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국의학도 수필공모전 대상
얼마 전 손목이 자꾸 아프시다는 어머니께 정형외과를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며칠
뒤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전화를 드렸더니 기대했던 괜찮다는 말 대신 의사에 대한 불만만 한참을 이야기
하셨다. 이사로 무리를 한 탓에 골관절염이 생긴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받아왔는데 별 차도가 없어
며칠을 더 병원에 다니셨단다.
어머니 또래의 연세 드신 분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진료받으면서 아픈 손목 말고도 '전신이 좀 쑤시고, 예전
보다 기운도 좀 없는 것 같고….' 하는 등 이야기를 자꾸 했더니 검사결과 아무 이상 없다며 너무 엄살 부리
지 말라고 잘라 말하는 바람에 몹시 속이 상하셨다고 했다. 매년 꼬박꼬박 정기검진을 받는데다 조금이라
도 아프다 싶으면 바로 병원을 찾고 진료 예약날짜 한번 어기지 않는 분이라 사실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
각은 들었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든다고 나도 어머니편이 되어 그 선생님 참 성의 없다며 어머니의 불만
을 거들었다.
마음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더니 병원 실습 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회진 도는 선생님
들께 말하는 걸 보면서는 아무 이상 없는데 왜 자꾸 아프다 그러시나 생각하던 것이 막상 내 어머니에게는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는 아무리 최신의 검사와 좋은 약도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아프고 불편하면 아무 소용없다. 아프고 힘들어 못살겠다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알아보지
도 못하는 사진과 숫자를 들이밀며 아무이상 없다고 말하는 의사는 내 병을 정확하게 잘 모르는 실력 없는
의사이거나 나를 꼼꼼히 봐주지 않는 성의 없는 의사일 뿐으로 치부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논어를 보면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정치란 무엇이냐고 묻는 자공에게 공자는
튼튼한 국방과 풍족한 식량, 그리고 백성의 신뢰라 이야기 한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
에 공자는 군대와 양식을 버리더라도 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나라가 설 수 없으니 백성의 신뢰가 가장 중요
하다고 대답했다. 먹고살기 힘든 국민을 위해 한결같이 경제부흥을 외치는 데도 불구하고 정치가들에 대
한 국민의 신뢰는 갈수록 떨어져가는 요즘 세태에 딱 들어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건 또 의사와 한자의 관
계에서도 성립되는 미언微言이기도 하다.
의사역시 환자를 다스리는 일종의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군대는 최첨단 진단 기기와 수술, 식량은 최신
의 약물쯤 되겠다. 진단기술과 치료 기법이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불치의 병들이 하나둘씩 정복되어 가고
있음에도 환자 의사간의 갈등의 골은 전보다 더 깊어져 가고 있다. 더불어 국민 전체의 의사에 대한 신뢰역
시 바닥을 치닫고 있다. 물론 그 근본적인 문제를 헤집다면 정치·경제적인 문제부터 시작해 복합적으로 다
루어야겠지만 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동안 의사들 스스로가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행동을 하지 못했
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의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하면 똑똑하고 실력있는 의사가 되라는 말보다 환자를 생각
하고 인간적인 의사가 되란 말을 훨씬 더 듣는 것만 봐도 국민들의 의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
쉽게 느낄 수 있다.
백성은 당연히 국가에게 강력한 국방과 풍족한 식량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가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과 신뢰가 있을 때 백성은 기꺼이 그 군대와 식량의 일부가 된다. 환자역시 의사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
료를 원하지만 의사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관심을 가져준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내어 맡기고
온전히 의사를 따르는 것이다.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는 풋내기 의학도일 뿐이지만 내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아무 이상 없다.'는 검사결
과지일 뿐이 아니란 것쯤은 안다. 시험이 끝난 주말, 조금이나마 위로해드릴 양으로 어머니께 드릴 종합영
양제 하나를 사서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여전히 컨디션 제로에 불만 가득한 어머니에게 통합의학 수업시
간에 교수님이 어머니처럼 이것저것 약을 많이 드시는 분들은 영양 불균형이 오기 쉽다고, 그래서 이렇게
영양제로 보충을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종합영양제를 내밀었다. 그제야 어머니는 지금까지의 모든
의혹이 풀렸다는 표정으로 그럴 줄 알았다며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는 온종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나
이 들고 약 많이 먹는 사람들은 영양제 하나씩 먹어야 된다, 나도 몸이 영 찌뿌듯하다 싶더니 다 그래서 그
런 거였다 등등 며칠간을 괴롭힌 통증과 불편함이 한 번에 사라진듯 밝은 표정을 지으셨다. 실제로 어머니
가 좋아지실 런지는 모를 일이지만 영양제와 더불어 해드린 그 한마디가 최소한 어머니의 불만과 짜증만큼
은 확실히 해소했음이 틀림없다. 면허도 없고 선생님들의 발끝에도 못 미칠 실력임에도 어머니가 그 선생
님의 말보다 내 말에 더 호응하신 건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고, 나 역시 어머니가 원
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관심을 가졌기 떄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 통합의학 교수님께서 '그저 검사 결과만 보고서 환자를 의사의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으로 분류해서는 아니 된다. 의사는 환자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긁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고 관심과 정성을 두어야 한다.'란 말씀을 하
셨다. 세월이 흐르고 의술이 발전해도 환자들이 의사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역시 자신에 대한 관심과 정성
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두고 뿌리 내린 환자 의사간의 불신의 갈등을 뽑아내려면 크고 작은 불협화음과 복잡한 경과
를 많이 거쳐야 하겠지만 우공이 산을 옮기듯 한사람의 의사가 진료실에서 쌓아가는 환자들과의 신뢰가 모
이다보면 결국 국민전체의 의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 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중의 한 의사가 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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