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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3회 맑은누리문학상 당선작] 지연구 외

테오리아2 2016. 3. 3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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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맑은누리문학상 당선작] 지연구


■ 대상
매화꽃 / 지연구



윗목에 쪼그리고 앉아
가늘고 굽은 손가락으로
바닥 흥건한 물감을 찍어 꽃을 피우네
뭉그적 몸을 옮길 때마다 툭툭 터지는 꽃망울들
울음을 울 듯 울 듯 눈을 찡긋 거리네
윗목에서 피기 시작한 꽃은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
벽지에도 듬성듬성 피어나기 시작 했네


얘야, 오늘은 꽃이 많이도 피었구나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꽃이 많이 피었어요


꽃무더기 가득한 방
빼꼼한 틈을 찾는 어머니께
양은 세숫대야를 우그려
매화틀*을 만들어 드렸네


어머니, 이제 이곳에다 꽃을 심으세요


꽃밭이 좋아 꽃이 잘도 크겠구나
그런데 당신은 뉘시유?


매화꽃 장사예요, 어머니
소리치며 방금 심어 놓은 듯 싱싱한  꽃송이를 꺾네


매화꽃 나무 아래 수줍게 웃던 새 색시
어젯밤 꿈엔 아버지라도 만나 보셨나
분홍 진달래꽃 흐드러진 이불 위에
홍매화 꽃 한 아름 수북하게 피워 놓으셨네


날이 갈수록 선명하게 흐려지는 꽃밭
어머니 홀로 외로이 거니시네


*매화틀: 궁중에서 왕이 사용 하며,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만든 변기통.





■ 우수상

유기농 주방장 / 변삼학 
  

                             
식전 가마솥에 김이 피어오르듯
두엄더미서도 김이 물안개같이 피어올라 뜸을 들이는
나물밥 냄새가 새콤하다
한 해의 유기농이 된 아버지 두엄을 삭히기 위해
거두어 온 산야 들풀을 절인 진땀에
우분(牛糞) 계분(鷄糞) 양념을 곁들인 발효 식품의
보조요리사는 사계절 햇볕과 밤이슬이지만
주 요리사는 유기농 배합사의 주방장인 아버지다
곰삭힌 가자미식해 같이 발효된 두엄더미 허는 날
한 삽 두 삽 퍼 내리는 삽날에
햇빛 그림자를 달고 쪼르르 몰려드는 식객들
고물거리는 통통한 식해의 밥알들에 만찬을 즐긴다
운 좋은 놈 지렁이 한 마리 물고 도망치고
지네 한 마리 물고 달아나는
어미 닭의 뒤를 쫓는 한껏 봄빛 빼문 햇병아리 떼들,
그들이 후벼 파먹고 남은 애벌레는
출출한 텃새들의 담백한 새참이다
진즉 두엄의 주인 주방장의 단골 식객은 들녘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는 푸른 작물들이다
그 식객들 한 줌의 두엄을 먹고 살 오른 포기들은
우리들의 그득한 친환경 밥상!





■ 우수상

구두를 닦다 / 강태승



구두를 닦는다 칠할수록
단순해지는 검을수록 깨끗해지는
캄캄해지라고 불광 내면
달그림자 같이 현현하다
거뭇거뭇해지니 웃음 배어난다
깊어지고서 바다 검듯이,


간결해진다 어두워짐으로
물방울처럼 웃는 저것
검정은 검은 것과 다르다고
달빛에 웃는 절집 지붕처럼
교묘해지는 구두,
더 까매지라고 닦는다


산처럼 어둑해지라고 닦는다
깊이를 잃은 무덤처럼
무게를 잊은 비석처럼
닦을데 없이 깊어지라고
추수 끝난 들판에 눈 내리듯이
두서없이 닦는다

검정을 칠할수록 밝아지는
캄캄해질수록 하나가 되는
언저리가 넓어지는 구두
어두워질수록 반짝이는 별처럼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슬픔처럼,
점점 구두가 반짝인다.





■ 장려상
통화 / 김은혜



옅은 먼지들이 엮여있는 회로 사이에서
낡아가는 방은 혼자서 주파수를 맞춘다
달팽이관처럼 둥글게 말린 등짝 안으로
아버지는 무음이 되어가는 허공을 듣는다
휴대폰은 언제나 오래된 전파를 노래하지만
벌겋게 데인 어깨 아래로 이어진 등뼈들
들쑥날쑥 솟아있는 버튼 속에 지문이 없다
하얀 벽은 발신되지 못한 메시지로 접혀져
문틈으로 얕은 숨소리만을 골라 담아낸다
알 수 없는 기호처럼 아버지의 글자들이
단 한번도 표음되지 못한 채 바스라진다
잔해들 살갗에 박혀 가슴이 따끔거리는
온기가 삭제된 시간들이 공중에 들떠있고
귓바퀴 안으로 주파수는 잡음을 내뱉는다
통화(通話) 없는 몇 개의 귓불들이 차가워진다
아버지가 휘어진 안테나를 달고 엎드린다
낡아가는 뒷통수에 수신되는 작은 음파들
재생되지 못한 말들만 침샘을 타고 온다
데시벨이 없는 소리들이 방전된 온몸에
서두를 놓고 등뼈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화면이 없는 아버지는 지금 어디쯤에서
작은 귓불을 숙여 따뜻이 기울이고 있을까
딱딱하게 접혀진 휴대폰처럼 단단한 그 마디들
오돌토돌한 버튼들을 누르자 아버지의 등에
고인 물처럼 동그란 지문들이 서서히 번진다








[제3회 맑은누리문학상 심사평]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시적 여정



시를 쓰는 일은 우리가 경험한 삶의 공간을 넘어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연히 숲을 걷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풍경을 만나는 일 만큼이나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는 시의 여정을 따라가다가 맑은 옹달샘을 만나기도 하고 절벽 아래의 광활한 세상과 만나기도 한다. 그 길에서 만나는 바람이나 구름은 시의 숲을 풍요롭게 해주는 상상력의 악기들이다. 하지만 그 길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들이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미로 속을 헤매기도 하고 가시덤불 속에서 캄캄한 밤을 견딜 때도 있다. 따라서 시를 쓰는 일은 새로운 즐거움인 동시에 낯선 고통이다.
제3회 맑은누리문학상에 응모된 원고는 총 950여 편에 달했다. 그 중에서 예심을 거쳐서 넘어온 작품은 50여 편인데, 작품에는 응모자의 이름 대신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공정한 심사를 바라는 주최측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눈에 확 띄는 작품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시적 언어를 나름대로 운용하는 능력은 보이나 시적 공간을 창출해내는데 미흡한 작품들과 너무 낯익은 체험이나 새롭지 않은 상상력에 기대고 있는 작품들, 그리고 자신만 아는 언어를 나열하고 있어서 미처 객관화되지 못한 작품들은 우선적으로 제외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심사자의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구두를 닦다」 외 2편, 「통화」 외 4편, 「유기농 주방장」 외 4편, 「매화꽃」 외 4편 등이었다. 이들 작품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저마다 장단점이 있어서 심사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우선 「구두를 닦다」 외 2편을 응모한 시인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낯선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시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나 언어의 운용이나 시적 비약이 미처 객관화되지 못한 생경함이 보였다. 그 중에서 「구두를 닦다」는 이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넘어서고 있는 작품이라 미더웠다. 「통화」 외 4편을 응모한 시인의 작품들은 어두운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해 내는 능력이 돋보였으나 대부분의 시편이 자신만의 서사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해서, 치밀한 묘사의 이면에서 느껴지는 답답함이 있었다. 이에 비해 「유기농 주방장」 외 4편을 응모한 시인의 작품들은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고 모성적이면서도 친자연적인 상상력이 돋보였다.「아기 발코니」와 같은 작품은 엄마의 몸을 아기의 발코니로 형상화해는 상상력이 이채롭고 이러한 상상력이 모성의 따뜻함과 만나면서 펼쳐내는 세계가 호감이 갔으나, 이 작품 보다는 「유기농 주방장」의 상상력이 좀더 참신하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주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매화꽃」 외 4편을 응모한 시인의 작품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단조로운 세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체험과 상상력을 시적 언어로 부조해내는 능력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매화꽃」은 치매로 인분을 벽에 바르는 어머니의 행위를 ‘매화꽃’으로 은유해내는 솜씨가 범상치 않았고 아이러니를 유발하는 비유적 화법이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심사자는 「유기농 주방장」과 「매화꽃」을 마지막 자리에 올려놓고 어떤 것을 대상으로 뽑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비유와 상상력과 체험이 조화를 이루고 화법 역시 이채로운 「매화꽃」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비록 우수상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유기농 주방장」을 쓴 시인의 미래도 기대가 된다. 심사자는 우수상의 마지막 한 자리에 「구두를 닦다」와 「통화」를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상대적으로 상상력이 낡지 않은 「구두를 닦다」를 선에 넣었다. 아깝게도 최종 선에서 탈락한 「통화」의 시인과 최종심에 오른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박남희(시인,문학평론가)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고장난 아침』이 있고, 평론집으로 『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으며, 현재 고려대, 동국대, 추계예대 강사, 계간 《시산맥》주간으로 있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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