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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당선작] 윤옥란 외

테오리아2 2016. 3. 3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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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당선작] 윤옥란 외

 

■대상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 윤옥란

 


매미 허물이 상수리나무 허리를 움켜잡고 있다
속이 텅 빈 껍질은 한때 어둠에서 지냈던 몸이다

땅속에서 꿈틀거리며 말랑거리던 투명한 빈 몸,
수직 금 긋고 등가죽 찢고 나왔다

말랑거리던 몸이 햇빛에 닿을 때 얼마나 따가웠을까
적들의 신호를 알려주는 은빛 날개의 보호막은 점점 두꺼워진다
 
비바람 몰아쳐도 떨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천상의 소리 듣는다
상수리나무 빈집에서,
 
지금 나는 바람도 햇빛도 들지 않는 눅눅한 지하골방에서
가시 같은 눈초리와 습한 외로움을 등에 업고 있다
 
낮에 두고 온 무거운 짐들은 잠시 무게를 떠났다가
귀가 열리는 순간 다시 생의 관절을 앓는다
 
소리를 떠난 적 없는 귀는 듣는다
영영 아물지 않는 산고의 가로줄무늬 빈집을 내려다보며
종일 여름을 등에 업고 반짝이는 소리를,
 
환상이 숨 쉬던 집
제 살의 온기를 묻고 나오던 집
그 집을 지나칠 때마다 내 온몸의 뼈가 뜨끔하다
 
어둠을 털고 나온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매미의 미라는 시의 표본,
내 삶의 도감이다

 

 

 


■금상
어화 / 이항로

 

 

포구 옆 미래호에 올라타는 선원들의 얼굴
오늘의 기지가 안개처럼 피어난다
물살 가르며 나아가는 선박 위
뿌연 달무리 머리를 걸친다
 
집어등 제 몸 밝히는 순간 피어나는 어화 한 송이
어두운 바다 위 배 한 척 꽃이 되는 순간이다
지나온 시간들 불거진 심줄로 솟아난다
 
동해의 아침해 몸을 드러내는 시간
머리 묶고 나오는 어시장 여인들
만선이라는 이름의 미래호
해안선 저 끝에서 어화둥둥 다가온다

 

 

 

 

■은상
천국가는 버스 / 고정옥

 

 

호계 오일장에 늦가을 그림자가 길다
겨우살이 찬거리를 사들고
버스정류장에 섰는데, 푸성귀 너덜거리는
보퉁이 안은 할머니가 슬몃슬몃 와서
(예서 뻐스타면 천국 가능교?)

질그릇 같은 낯빛에 목이 축 늘어진 윗도리
마른 나무껍질 같은 맨발이 헐렁하게 든 고무신
방향 없이 날리는 백발은 이미 이승사람이 아니다
(우짜꼬, 뻐스타야 하는데 차비가 모지런다.
백원만 꿔줄 수 있능교?)


동전을 꼭 쥔 뭉텅한 손, 까만 손톱 때를 보며
천원을 내밀자, 아니라며 백원만 있으면 된다며
한사코 돌려준다
버스비가 천원 넘는데 백원으로 천국까지
어찌 가냐고, 천국 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갖고 가라며 천원을 던지듯 주고
때마침 온 버스를 탔다

영악한 세상 마냥 천국도 할머니에게
내어줄 빈자리 하나 없으면 어쩌나
동정심 그득한 눈길로 멀어지는
호계장을 바라보는데…

할머니가, 버스에 오른다
천국이 아니라,
천곡 가는 버스에 오른다

다구진 꾸짖음이 날아와 내 뒤통수를 탁 친다
(젊은 년이 늙었다고 산송장을 맨들라 하네.
귓구녕도 막힌 년이…)

 

 

 

 

■은상
물의 혀 / 김재근


 

나의 혀는 길다

 

긴 혀가 강바닥에 가라앉아 자갈을 핥는다

 

밤이 스스로 어두워지듯
물이 물에 젖어 물집이 생기듯
물은 자갈을 안고 가만히 흔들리고 있다

 

나는 강가로 간다
물결이 어두워지는 소리 들으려
물가에 핀 꽃들이 어두워지는 소리 들으려

 

물이 혀를 깨물자 물결이 인다

 

꽃의 색을 이해하기 위해 물의 음악을 들어야 할 시간

 

허공에 누운 별이 바람에 몸을 씻고
물속을 비출 때
꽃의 그림자는 찰랑찰랑 물장구치며 나를 바라본다

 

꽃의 나신을 본 건 처음이었으나
나는 물방울이 꽃을 야금야금 가려주길 기다린다

 

별빛이 이울어
이제 물의 사랑도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꽃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아직 향기가 남아 있냐고

 

그때 꽃은 젖은 그림자를 물가에 두고 두 눈을 씻으며 걸어 나온다

 

뽀얀 안개가 젖처럼 물 위에 흐를 때 꽃의 입술은 붉어지고

 

 

 

 

 

 

 

 

 

 

심사평 "시 읽기의 즐거움과 경쾌함을 주는 시"

 

 

응모작 1천634편 중에서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화', '천국 가는 버스', '물의 혀', '버티기', '모래의 달' 등 6편이 최종심에 올랐다. 숙고한 끝에 간추린 시편은 윤옥란의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이항로의 '어화', 고정옥의 '천국 가는 버스', 이희섭의 '물의 혀' 제씨의 작품을 두고 고심을 했다.

 

심사를 맡아보고 있는 선자들이 기대하는 시각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언어를 다루는 노련함과 완숙미에 거는 기대로 모아진다. 세련되고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시풍보다 자기 목소리가 담긴 작품을 원한다.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와 '어화' 두 편을 놓고 선자들은 오랫동안 숙의했다.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진지한 데가 있었다. 시를 끌고 가는 힘도 있고, 리듬감이 있고, 잘 다듬어진 잘 빠진 시로 볼 수 있다. 3연의 "말랑거리던 몸이 햇빛에 닿을 때 얼마나 따가웠을까/ 적들의 신호를 알려주는 은빛 날개의 보호막은 점점 두꺼워진다"같은 표현은 환상적이다. 시 읽기의 즐거움과 경쾌함을 주는 시다.

 

'어화'는 자기 목소리를 갖춘 신선감이 돋보였다. 체험에서 나온 시다. 2연에 "집어등 제 몸 밝히는 순간 피어나는 어화 한 송이/ 어두운 바다 위 배 한 척 꽃이 피는 순간이다/ 실타래 풀어내듯 낚싯줄 내리는 사내들의 팔뚝 위로/ 지나온 시간들 불거진 심줄로 솟아나다"같은 표현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연 "만선이라는 이름의 미래호/ 해안선 저 끝에서 어화둥둥 다가온다"는 표현은 고된 바다 생활 속에서도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시에는 환상이 있고 깨달음이 있고, 그 깨달음의 끝에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고정옥의 '천국 가는 버스'는 발상에 선자들을 사로잡았으나 소박함 때문에 신뢰감을 끌어내지 못해 아쉬웠다. '물의 혀'는 시어를 다루는 솜씨와 서술력이 돋보였지만, 시는 없고 언어의 옷차림만 현란하게 펄럭이고 있고, 순진한 아포리즘(aphorism)이 화장을 하고 그럴듯한 시로 변모하고 있다. 아직은 글쓴이 자신의 입안에 든 소리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감을 준다.

 

결국 '어화'보다 '날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가 보수주의 시풍의 기교와 기법을 흡수하고 그 위에 새로운 자기 목소리와 개성을 얹었다는 점에서 대상작의 영예를 획득한 것이다.


심사위원 도광의, 조영일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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