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제2회 블루시티거제문학상/조탁(彫琢)/ 김두선

테오리아2 2022. 9. 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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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덮인 기억을 물고 그 섬이 내 안에서 일어선다. 잊혀진 임을 마주하듯 전율이 인다. 사십

 

여 년... 까마득히 잊고 살았건만 셀카 봉으로 막 찍어낸 사진처럼 그날들이 선연해진다.

 

지나간 신문을 정리 중이었다. 우연히 읽게 된 섬 탐방시리즈. 기억이 나를 그곳으로 소환했다.

 

궁금함이 꼬리를 문다. 동백나무 고샅길은 그대로일까? 마을을 안내하던 동네 어귀 목비는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을까. 닷새간 머물렀던 그 민박집은, 산 위의 황량한 버덩은... 나는, 나의 젊은 어느

 

날의 아련함에 젖어 전신이 물긋해졌다.

 

 

 

이십 대의 젊은 날, 내 저항의 방식은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반복되는 일상과

 

이름도 없는 희망을 거절하며 나름 살아내기 위한 내 삶의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순간 수면 위

 

로 떠올라 입질하는 물고기처럼.

 

팔월의 어느 하오. 내려쬐는 뙤약볕이 내 목덜미 뒤로 땀을 게워내고 있었다. 발걸음이 제2 연안부

 

두로 향했다. 매표소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뱃고동은 세상을 바꿀 기세로 울어댔

 

.

 

배가 출항하자, 나는 군데군데 무리지어 있는 캠핑 족들 사이를 비집고 뱃머리 쪽으로 나아갔다.

 

을 길게 빼고 내려다본 뱃머리 아래쪽에서 흰 머리채를 두 갈래로 풀어헤친 물살이 성급히 앞서 달리

 

고 있었다. 거가대교가 놓여 빠르고 편리한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엔 파도를 헤치며 두세 시간 남짓

 

거제도로 가는 바닷길이 낭만과 명상을 누릴 수 있는 실크로드가 아니었을까.

 

뱃전에서의 긴급정보 입수. ‘장승포에서 내려 동백섬 가는 배를 갈아탄다.’는 이야기를 귀동냥했

 

.(동백섬이 지심도라는 것은 훨씬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 무리에 끼어 행동을 함께

 

했다. 장승포 선착장에서 도선을 타고 이십 여 분. 포구에서 바라본 그 섬은 빽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진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배에서 내렸다. 인가를 찾아가는 고샅길 양쪽에는 동백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울퉁불퉁

 

한 길을 몇 차례 오르내리니 송이버섯처럼 지붕 낮은 집 몇 채가 보였다. 방 한 칸을 빌려 짐을 푸는

 

동안, 일흔이 훨씬 넘어 보이는 민박집 주인장은 혼자 온 객이 못 미더운 듯, 헛기침을 하며 두세 번

 

둘러보고 갔다. 마당에서 모깃불 태우는 냄새가 매캐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머무는 동안, 나는 하릴없이 낚시 구경을 즐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섬에서 가장 봉긋한 곳

 

에 올라 버덩에서 기타를 치며 지냈다. 풀 섶을 요 삼아 좌우로 몸을 눕히기만 하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의 끝자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섬은 몸통만 남은 게처럼 엎드려 가슴 속에 외로움을 숨기고 있

 

었다. 이 지루하고 곤고한 삶의 끝은 어디쯤일까.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치유되지 않은 나의 고질병

 

이 그곳까지 끈질기게 따라와 얼굴을 드러냈다.

 

 

 

어릴 때 나는 명분이 없는 서열로 자랐다. 장남도 장녀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22녀 중 셋째.

 

기에다 외모마저 마뜩찮았다. 어머님의 자식 사랑도 내게 올 한 자락이 늘 부족했다. 술과 여자와 노

 

름으로 세월을 낚는 아버지 대신 억척스레 살아내야 하는 어머니에게 셋째는 덤으로 묻어가는 자식이

 

었을까. 아무튼 그 셋째여서 받는 무관심과 결핍된 애정 탓에 나는 언제나 목말라했다. 그리고 이것

 

은 내가 원한 것도 아니며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숙환 같은 것이었건만 나는 이 한계를 탈피하기 위

 

해 갖은 힘을 다했다.

 

튀어야 산다. 결국 이것이 나를 넘어서기 위해 찾은 해결책이었다. 성장기에서부터 이성에 관심을

 

갖는 나이를 거치는 동안, 나는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았고 나름 그 결과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남

 

과는 다른 특이함 이면에 생겨나는 외로움은 자꾸만 커져갔다.

 

 

 

인간이 흙으로 빚은 신의 창조물이라면 그 영혼은 질그릇 속에 담긴 보배와도 같다. 하지만 이 보배

 

에는 관심이 없고 대부분 질그릇에만 집중하는 까닭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외형의 변화를 추구하고 겹

 

겹이 광택을 덧칠하곤 한다. 누가 이 두꺼워진 질그릇 속의 보배를 볼 수 있는가.

 

버덩에서의 나흘 째, 그 섬이 내 인생을 조탁하며 개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바라본 외연을 감

 

연히 거부했다. 그리고 날마다 어제를 청산하고 분진을 털며 몸통만으로 버텨 수동으로 살아온 그 능

 

숙함으로, 오늘을 위해 단장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오랜 세월 거센 비바람에 숱한 생채기가 났겠지. 하지만 섬은 어떤 경우에도 원망하거나 집착하지

 

않았고, 조급하여 외면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때마다 생긴 마음속 무덤 하나를 육중한 무게로 불려,

 

지층을 누르며 끊임없는 화해와 인내 속에서 헛헛한 세월을 버텼으리라. 문명의 시대에 살면서도 문명

 

에 휘둘리지 않고 사는 법을 익혀 기상 더욱 푸르른 섬!

 

가슴이 먹먹해질 즈음, 나는 이상과 현실과의 간극,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을 해부하기 시작했다.

 

레 금지선을 긋지 않았는지, 옥죄어 거머쥐지 않았는지... 저 멀리 노을을 이고 있는 저녁바다가 부드

 

럽고도 엄중한 언어로 나를 위무했다.

 

네 가슴에 바다를 채워라. 물이 얕으면 암초를 피할 수 없다.”

 

그날 밤, 떠날 채비를 한 채 가방을 베고 누웠다. 빗살처럼 가지런히 생 속을 드러낸 천장의 통나무

 

대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킨 적막함이 방안을 채우고, 시끌벅적한 도시의 풍

 

경도, 바쁘게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도, 다시는 보고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며 설핏 잠

 

이 들었다.

 

어둑새벽 이전에 눈이 뜨여 마당에 내려섰다. 빈 평상에 앉아 올려다본 밤하늘이 주먹만 한 별들로

 

유채 밭을 이루었다. 잡힐 듯해서 허공에 두 손을 뻗쳐보다가 어리석은 짓거리에 웃음이 났다. 그 틈

 

을 비집고 섬이 내게 말했다.

 

네 가슴에 바다를 채워라. 물이 얕으면 암초를 피할 수 없다.”

 

 

 

그 섬과의 인연은 습관처럼 도지던 방랑벽을 차츰 가시게 했고, 나는 축축이 젖은 일상을 햇살 아

 

래 펴놓아 말리기를 부지런히 했다. 나를 버티게 하고 여물게 한 곳. 지심도는 나를 혼자 설 수 있게

 

한 치유의 땅이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것. 내 집을, 익숙한 도시를 탈출하는 것. 그리하여 돌아올 것을 염려하지 않

 

고 무작정 나서는 것. 이것은 지금도 현대인이 그리며 앓는 열병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낯선 땅

 

에 발을 내딛고 그곳이 주는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행동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

 

다시금 그곳을 찾는다면 이순의 나이까지 건강하게 잘 이른 내게 건네줄, 그 섬의 한 마디가 궁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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