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걷기
장석남
생각난 듯이 눈이 내렸다
눈은 점점 길바닥 위에 몸을 포개어
제 고요를 쌓고 그리고 가끔
바람에 몰리기도 하면서
무언가 한 가지씩만 덮고 있었다
나는 나의 뒤에 발자국이 찍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걸었다
그 후 내
발자국이 작은 냇물을 이루어
근해에 나가 물살에 시달리는 지
자주 꿈결에 물소리가 들렸고
발이 시렸다
또다시 나무에 싹이 나고
나는 나무에 오르고 싶어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잘못 자란 생각 끝에서 꽃이 피었다
생각 위에 찍힌 생각이 생각에
지워지는 것도 모르고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비교적 평이한 문장들 속에 특이하게도 일렁이는 이미지의 향연을 펼쳐내는 장석남은 <맨발로 걷기>를 통해 시인의 대열에 합류한다. 첫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은 이러한 장석남의 특질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위 시는 크게 멋을 부리지는 않지만 하강(내리는 눈)과 상승(나무의 싹)이 맞물린 전체적인 기조 속에 화자의 내면을 향해 걸어드는 '맨발'의 궤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내면으로의 발걸음이 화려했더라면 장식이 되어버렸을 터이지만, 그는 소재와 주제에 어울리는 어법을 매치시킴으로써 진솔한 진정성을 확보한다. 특히 4연의 경우, 덕적군도 출신인 시인의 경험이 아스라히 묻어나서 발목을 간질이는 물살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연이 가진 관념이 걸리지만 도입부의 나무의 이미지를 끝까지 중심축으로 밀고가 그것을 무난히 극복하는 한편, 시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언어를 부리는 대신 휘둘러서 이미지를 얻는 다수의 시인들에게 그의 어법은 훔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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