에 드나들며 삼촌을 공산당에 입당시키려고 갖은 계교를 부렸다. 또한 결혼 전 직장 생활을 한 그 시절 신여성이었던 숙모를 여성동맹위원장에 앉히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삼촌 부부는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낮에 나무할 때 봐두었던 은신처에 삼촌을 숨기는 일도, 숙모를 동네 할머니의 며느리로 둔갑시켜 같이 절구질하게 하는 쇼? 도 억식이의 智略이었다. 방공호를 파는 데 한 집에 한 사람씩 강제 동원되는 부역도 역시 억식이 몫이었다. 여맹에 가입시키려는 압력에 젖먹이 동생을 업은 어머니도 집에 있을 수가 없었으니 할머니와 초등학생인 나, 억식이만이 그 공포의 밤을 견뎌야 했다.
진짜 무서운 적은 북에서 내려온 공산군이 아니라 동향의 적색분자들이었다. 그들은 매일 밤 망을 보고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래도 끝내 삼촌을 찾아내지 못하면 억식이를 黨舍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다.
바로 조금 전 숨어있는 삼촌에게 주먹밥을 날라다주고 포승에 묶여온 억식이었다. 주인집 아들 어디 있다는 말 한마디면 살아날 수 있다는 걸 아무리 일자무식 억식이라도 몰랐을까만... . 손가락 사이에 만년필 끼우고 비트는 고문은 한참 장정이었던 그도 죽을 것 같았다고 했다. 지금도 생생하다. 다리를 질질 끌며 대문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그만 기절하던 그 참담한 몰골이,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찬물 세례를 받고 깨어나곤 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식구들을 지켜낸 대가는 한마디로 끔찍했다. 당사에만 끌려가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몸을 잘 못 쓰는 억식이를 할머니는 지극정성으로 돌보셨다. 그러나 회복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골병은 점점 깊어만 갔다. 지옥 같은 두어 달이 가고 드디어 공산군이 퇴각했다. 이른바 9, 28 수복이다. 피란 갔던 아버지도 무사히 돌아오셨다. 추석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모두 무사함에 감사하며 식구들은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억식이는 아버지의 온갖 치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뒤에 알았지만 그는 당시 불치병이었던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근본도 모르는 떠돌이에게 가족을 부탁하고 떠나려니 몹시 불안했다고 그를 놀러앉힌 걸 후회하셨다고도 했다. 그러니 억식이를 마주하는 아버지의 감회는 남달랐으리라.
어느 날 아침, 사랑방에 누워 있어야 할 억식이가 안 보였다. 갈 만한 곳은 다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다. 방공호 속에서 웅크리고 죽어있는 억식이를 발견한 이는 패잔병 수색 차 출동한 경찰이었다. 그의 곁에는 불에 그을린 뚝배기와 앙상한 뱀의 잔해만이 나딩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가 회생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폐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길을 택한 것 같았다. 이미 우리에게 더할 수 없는 큰 보답을 했는데도... .
불렿듯 억식이가 떠오른 것은 背恩은 커녕 패륜(悖倫)도 서슴치 않는 각박한 요즘 세태가 몹시 언짢아서일 게다. 그는 '사람의 도리' 같은 어려운 단어는 알지도 못하는 까막눈이다. 그러기에 그가 한 행적이 더욱 돋보인다.
-윤묘희 전 MBC .'전원일기' 작가
'그룹명 > 수필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隨筆] 생목(生木) / 황성진 (0) | 2014.09.14 |
---|---|
[스크랩] [隨筆] 행복은 조촐하다 / 윤재근 (0) | 2014.09.14 |
[스크랩] <113>수인번호 257번 /김형구 (0) | 2014.09.12 |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2년 11월호, 세상마주보기] 쓰지 않고 몸에 좋은 약 - 윤묘희 (0) | 2014.09.08 |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3년 9월호, 지상에서 길찾기] ????원圓 - 윤묘희 (0) | 2014.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