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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떡고개 이야기-김근혜

테오리아2 2014. 8. 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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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꿀떡고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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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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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혜

대구행복의 전화 소장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정표가 잘 보이지 않아서 지나치고 말았다. 길을 헤매다 겨우 들어선 곳도 차가 다닐 수 없는 자전거 길이었다.

이정표가 있어도 헤매는데 우리네 인생길은 얼마나 많고 많은 길을 돌고 휘돌아 가는가. 신현리 마실 가는 길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갈 때는 보이지 않던 길이 다시 되돌아서서 천천히 보니 보였다. 여행길조차도 마음은 성급하기만 하다.

성황당 바로 앞, 돌 고갯길이 나온다.`꿀떡 고개`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오찬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객들에게 막걸리 한잔 하라며 손짓한다. 푸근한 정에 이끌려 덥석 앉았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으니까 어르신 중 한 분이 이 고개 넘기가 힘들어서`꼴딱 고개`라고도 한다며 막걸리를 건넨다.

어르신들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고개에는 꿀떡을 파는 떡점이 있었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 사이에서는 이 꿀떡 고개에서 꿀떡을 먹으면 급제한다 해서 너도나도 꿀떡을 사서 먹었다고 한다.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의 마음은 꿀떡에라도 주문을 걸며 매달리지 않았을까. 절박할 수밖에 없는 심정이 헤아려진다. 꿀떡을 먹고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에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꿀떡 고개는 영남대로 중 통행이 가장 빈번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길손이 많아 쉬어가곤 했을 주막이 보인다. 지금은 옛 모습만 재현한 주막이다. 이 고개는 숨겨진 사연이 많다. 깊은 산중이라 도적 떼를 만나 가진 돈 모두 빼앗기고 섧게 울며 이 고개를 넘기도 했다. 과거를 보러 가던 중에 돈이 다 떨어져서 한양도 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며 주막에 며칠씩 외상으로 묵으며 하인이 돈을 가져오길 기다리기도 했다. 급제한 사람은 웃으며 돌아오고 과거에 떨어진 사람은 울며 넘던 고갯길이었다. 꿀떡 고개는 시간의 상흔과 소망이 교차하던 길이다.

꿀떡고개에는 성황당이 있다. 신현리 마실의 수호신이기도 하며 한양으로 과거시험 보러 가던 선비나 보부상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성황당 앞에는 불에 타다만 반쪽짜리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의병장 이강년 선생이 1896년 일본군과 고모산성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 화재를 입은 나무이다.

 

 ▲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꿀떡고개 
▲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꿀떡고개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한다. 여행객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린다. 성황당이다. 그렇잖아도 성황당에는 전설이 있기 마련인지라 궁금하던 차였다.

한 맺힌 처녀 귀신 이야기다. 옛날 과거 길에 오른 어느 선비가 이곳 초가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그 집에는 부녀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선비의 인품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자기 딸을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선비는 며칠 묵다가 급제한 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과거 길에 올랐다. 처녀는 매일 치성을 올리며 기다렸으나 선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선비는 급제했으나 약속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수년을 보냈다. 아버지마저 죽고 선비를 기다리다 지친 처녀는 선비를 원망하며 자결한 후 큰 구렁이로 변했다.

그 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구렁이에게 자주 피해를 당한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다. 선비는 그제야 구렁이가 그 처녀의 원귀임을 알고,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다. 천둥 번개와 함께 구렁이가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사라진 뒤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성황당에서 곧바로 길을 들면 석현성과 고모산성, 토끼비리가 나온다. 고모산성은 북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경계하기 위함이고 석현성은 고모산성의 남쪽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조선 시대에 쌓은 성이다. 토끼비리는 진남교반 절경 속에 감춰진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린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쫓기다 길이 막혀 헤매고 있을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타고 달아나는 것을 좇아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영남대로 옛길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2007년 국내 최초로 명승 제31호로 지정됐다.

옛날 영남대로를 따라 문경새재로 오르기 위해선 이 길을 통과해야 했다. 토끼비리는 밀양의 작원 잔도, 양산의 황산 잔도와 더불어 영남대로의 3대 잔도 중 하나다. 가파른 절벽 아래로 영강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발만 헛디뎌도 낭떠러지라서 굴러떨어지기 십상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 아슬아슬한 벼리를 지나 한양을 오갔다.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지나면서 1천년이 넘는 동안 짚신에 닳은 바윗길이 대리석처럼 윤이 난다. `비리`는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좁은 벼랑을 뜻하는 `벼루`의 사투리다.

고모산성에서 바라다보이는 진남교반은 경북 8경 중 으뜸으로 꼽힌다. 영강의 물줄기와 오정산의 산줄기가 태극 형상으로 어우러진 가운데 철교와 3개의 교량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철 따라 변하는 모습이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문경의 소금강`으로도 불린다.

신현리 마실은 그 자체로서 문화적 가치가 높다. 자녀들과 역사의 현장을 걸으며 옛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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