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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에바리스트 갈루아가 죽기 전날의 풍경 / 이령

테오리아2 2018. 3. 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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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리스트 갈루아*가 죽기 전날의 풍경

 

참치 캔에는 참치가 없어요
체리 잼 성분엔 체리 맛 향만 있어요

 
수납장을 열자 풍문에 기댄 소리들이 쏟아져요
근거 없는 것들은 빨리 해치워야 할 것 같아
귀를 후비다 말고 난 요리를 합니다

 
아래층 여자가 봤다는 여자의 허리를 자르고
당황해 하더라는 그이의 눈빛을 뽑아 샐러드를 버무립니다
볶고 지지고 데치고 비벼서 귓바퀴에 걸린 소리들을 펼쳐 놓아요

 

인터폰이 울립니다
아래층 여자는 부지런합니다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려주지요
먼저 말을 건넨 적 없어 내 귀는 자주 피곤합니다
그냥 아는 사람일거야 능청은 예정에 없던 양념이지요
모르는 것은 약이라서 모르는 척 하는 건 안전 하니까를 고명으로 얹습니다

 
참치 캔의 잡어도 때론 참치 속살만큼 꼬솜해요
체리 맛 향은 체리보다 체리 같죠

 
난 근거 있는 근거 없음을 조리고 있답니다
근거 없음의 근거 있음이 소리의 속성 아니던가요
난 지금 손잡이가 꺾인 수납장이고 속으로 자꾸 깊어갑니다

 
그녀는 색다른 재료들을 마구 쏟아내고 난 밤이 되면
그중 실한 소리들을 고르고 골라 쟁여두지요
힘에 부대끼면 재료들을 이제 그만 가져오라 합니다만 그녀는 여전히 똠방입니다

 

아직도 귀가전인 그이는 알까요
숙련된 소리 요리법을, 오늘은 그이에게 살짝 귀 뜸 해 줘야 할까봐요
지금 내 귀는 창을 넘고 거실을 지나 지하주차장쯤에 걸려있어요
밤보다 깊은 새벽이네요


*프랑스의 수학자로 20세의 젊은 나이에 결투로 요절한 천재 수학자이다.



이령_경북 경주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상사법전공 석사.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





웹진 시인광장 2017. 6월호 신작시 (통호 제98호)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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