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하늘 길
이문자
이제 유택 앞에서 돌아서야 한다.
고별의 순간 숨죽이던 비애가 오열로 흐른다. 시샘도 유분수지, 비정한 봄은 나라를 온통 혼수상태로 몰아넣더니 고운님마저 채어갔다. 고인이 애타게 기다렸을 이 봄을 허락할 아량쯤은 있어야 했거늘 무슨 변고가 이리도 잔인한가.
“선배님, 이건 반칙입니다. 어이없는 반칙입니다!”
이틀 전의 함박꽃 웃음이 선연한데 하늘 길이라니….
“나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좋아.”
음악의 거장이 교향곡을 무대에 올리고 9일 만에 세상을 떴다고 얘기했던 시인. 이렇게 황망히 떠나리라 짐작이라도 했단 말인가. 무슨 까닭에 음울하기만 하던 봄은 오늘따라 이렇게 눈이 부신지. 바람결은 또 왜 이렇게 부드러운가.
내 학창시절에 찾았던 선배의 신혼 방엔 갓난쟁이가 젖내를 물씬 풍기며 단꿈을 꾸고 있었다. 그때 강보에 싸였던 달덩이 같던 신생아가 어느새 반백에 이르러 조문객을 맞는다. 고운 엄마를 빼닮은 따님이 가슴을 친다. 그처럼 가고 싶어 했다는 모녀여행의 회한 때문이라니… 정결하던 임은 한 줌 재로 남았는데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다. 편히 오르시라고 푸른 사다리라도 놓았단 말인가. 그날 꽃 새댁시절의 옥색 치마저고리, 뽀얗게 빛나던 청순 미인이 망극한 슬픔으로 아른거린다.
맑디맑아서 모두가 여남은 해쯤은 아래로 헤아렸던 시인. 이 여인에게서 읽혀지는 해맑음은 속까지 투명하고 깨끗했었다. 유불리(有不利)를 계산하지 않았고 후진들에 보내는 찬사가 늘 봇물 터지듯 후했다. 궁색을 굳이 티내지 않았고 철지난 입성임에도 성장(盛裝)으로 돋보일 만큼 고인은 고왔다. 학교와 문단 선배로, 주마다 화음으로 어울리는 자리가 천진한 아이 같더니 이 길이 어디라고 성큼 들어서셨을까. 못다 풀어낸 시혼 어디다 흘려두고 가셨는지. 아리던 봄은 고인의 지순한 시심에 누그러진 건 아닌지.
나의 시는 다 자란 애벌레가 한 잠 자고 나서 껍질을 벗듯이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날개옷으로 갈아입는다. 나의 시는 일종의 신들린 나비의 유희라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당신의 시 키워드를 이같이 밝히며, “나는 시 앞에서 깊이 고뇌하며 땀 흘리지 않는다.”했고,“끓어 넘치는 감성의 대양을 혼자 헤엄치기도 한다.”며 시혼 불사르기에 거침이 없었다. 시문학의 멍석이 깔린 자리라면 정말 신들린 나비처럼 찾아 나섰고 그 에너지로 가슴 설레며 문학의 산맥을 누빈다고 실토했었다. 등단 45년. 시집 열세 권 상재. 열네 번째 시집 준비 중에 온 이 변고를 누가 곧이 믿을까. 뉘도 흉내 내지 못하는 시 열정이었고 행보였으니 신의 가혹한 처사가 기가 막힐 뿐이다.
때가 다하여 꽃잎이 떠나고 있다(…) /정념에 타던 목청이 저만치 사라지고 있다/찬란히 빛나던 왕관 거두어들이고/화방속 밝히던 촛불도 끄고/그 여자 눈물의 생애가 닫히고 있다/굽이굽이 숨차게 밟아온 고갯길 벼랑길(…) /채머리 흐드러지게 풀어헤치고/꽃잎이 물처럼 흐르고 있다/꽃이 진다/여자의 왕국이 저물고 있다 -시인의 제4시집 <낙화>중에서
시인의 <낙화>를 음미하면 비창 교향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낙화이후로 섬세했던 서정이 격렬해지기 시작한 것도, ‘매일 일어서는 나무’라고 스스로 담금질한 것도 신산함을 달래려는 노래였을까. 곤고했을 말년을 이겨내느라 비장해 질 수 밖에 없었던 시인에겐 어쩌면 자연스런 발로였는지도 모른다. 시집 열네 권의 표제를 이어놓으면 이 여인의 생애가 서사시 한 편임을 직감한다. 시인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노년의 허한 심중을 읽어내고도 남을 터.
62년 지기의 비보에 암자에서 무상계를 올린 노시인의 마음 앓이가 유독 애절해 보인다. 팔순의 생일날, 예순두 해의 연을 이어온 글벗의 혼을 달래게 될 줄 알았을까. 믿기지 않는 부음에 혼절하다시피한 시인은 생전에 맘 놓고 뱉어낸 채근이 응어리가 되어 죄인이라 자책한다. 열네 번째 시집을 하필이면 <아픈 나무>라 했느냐고. 어제까지 여전하던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함께 청청하던 때의 육필편지를 꺼내들고 남은 자신을 용서하라고 한다. 숙명의 인연에 그럴 테고, 졸지에 하늘 길을 배웅해야 하는 애통함에 스스로를 패자라 여기는지도 모를 일이다.
종일 망자의 슬픔을 함께 한 유족을 태운 버스가 묘원을 벗어난다. 하늘 길에 오르시어 유택에 드셨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눈을 감는다. 진혼곡‘비창’을 이어폰으로 듣는다. 순간, 시인 선배님이 나직이 등을 떠미신다.
“나 정말 괜찮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시는 날 음성도 포근하시다.
순백의 정결하신 임, 이 땅의 여류문단을 섭렵해온 푸른 기개여
하늘 오르신 날이 유례없는 쾌청입니다
아흔아홉의 손을 가진 4월의 노래처럼
꽃잎을 딛고 깨어나는 이슬로 오시고
하늘과의 눈부신 해후로 편히 안식에 드소서
이젠 낙화가 아니라 청솔공원 철철이 꽃 숲에서 피어나시고
풀 바람결에도 생시 그 모습 그 음성으로 오소서
이 유혼의 바다에서 외로운 혼들을 임의 시로 어루만지시고
밤마다 빛나는 별빛으로 내리소서!
시 한편을 영전에 바치며 귀가를 서두른다.
-16. 3. 16. 청솔공원에서
'그룹명 > 수필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날 무심히 (0) | 2021.09.19 |
---|---|
[새아침을 열며]산이 운다 [청량산 愛 흙주기 운동]에 대한 "노정숙" 수필가님의 컬럼소개(2005.12.27경북일보) (0) | 2021.09.19 |
귀동냥 중 (0) | 2021.09.19 |
가을 배웅 (0) | 2021.09.19 |
글쟁이들 대장간/이문자 (0) | 2021.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