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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매일 오피니언 갈럼-용이 산다는 용궁을 찾아서-김근혜

테오리아2 2014. 8. 8.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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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산다는 용궁을 찾아서


▲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역. 

▲ 경북 예천군 용궁면 용궁역.



용궁역엔 토끼와 자라가 산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용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궁금증이 인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여의주를 들고 서 있는 용왕님이 여행객을 반긴다. 잠수함이 어딘가에서 기다릴 것만 같다. 두리번거리는데 토끼와 자라가 얘기를 주고받는다. 자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하려고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로 간 자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라 꾐에 넘어간 토끼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까 봐 손에 땀이 흥건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뛴다.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한 `토끼 간 빵` 이야기를 읽지 않고는 이 역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빵을 먹고 용왕의 병이 나았다고 하니 토끼 간보다 더 훌륭한 약일 것이다. 그 맛이 궁금해진다.



용궁역에서 금남 방향으로 길을 들었다. 출출하던 참이라 식당을 찾으려고 기웃거렸다. 용궁 순댓집이다. 용궁 순대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서민에게는 값싸고 푸짐한 순댓국밥만 한 것이 없다. 요즘은 미식가들의 입바람으로 오십여 년의 전통을 잇고 있는 용궁순대 맛을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이다.  

용궁 순대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추, 파, 찹쌀, 한약재 등 열 가지의 영양 많고 신선한 재료를 막창에 넣어 직접 손으로 만든다. 특히 비타민과 섬유질, 비타민F로 불리는 리놀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다이어트는 물론 간장 보호, 중금속 등 독소 해소에 좋은 영양식이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용궁 순대를 먹어 본 적은 없다. 이런 음식을 즐기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시장 구석에 있어서 아이들 눈에는 그리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동기회가 있어서 이 식당을 찾았다. 그때 먹어본 오징어구이의 매콤하고 칼칼한 맛과 순댓국의 구수한 맛이 고향을 찾을 때마다 손을 끈다.


1960년, 70년대의 용궁은 우시장이 따로 열릴 정도로 규모가 대단히 컸었다. 장사꾼들은 이삼십 리가 넘는 곳에서도 소를 사고팔기 위해 용궁 장을 보러 왔다. 장사꾼들은 허리춤에 끼워둔 소 판 돈으로 순댓국밥에 탁배기 한 사발로 요기를 하고 고등어 몇 마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어린 시절엔 진짜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한 적이 많았다. 만화가가 그린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바다 속에서 사는 꿈도 꾸며 용왕님의 병이 빨리 낫기를 빌기도 했다.

용궁이 좋아서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고 있다는 양태호(54) 씨를 만났다. 용담소와 용두진으로 안내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시퍼런 물이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물만 봐도 빨려들어 갈 것 같아 소름이 돋던 곳이었다. 어른들은 그곳 근처도 가지 못하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용두암(龍頭岩) 밑으로 소(沼)가 흐르고 있는데 명주실 고리 세 개를 이어도 모자랄 정도로 그 깊이를 측정할 수 없었다고 해요. 두 소(沼)는 물이 한 번도 마른 적이 없고 용담소와 용두암 사이에는 동굴이 있는데 용이 살고 있다고 어른들이 얘기합디다. 해마다 소(沼)는 많은 사람을 삼키곤 했지요. 신성한 곳인데 사람들이 함부로 들어가서 용이 노한 것이지요. 저하고 가장 친했던 친구도 이 곳에서 빠져 죽었지요.” 여름만 되면 무당들이 짚으로 만든 사람을 들고 울부짖으며 굿을 했던 일이 떠오른다. 양태호 씨는 비 오는 날이면 용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어서 호기심으로 어린 시절엔 자주 찾았다며 웃었다.  

“두 소의 물밑은 서로 통할 수 있는 별류천지를 이루고 있어 용두진을 숫용, 용담소를 암용이라 하였는데 두 용이 서로 사랑을 했었나 봐요. 허허, 결국엔 부부가 되었다네요. 이런 전설은 어릴 때는 참 신기했었지요. 실제로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전설은 허무맹랑하기보다는 풍부한 상상력을 심어 주었죠. 그런 덕에 이 고장 사람 몇몇은 작가도 되고 영화감독도 되었죠. 저도 입담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용궁을 소개하고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어디서나 있을 법한 전설이지만 양태호 씨의 강한 입담은 흡인력이 있었다. 용궁면(龍宮面)의 지명 유래는 용담소(龍膽沼)와 용두소(龍頭沼)의 두 소룡(沼龍)이 이루어 놓은 수중 용궁(龍宮)과 같이 지상낙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에서 지었다 한다.  

두 소 가까이에는 세금을 내는 황목근이 있다.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 해서 `황(黃)`이란 성과 `목근(木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황목근은 현재 1만2천232㎡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약 백여 년 전부터 마실 사람들이 성미를 모아 마련한 공동 재산을 이 나무에 등기 이전했다.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 김근혜 대구 행복의 전화 소장

이에 따라 황목근은 토지를 소유하며 세금을 내는 나무가 되었다. 마흔 가구 남짓한 금원 마실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 자정에 황목근 앞에 모여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공동 재산을 마련한 것이 나무에 재산을 넘기게 된 계기이다. 황목근의 논에는 마실 사람이 농사를 짓고 해마다 그 돈으로 금원리 마실 출신의 중학생에게 한 해 삼십만 원씩 장학금을 준다. 동화 같은 마실이다.
 
자라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기차가 오길 기다려 본다. 철길 옆에 때 이른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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