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소리
청나라 때 김성탄(金聖嘆)이 쓴 [쾌설(快設)]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33개의 통쾌한 장면을 하나씩 떠올리며 적은 글이다. 그 가운데 "자제들이 글 외우는 소리가 유창하여 마치 병 속의 물을 따르는 것만 같으니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라는 구절이 있다. 어린것이 어느새 글을 익혀 그 어려운 글을 줄줄 읽을 때 과연 흐뭇하지 않을 어버이가 어디 있을까?
옛날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내어 읽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서당에서 낭랑하게 목청을 돋우고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다. 선생은 좌우로 몸을 흔들고, 학생은 앞뒤로 흔들며 읽었다. 책을 읽는 낭랑한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그렇게 읽다 보면 그 가락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스며들어, 뜻을 모르고도 글을 외울 수 있었다. 의미는 소리에 뒤따라왔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총명한 아이들은 그 소리를 듣고 배우지도 않은 글을 외웠다. 머리가 나쁘기로 유명했던 김득신(金得臣, 1604~1684)은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을 1억 1천 1백 번이나 외워, 그 호를 억만재(億萬齋)라고 했다. 엣날에 1억은 10만을 나타내는 숫자다. 그는 말을 타고 가면서도 글을 외웠다. 그렇게 많이 외운[백이열전]것을 중간에 감빡 잊어버렸다. 그러자 곁에서 고삐를 잡고 있던 하인이 막힌 부분을 외워주었다. 하도 많이 들어 뜻도 모르고 외운 것이다. 머쓱해진 김득신은 네가 나보다 똑똑하니 내 대신 말을 타고 가라며 종을 태우고 자신이 고비를 잡고 갔다.
외우고 또 외우고, 읽고 또 읽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그렇게 소리를 내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의미가 들어왔다. 그렇게 [논어(論語)를 외우고 [맹자(孟子)]를 외웠다. 이렇게 얻은 의미는 평생을 따라다녔다. 강박(姜樸)의 [국포집(菊圃集)]에서 송나라 때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의 [구양 독서법(歐陽讀書法)]이라는 글을 소개하고 있다. "글자의 수를 헤아려보았더니, [효경(孝經)]은 1,903자, [논어]는 11,750자, [맹자]는 30, 685자, [주역(周易)]은 24,107자, [서전(書傳)]은 25,700자, [시경(詩經)]은 39,234자, [예기(禮記)]는 99,010자, [주례(周禮)]는 45, 806자, [춘추좌전(春秋左傳)]은 196, 845자였다. 날마다 300자씩 외우면 4년 반이면 다 마칠 수가 있다. 조금 우둔한 사람이라 반으로 줄여 외운다 해도 9년이면 다 외울 수가 있다." 오! 이 단순하고 무식함이여. 외우는 데야 당할 장사가 없는 법이다.
이웃집의 젊은이가 날마다 밤을 새워 글을 읽으면 옆집 처녀는 공연히 마음이 설렌다. 도대체 어떤 젊은이일까? 그리하여 옛 문헌설화 속에는 옆집 청년의 글 읽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처녀가 담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정인지(鄭麟趾)]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 사이로 그를 엿보고 흠모의 정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처녀가 담을 넘어 정인지의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그녀를 타일렀다. 그러나 그녀는 소리를 질러 사람들에게 알리겠다고 막무가내로 협박했다. 정인지는 밝은 날 모친에게 말씀드려 정식 혼인의 절차를 밟아 맞이하겠노라는 말로 처녀를 달래어 돌려보냈다. 이튿날 그는 어머니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이사를 가버렸다. 남은 처녀는 상사병으로 죽었다.
조광조(趙光祖)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낭랑한 독서성(讀書聲)에 반한 처녀가 담을 넘었다. 조광조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려 돌려보냈다. 그녀는 잘못을 뉘우쳤고, 훗날 다른 집 안으로 시집 갔다. 기묘사화 때 그 남편이 조광조를 해치려 하자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일을 이야기하며 조광조를 해치지 못하게 했다. 심수경(沈守慶)과 김안국(金安國), 그리고 상진(尙震)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모두 다 책 읽는 소리 때문에 생긴 아련한 옛날 이야기들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독서의 역사]를 읽어보니 중세 유렵에서도 책은 반드시 소리를 내서 읽었다고 한다. 암브로시우스가 묵독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눈으로만 읽는 묵독(默讀)은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요사스럽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은 경전을 읽을 때 신성함을 유지하려면 문장의 가락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입을 크게 벌려 소리내어 성스러운 단어들을 읽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만 책장에 쓰인 죽어 있던 단어들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의미화된다고 여겼다.
동양에서도 옛 사람의 글을 소리 높여 되풀이해 읽다 보면 옛 사람의 성기(聲氣)가 내 목구멍과 입술에 젖어들고, 그리하여 글을 쓰면 옛 사람의 기운이 절로 스며들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글을 배우는 사람에게는 소리를 통해 기운을 얻는다는 '인성구기(因聲求氣)'의 방법이 적극 권장되었다. 따라서 백독(百讀), 천독(千讀)의 목표를 세워 한 겨울을 산사에서 나곤 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하나씩 뒤집어서 읽은 횟수를 표시하는 서산(書算)은 어느 집에나 있었다.
이제 책 읽는 소리는 뚝 그쳤다. 한글을 갓 깨친 어린아이들이나 떠듬떠듬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소리를 내어 상쾌한 리듬을 느끼며 읽을 만한 글이 더이상 없기 때문일까? 달 밝은 밤 옆집 총각의 낭랑한 독서성에 가슴 두근거리던 처녀들의 설렘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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