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시 방

[스크랩] 시인하다 / 이령

테오리아2 2018. 3. 29. 11:27
728x90

시인하다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是認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 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니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에겐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패하는 자가 시인**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 장콕토

** 이성복

 


이령_2013 시사사 신인상. 동리목월 기념사업회 이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월간 시와표현 2017년 4월호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