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 1547

2018년 흑구문학상 수상작/명태 / 곽흥렬

드디어 동해 바닷가 작은 포구를 벗어났다. 차는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절양장의 산허리를 휘돌고 돌아 나간다. 대관령의 험준한 고갯마루를 타고 넘어 줄곧 서西로, 서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현기증으로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속이 메슥거려 온다. 그렇게 얼마를 지났을까. 탁 트인 분지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느닷없이 나타난 황태 덕장, 끝 간 데를 모르게 늘어선 명태의 군상들이 사정없이 후려치는 칼바람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인 채로 꾸덕꾸덕 몸피를 줄여 가는 중이다. 이 깊은 산중에 웬 포로수용소가 있었더란 말인가. 사뭇 절규에 가까운 그들의 고통스런 표정에서, 자유를 갈구하며 몸부림치는 뭇 백성들의 환영幻影을 본다. 한껏 벌린 입에서는 피 끓는 혁명가가 울려 나오..

아등바등 / 이상경 - 제12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금상

묘하게 알아보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생전보다 특별히 부으시거나 살이 빠지신 것도 아닌데도. 가만히 들여다보자 그제야 익숙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시기 전 담도가 막힌 탓에 온통 누렇게 변해 있었기는 해도, 확실히 명절 때마다 뵈었던 그 얼굴이 맞았다. 기묘했다. 그냥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또 아예 사람인 적 없었던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왜 옛사람들이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는지 짐작할 것도 같았다. 생명의 마지막 흔적마저 자취를 감춘 얼굴은 마른 강바닥 같았다. 강이었고, 강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넘실거리는 뭔가가 사라져 버렸기에 강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하고 이질적인. 천성이 감성적인 엄마는 할머니 옆으로 다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머니, 먼저 ..

육탁 / 김희자

침묵을 비집고 빛줄기가 거실 바닥으로 든다. 겨울 날씨가 봄 날씨 같다고 비웃었다가 된통 욕을 보고 있다. 세상천지가 꽁꽁 얼고 하늘과 땅의 길도 막혔다. 영하 20도. 맹추위는 가난한 사람의 체감온도를 한층 추락시킨다. 냉혹한 바닥을 치고 나갈 탈출구는 어디쯤 있는지. 여자는 지금 미래로 나아가지도, 과거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바닥을 치는 여자의 육신처럼 거실 바닥에 뒹굴던 빛줄기가 파닥거린다. 새벽 어판장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 육탁(肉鐸)과 같다. 화려해 보이는 도시의 군중 속에 말 못 하는 가난이 여기에도 있다. 더는 칠 것이 없는 생의 바닥. 물질도 정신도 모두 바닥이다. 한파가 가슴 깊숙이 파고든 지 오래이니 심신이 꽁꽁 얼음장이다. 그런 여자에게도 봄날은 올까? 물질이 궁색..

우산 / 김애자

희멀건 눈으로 멍하니 쳐다본다. 햇살이 환하면 우산은 현관 귀퉁이에서 무료한 삶을 이어간다. 형형색색이 행렬을 이룬다. 비 오는 날은 누군가에게 들림을 받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의기양양하다. 주인의 요구에 따라 반원이 되는가 하면 중세의 사원처럼 뾰족하고 둥근 지붕이 된다. 투명한 속살을 드러내 지나는 눈길을 잡아채거나, 화려한 색으로 자태를 뽐내며 빗속을 누빈다. 날이 들면 찾아오는 실직의 소식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우산의 걸음이 활기차다. 우산은 임시직이다. 언제라도 불러주기만 하면 머리를 조아리며 고마워한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쓰임 받는 날은 높은 꼭대기에 오른 것 같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변을 살필 여유도 잠시 뿐, 언제 관심 밖으로 밀려날까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며 가슴을 졸인다. 이십여 년 ..

이소(離巢) / 권상연 - 2019 호미문학대전 흑구문학상 금상

육묘장을 찾았다. 봄기운이 물씬 오른 모종들이 모판에서 키 재기하듯 경쟁적으로 자라났다. 옆 지기의 공간을 침범하여 굵게 자란 녀석이 있는가 하면 비좁은 곳에서 키만 삐죽이 올라온 녀석도 있다. 모판을 벗어나려는 생존 본능은 틈이 조금만 주어져도 달아나려 한다. 이때쯤이면 농가에서는 모종들에게 흔들기를 시작한다. 매정하게 자리를 옮긴다. 비좁은 포트에서 얼마나 숨이 막혔으면 물 빠짐을 위해 뚫어놓은 구멍으로 뿌리를 내렸을까. 이삿짐 빠진 빈방처럼 모판이 옮겨가고 남은 빈자리마다 잘려나간 뿌리들이 허옇게 널브러져 있다. 말못하는 식물이라고 왜 안 아프겠는가.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면역력이 강해진다. 모종이 제금 나기 전까지 농부는 수시로 모판의 자리를 바꿔주고 흔들어 주면서 정을 뗀다. 긴 장..

벽(壁)의 침묵」 김창식

새로 이사 온 동네는 볕도 들지 않는 골목이 얼기설기 미로처럼 얽혔다. 시간이 멈춘 듯 음습한 골목에는 잡풀이 우거지고 악취가 먼지처럼 일렁였다. 그보다 골목을 걷다보면 벽(壁)이 나타나 길을 막는 것이 문제였다.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어도 또 다른 벽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곤 했다. 벽의 모습은 엇비슷했다. 암적색 타일이나 벽돌로 만들어진 벽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중충한 잿빛 콘크리트 벽이었다. 철 지난 전단지가 붙어 있고, 상형문자 같은 글씨가 보이는가 하면, 얼룩이 진데다 움푹 파여 있기 일수여서 찢겨나간 낡은 지도 같았다. 벽 앞에 서서 벽이 침묵하는 것을 보았다. 벽처럼 여러 의미를 갖는 말도 흔치 않으리라. 일상에서 대하는 거실이나 건물의 벽, 나무 그림자가 어른거리거나 담쟁이넝쿨이 간당간당 오르..

조새 / 김희숙(2021 포항스틸에세이 대상)

바위에 부딪친 파도가 하얀 가루로 부서진다. 육지까지 올라올 것처럼 밀어붙이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뒷걸음치는 고양이처럼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그제야 파도에 몸을 내어주었던 바위들이 바닷물 사이로 하나둘 되살아난다. 해안가 사람들이 오밀조밀 동네를 이루듯 갯바위에도 다닥다닥 갯것들이 모여 산다. 숨어 있던 게들이 슬그미 기어 나오고 엎드렸던 따개비와 굴들은 참았던 긴 숨을 토해낸다. 추위가 뻣속까지 스며드는데 낡은 가방을 멘 노인이 얼른거린다.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길쭉한 쇠갈고리를 쥐었다. 이 바위에서 저 돌 위로 겅중거린다. 적당한 자리를 물색했는지 굽은 허리를 더욱 깊숙이 구부린다. 돌돌 말아놓은 거뭇한 보따리 하나 바위에 얹어 놓은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손에 들린 것은 ..

낙타표 문화연필 / 정희승

Ⅰ. 연필이 백지를 앞에 두고 살을 벗는다. 신성한 백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목욕재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죄악과 탐욕으로 물든 몸뚱이 그 자체를 벗어야 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리움을 쓰기 위하여 비장한 마음으로 결국 몸을 벗는다. 아, 관 속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시체처럼 꼼짝없이 누워 지냈던가. 외롭구나. 정말 보고 싶구나. 짓누르는 어둠 밑에서 사향각시처럼 얼마나 자주 무겁게 탄식했던가. 세상으로 나서지 못하고 몸 안에서 맴돌다 결국 살이 되어버린 부질없는 독백과 회한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싱싱한 날것으로 살아나는 생살들, 그래 이제는 가거라. 죽어도 썩지 않는 향기로운 살점들아. 살을 저밀 때마다 신경들이 심하게 경련한다. 비릿한 근육들이 고통스럽게 꿈틀거린다. 떨어져나간 살점들은..

능소화 / 김애자 - 2012년 창조문학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작

임금과 하룻밤을 지낸 소화라는 후궁의 기다림이 꽃이 되었다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옛날에는 양반집에만 심는 귀한 꽃이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출처도 분명치 않은 능소화 한 그루가 대문 옆에서 똬리를 틀더니 곁눈 한번 주지 않는 향나무 허리를 뱀처럼 휘감는다. 목걸이를 한 암캐의 부러움을 딛고 하늘을 감을 태세로 올라가는 줄기마다 처녀의 볼기짝 만한 꽃잎이 요염하게 웃는다. 6월이 되면 능소화와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집 안에서 얌전히 피라고 줄기를 담장 안으로 옮겨 놓으면 잽싸게 문밖으로 나가 서성거린다. 까치발로 목을 빼고 누군가 하염없이 기다리다 소리 없이 떨어진다. 한 여름의 태양을 이고 의기양양하게 떨치는 능소화의 화려함은 여인네의 치마 속까지 무단횡단하며 본능을 부추기다 ..

마지막 편지 / 장석창 -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장려상

노인은 말이 없으셨다. 무언가 말을 하려고 애를 쓰시는 것 같았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왠지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노인이 꼬깃꼬깃 접은 약포지를 내미셨다. 그 약포지에는 ‘부산 탑 클리닉’이라는 병원명과 내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그 노인이 누구인지 생각이 났다. 6개월 전에 지리산 강청 마을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였다. ​ 개원 1년 차. 의약분업이 시작되어 의료계가 어수선하던 2000년 가을이었다. 소아과를 개원하고 계시던 선배 의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 원장, 11월 초 주말에 1박2일로 지리산 강청 마을로 의료봉사를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예. 좋아요.” 나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이제 막 개원하여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보내던 시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