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김근혜
준이는 휘파람을 곧잘 불었다. 방천을 거닐 때나 나를 불러낼 때도 휘파람을 불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내가 보고 싶을 때, 휘파람을 불면 시원해진다고 했다. 나도 그가 보고 싶을 때는, 볼일이라도 있는 양 그의 집 앞을 서성거렸다. 우연이라도 마주치고 싶어서였다.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손도 잡지 못했다. 그는 휘파람을 불고 나는 돌을 만지작거리거나 발만 꼼지락거리다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그는 집안 형편상 하지 못했다. 가끔 고등학교 책을 훑어보며 훌쩍일 땐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학교 갈 때는 방천에 우두커니 서서 휘파람만 불었다. 공부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은 방천을 맴돌았다. 하교 시간에 맞춰 둑에 곧잘 앉아 있었는데 나타나는 횟수가 뜸해졌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한참 이성에 눈뜰 무렵이던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는 형사가 되고, 나는 섬마을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우리는 가슴에 무지개 하나씩을 그려 넣었다. 그는 형사가 된 다음, 나를 각시로 삼겠다고 했다.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나도 사정이 생겨서 일 년 동안 휴학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만날 수 없었다. 그가 생각날 땐 휘파람을 불며 달랬다. 1년 후, 복학하기 위해 집에 들렀다. 그가 여전히 방천에서 휘파람을 불고 있을 것만 같아서 내달렸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반가움에 덥석 안을 뻔하였는데 준이 아버지였다.
“돈이 웬수지, 웬수야. 고등학교가 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보내달라고 떼를 쓸 것이지. 물에 뛰어들긴 왜 뛰어들어 멀쩡한 놈이…….”
얼마나 상급 학교가 가고 싶었으면 말도 못하고 물에 뛰어들었을까. 그의 휘파람 속에 그리 큰 아픔이 숨어있는 줄 몰랐었다. 가슴에 담을 수 없어서 보낸 신호가 휘파람이었다니…….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그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나를 기억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물에 뛰어들던 날, 기억 속에 있던 모든 것도 잠재운 듯했다.
방천에서 빈 휘파람만 목이 터져라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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