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김은주
매양 이맘때쯤 인 것 같다.
호박구덩이에 호박순이 여러 마디로 키가 자라고 청 보리밭이 누릿누릿 치자 물이 오를 때쯤이었던 것 같다. 해소 기침이 심했던 아버지는 봉창 끝머리에 생강 편과 박하사탕을 쟁여 두고 있었다. 박하사탕 옆에는 낡은 양철깡통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늘 동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린 마음에 사탕도 탐이 났지만 그 옆에 있는 낡은 깡통에 마음이 더 빼앗겨 있었다. 동전 하나 얻을 요량으로 어린 것이 아버지 앞에서 설익은 알랑방귀를 참 많이도 뀌었다. 그럴 때마다 성가신 딸년을 내치지도 않고 불러들여 때 국 절은 손바닥에 동전 한 닢을 쥐어 주셨다. 위로 언니들은 길게 목을 빼고 서있어도 하나 주는 법 없이 막내인 내게는 무슨 특혜인 양 동전 한 닢을 하사하셨다. 그런 아버지 귓불 밑에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면 아버지에게서는 늘 쿰쿰한 군용 담요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동전을 품고 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마음 같지 않게 오래 앓다 보니 몸도 마음도 접질러지는 것 같았으리라. 곱살 맞은 딸년들이 아버지 곁보다는 으레 바깥놀이에 더 열중하다보니 어린것들을 불러들일 요량으로 동전을 가까이 두셨던 것 같다. 성정이 수긋한 큰언니는 우체국에서 근무를 했는데 퇴근길에 늘 몇 닢씩 깨끗한 동전으로만 골라와 아버지 양철 깡통에 넣어 드렸다. 누워 계신 아버지의 웅숭깊은 그 속내를 다 들여다보는 것처럼 언니는 그렇게 아버지의 빈 자리를 소나무처럼 버티고 서서 우리를 지켜 주었다. 그런 언니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나는 내내 동전만 탐하여 한 줌을 쥐고 나가 실컷 마음대로 써보는 게 큰 소원 중에 하나였다. 호시탐탐 아버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한 닢 쥐고나오려면 어김없이 그때 기침을 하셨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얼굴이 시뻘게져야만 멈추셨다. 호흡이 끊어질 듯 해대는 기침을 보며 그때서야 동전에 욕심을 낸 내 마음을 후회하고는 했다.
그런 아버지가 세상을 버리던 날은 칠월의 뙤약볕이 쩍쩍 논밭을 갈라놓던 삼복중이었다. 먼지 나는 길을 걸어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골목 끝 저쪽에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걷어가는 어떤 서늘함이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마당으로 들어서니 지붕 위에 아버지의 허연 적삼이 던져져 있었고 마당구석에 버티고 서 있는 대추나무에서 대추 꽃이 마당 가득 떨어져 있었다. 나는 꽃밭 모서리에 앉아 정지된 듯한 그 풍경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학교에서 뛰다시피 하던 내 발걸음은 반걸음씩 쭈뼛대며 아버지 방으로 갔다. 데꾼해진 눈으로 아버지는 자고 있는 듯 했다. 함부로 봉창 위에 있던 동전에 욕심을 가졌던 나는 그날따라 수북이 쌓인 동전을 보면서도 전혀 욕심이 나지 않았다. 팔목을 떨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저 동전이 주인을 잃었을 텐데 하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버지 머리맡에 동개동개 쌓아둔 책들, 안경, 양철 깡통들은 모두 제자리에 차렷 자세로 그러고 있었지만 그 물건을 쓸 사람은 숨소리도 없이 그냥 누워 있었다. 그제야 어린 마음에 죽음은 고요구나 싶었다.
어머니는 나를 불러 옹기그릇에 맑은 물을 가득 떠서 뒤란 굴뚝아래 가져다 놓으라고 시키셨다. 그 바쁜 와중에도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무엇 하러 그곳에 물을 떠다 놔야 하는지 물었다. 코끝에 눈물방울을 달고 어머니는 그랬다. 굴뚝 안으로 짐승이 드나들면 송장이 걸어 다니기 때문이란다. 울고 있는 언니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나는 갖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푸릇하게 녹이 오른 동전 한 닢을 쥐고 나왔다. 동전을 손아귀에 쥐고 펌프질을 했다. 옹기그릇 가득 물을 떠 뒤란으로 갔다. 언제나 어둑하고 침침한 그곳은 습기 때문인지 노린재가 득실거렸다. 굴뚝 반석 앞에 옹기그릇을 두고 돌아서려니 그릇 속에 어린 계집애 한명이 있었다. 앞머리를 짧게 자른 단발머리 계집애, 앞섶이 번쩍 들리는 원피스를 입고 그 옹기그릇 안에 서 있었다. 다시 쪼그리고 앉아 물속을 들여다봤다. 짐승들이 물속을 들여다보면 제 풀에 놀라 달아난다지만 나는 겁도 없이 옹기그릇 속의 내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나는 푸르게 녹이 오른 동전 한 닢을 그 옹기 그릇 안에 던져 넣었다. 얼마나 세게 동전을 잡고 있었던지 때 묻은 손바닥에 아버지의 얼굴처럼 동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지금껏 아버지에게 받아만 오던 동전이었다. 그런 동전을 오늘은 되돌려 드리고 싶었다. 아니 꼭 되돌려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돌려드린 동전을 받았는지 아버지께 물어볼 수 없었다. 굳게 닫힌 입 속으로 불린 쌀을 버드나무 수저로 떠 넣고는 솜으로 막았다. 불룩해진 입은 내가 눈깔사탕을 입에 넣었을 때처럼 거북해 보였다. 꼼짝하지 않고 누워 계신 아버지는 손발이 꽁꽁 묶여 있었다. 답답하겠다 싶어 그 끈들을 모두 풀어주고 싶었다. 치렁치렁 종이꽃을 감은 아버지는 뒷산 할머니 곁으로 잠자리를 옮기셨다. 할머니 발치아래 누운 아버지는 기침도하지 않고 가래 긁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고무줄을 하다가도 땅따먹기를 하다가도 더러 뒷산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쳐다봐도 동전 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떡갈나무 잎 새에 이는 바람소리만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왔다. 주인 잃은 깡통은 하루가 다르게 삭아지더니 더 이상 퇴근길에 동전을 가져다 넣지 않는 언니 때문에 늘 비어 있었다. 시내로 통학하는 언니의 남은 차비가 들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비어 있는 깡통처럼 내 마음속에 아버지도 조금씩 빛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뒷산을 올려 다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아버지는 할머니 곁이 좋으신지 그 후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수학여행 때 사온 다보탑 모양의 저금통이 있어도 나는 오래 동안 양철깡통을 버리지 못했다. 깡통이 다 차도록 동전을 모으면서도 이걸 누구에게 주지? 생각하고는 했다. 아무에게도 줄 사람이 없었다. 어두운 뒤란 옹기그릇 속에 던져 넣은 동전이 나 아닌 누군가에게 준 마지막 동전이었다. 날 내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는 동전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지갑 속 동전을 털어 낡은 깡통에 쏟아 부으며 동전을 아버지 대하듯 한다. 무심한 세월 속에 푸른 녹이 난 그때의 동전은 아니지만 낡은 아버지 깡통 속에 있던 계란 노른자 같던 그 동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평소에는 범접하기가 힘들었던 아버지였지만 동전을 쥐고 나를 부를 때 그 알토란같던 웃음은 지금도 심장 가운데 문신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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