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의 셈법
박 순 태
기다림에 지친 사람과 함께 살다 보면 철학적 사색에 빠질 때가 많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피붙이를 만나야 한다며 몸부림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형제들. 기다림의 간절함이 얼마나 마음을 감싸고 있었기에 몇 십 년 동안 잠꼬대를 계속하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안타까움이 쌓여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어금니 질끈 깨물고 한을 씹으면서 살아가는 삶이 어찌 우리 집안에만 있겠는가.
에디슨의 어릴 적 수학 논리를 빌려오고 싶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하나에서 하나를 더하면 하나가 되고, 하나에서 하나를 뺏을 땐 둘이 된다는 게 에디슨 셈법이다. 에디슨은 선생님의 호통에 찹쌀떡 두 개를 붙여서 하나가 되었다고 논리를 폈다. 이번에는 찹쌀떡 하나를 두고 절반을 잘라서 두 개가 됐다고 또다시 나름의 논리로 설명했다. 그 셈법에 따르면 기다림의 몽유병 환자들이 간단히 치료 될 것만 같다.
우리는 하나 빼기 하나가 둘이라는 답은 너무나도 쉽게 써버렸다. 그 답은 우리 스스로가 쓴 것이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쓰게 했다고 토로하지만, 그 자체가 안타깝다. 뺄셈은 그렇게도 쉽게 답을 썼는데, 덧셈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어찌하여 숙제로 넘겼단 말인가. 숙제를 물려받았으면 그 문제의 근본 원리에 접근해서 하루 빨리 정답을 쓰는 게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강산이 여섯 번 변할 시간을 넘긴 지 오래다.
답을 빨리 써야겠다. 하나에 하나를 더해서 하나가 된다는 정답 찾기에 너와 나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고 본다. 육십 년 세월을 훨씬 넘기고서도 답을 쓰지 못한 채 낑낑거려서야 되겠는가. 주변이 시끄러워 문제를 풀 수 없다고 투덜대기는 정말 싫은 일이다. 저 멀리 독일은 문제를 풀어놓고 신나게 휘파람 불고 있는데 말이다.
물려받은 문제를 풀지 못하고 또다시 숙제로 넘길쏜가. 지구촌에서 우수민족으로 통하는 우리는 에디슨의 어릴 적 수학 논리를 하루빨리 가져와야겠다. 그리하여 찰떡 두 개를 한 개로 붙여야 한다.
6남 3녀로 자라난 아버지에게는 북에 누님 한 분이 계신다. 해방 전 일본에서 살다 뜻하지 않게 북쪽 사람이 되었다. 볼 수 없는 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형제자매들이 토해내는 목소리는 나의 애간장을 태운다.
에디슨이 살아 있다면 웃을 일이다. 찰떡 하나에 또 하나의 찰떡을 붙이면 쉽게 하나가 된다고 소리칠 것만 같다. 우리는 무슨 이유로 찰떡과 찰떡을 붙이지 못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가.
고물을 많이 붙인 찰떡은 잘 붙지 않는다. 찹쌀떡 표면에 붙인 녹말가루는 그 역할이 옆의 떡과 붙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것을 망각한 북쪽의 최고지도자는 혀를 달게 하는 고물을 바르고 또 발랐다. 그것을 받아먹는 어리석은 백성들이야 몸이 망가지든 말든 안중에도 없었다. 단맛에 길들여진 백성의 혀는 새로운 첨가제에 자꾸만 중독되어 왔다. 혀만 뺏은 것이 아니라 몸까지 마비시켰다.
남쪽에서는 찰떡에 비닐을 입혔다. 북쪽의 찰떡 고물이 우리 떡에 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쪽에서 퍼붓는 떡고물에 혼비백산했던 우리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북쪽에서는 시시때때로 우리 쪽을 향해 떡고물을 뿌리려 했으니 말이다. 물론 우리 쪽에서도 체제를 굳히기 위해 이념을 포장하여 민초들을 현혹시킨 적도 있었다. 눈과 귀를 막았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으며 양심의 붓끝을 무디게도 했다.
우리 쪽에서는 먼저 비닐을 걷어내고, 북쪽의 떡고물 벗기기에 안간힘을 쓴 적도 있었다. 북쪽에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벌거숭이 몸으로 소떼를 보낸 적도 있었다. 풍광을 자랑하는 금강산에 자본주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민주의 포대기에 쌀을 넣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마음도 자주 보냈다. 고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개성에 서울의 냄새가 나도록 향수도 뿌렸다.
훈풍이 불었다. 남과 북에서 이산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작은 소망이 풀리고 있었다. 생사를 알게 되었고 만남의 장이 열렸다. 이산가족 면회 신청을 해 놓고 손꼽아 차례를 기다릴 땐, 이미 오래 전에 땅속에 들어가신 할매 할배는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토록 북에 있는 둘째 딸 소식을 듣고 싶어 몸부림쳤던 노인네들이 자꾸만 생각난다. 한편으론 여든 고개를 넘기신 고모와 삼촌이 우리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숨 쉬고 있어 달라고 간절한 기도도 했다.
평화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겹겹이 붙어있던 떡고물이 서서히 떨어지는 듯하다. ‘금강산 찾아가자’로 시작되는 동요를 실감나게 흥얼거릴 수 있고, 마음속에선 삼천리강산에 무궁화 꽃이 피기도 한다. 조국의 부름에 아들을 맡기고서도 두 다리 쭉 뻗고 잠들 수 있다. 운동경기에서 북의 선수가 다른 나라 선수와 싸울 때면 어김없이 팔은 안으로 굽어들었다. 송이술과 들쭉술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와 진열장 안에서 우리를 맞았다. 멈추지 않고 떡고물을 털어내야 한다고 또 한 번 기도를 올렸다.
일장춘몽이었던가. 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할매, 할배를 생각하면서 북쪽의 작은고모 만날 날을 고대하던 우리들 꿈은 끊어진 다리가 되었다. 남쪽에는 새로운 체재가 앉았다. 전임 체재가 벗겼던 찰떡에 잃어버린 십 년이란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비닐을 입혔다. 북쪽은 이빨을 갈면서 자기네 찰떡에 또 다른 고물을 덕지덕지 붙였다. 에디슨이 눈을 부라리며 회초리를 들고 설칠 일이다.
에디슨의 어릴 적 수학 논리를 단순이치로 무시하고 말건가. 북쪽에는 떡고물을 붙이는 이념의 기술로, 아들에 이어 또 그의 아들에까지 승계시켰다. 남쪽에는 굶주린 배를 채워줬던 지난날의 그분을 기억 속에 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 연유로 그분의 딸이 우리 체제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었다. 이산의 아픔을 달래며 순번을 기다리는 우리로서는 기대가 자못 크다.
지하에서 깊이 잠든 에디슨을 깨운다. 두 동강 난 찰떡을 하나로 붙이는 해법을 달라고. 그리하여 금강산 계단에 우리 발자국 많이 남겨 북쪽의 떡고물을 떼어내고, 개성 공단에서 들리는 털바늘 소리에 시장 경제가 싹틀 수 있도록. 그것이 씨앗이 되어 그리움에 지친 사람들 눈에서 빛이 나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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