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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사戰士의 혼魂/박시윤<2012 보훈문예 수필 최우수상>

테오리아2 2013. 1. 1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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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戰士의 혼

 

2012년 보훈문예수필대전 최우수상 

 

                                                                                                      박시윤 

 

 

   길이 없다. 유월의 때 이른 장마가 지나간 곳마다 풀들이 무성히 자리를 잡았다. 산도 몸을 가리고 싶었던 것일까. 푸른 옷자락 너울대며 바람을 타고 틈 없이 결을 이룬다. 전쟁의 의미를 세월 가면 잊어질 생채기쯤으로 여기는 낯선 길손에게 유학산遊鶴山은 쉽게 길을 허락지 않을 모양이다. 수세기 전에 창조되었을 밀림 속으로 조심스레 몸을 들여놓는다. 누군가의 호기심과 욕심으로 생겨났을 등산로를 오늘은 마다한다. 유월의 땡볕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온몸이 눅눅해져 온다.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호국의 산은 단순히 등산의 목적으로 오른다면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라는 선행자의 말에 두 끼를 굶은 터이다.

   피아간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장이었다. 한국전쟁 50일 만에 낙동강전선 모두가 함락되었고,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다부동 전투의 핵심 방어고지는 이곳 유학산이었다. 19508월과 9월 사이 55일 동안 지속된 다부동 전투에서 북한군과 한국군 그리고 유엔군의 수많은 목숨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피로 물든 치열한 혈전이었다. 석적면 328고지, 유학산 839고지, 가산면 금화리 741고지, 가산산성 902고지를 연결하는 20km의 방어선 중심에는 유학산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학이 노닐 만큼 빼어난 경관은 참혹한 전투 속에 의미를 상실했다. 학도병과 신병이 많은 아군은 열세했고 837고지는 가장 희생자를 많이 낸 최고의 격전지로 남았다. 죽지 않으면 내려갈 수 없는 산이었다. 보리밥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올라간 지 반나절 만에 싸늘히 식어 산을 내려간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전쟁은 주먹밥과 군수물자를 져 나르던 민간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무신과 얇은 옷의 순수함은 이념의 대립 속에 흔적 없이 산화했다.

   유학산의 밤은 어머니 얼굴만큼 환한 달이 뜨곤 했다. 산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은 그리움이었으리라. 가난해도 형제간의 우애만은 매섭게 훈육하셨던 이 땅의 어머니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피붙이 간의 거대한 전쟁 속에 밀림의 회초리는 수도 없이 부러져 나갔다.

   837고지 탈환전은 더위가 한풀 꺾이는 9월에서야 완전한 끝을 맺었다. 산야 곳곳에 몸을 누인 채 수습되지 못한 아들들의 주검을 어머니는 홀로 감싸 안으셨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오랜 세월 어머니의 주름은 협곡을 따라 골이 깊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한은 계절이 지날 때마다 바스락히 부서져 아들의 주검을 덮었다. 어머니의 품에서 그렇게 아들은 오래토록 잠이 들었다. 언제 떨어졌는지도 모를 낙엽은 수북이 쌓여 허리춤까지 차오른다.

   유해 발굴 흔적은 구덩이로 남았다. 최고의 격전지답게 수많은 목숨이 연기처럼 사라져 간 곳이다. 때늦은 유해 발굴은 쉽지 않았다. 숱하게 지나간 적군과 아군의 군화 자국 위로 내려앉은 세월은 두꺼웠다. 어쩌면 우리는 세월을 핑계 삼아 그들을 시나브로 잊어갔는지도 모른다.

   난산을 거듭하며 어머니는 밤낮으로 신음했다. 간간이 전해지는 어렴풋한 기억 한 자락에 삽을 잡은 산파가 조심스레 어머니의 호흡을 다독였다. 아들은 오랜 산고에도 쉽사리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몸 구석구석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보인다!”, “삽 내려! 호미 들어!” 대퇴부에서 두개골까지 난산 끝에 세상의 빛을 보는 아들이었다. 태초에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몸이었다. 세월의 변화에 아들도 백발로 변해 있었다. 유학산은 긴 잉태의 기간을 거쳐 그렇게 해산을 시작했다.

   산머리 839고지에 섰다. 깊은 협곡을 따라 나무들이 빼곡하다. 아직도 어머니의 주름은 골이 깊다. 골을 따라 어머니의 가슴에는 아직도 찾아야 할 아들이 많은가 보다. 아주 오래 전에 이곳을 스쳐갔을 바람이 심장과 생각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는 초점을 잃고 쓰러졌다. 형언할 수 없는 눈빛으로 목적할 대상도 없이 그저 저 멀리 흐릿한 능선만 바라볼 뿐이다. 실탄이나 주먹밥을 져 날랐을 민간인들의 숨소리와 쏟아지는 수류탄 막을 뚫고 돌격하였을 용사들의 고함이 들린다. 능선을 따라 손에 손을 잡고 때로는 어깨동무를 하고 백두까지 같이 가자며 이명을 몰고 온다.

   여름의 숲은 눈부시도록 푸르다. 전쟁이 짓이기고 간 생채기는 풀들의 노래로 서걱댄다. 피딱지 같은 이끼들이 오랜 나이를 자랑하듯 층층이 바위틈에 서려 있다. 말라붙은 그들의 붉은 청춘과 미래가 빗물에 씻기어 계곡 곳곳에 초록빛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우거진 나무숲은 말이 없고 밀림의 울창함은 빛조차도 함부로 새어들지 못할 만큼 촘촘하다.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누군가의 호기심과 욕심으로 만들어지는 길이기에 나로 하여금 이 밀림의 푸른 고요를 깨워 길을 낼 욕심은 없다. 벼랑에는 노송들이 서 있고, 물오른 억새가 무성하다. 암벽에 자리 잡은 민초가 군락을 이룬다. 아주 오래 전 학의 부리에서 떨어진 씨앗이 근원이리라. 학이 노닐던 산을 오르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학산을 한가로이 노니는 한 마리 학이 되겠다는 욕심을 품지 않았다. 민초들 사이를 스쳐가면서도 길을 내지 않는 바람이고 싶었다.

   영원(永遠)이 아니던가. 무언가 세상에 태어나고 사그라짐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다시 깨닫는다. 60년이 흘러 그들의 흔적을 찾아 이 산에 숨어든 나는, 한 점의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낀다. 세월의 횡포 속에 기억조차 희미해진 수많은 영혼을 생각하며 조용히 신발을 벗는다. 행여 내 등산화에 몸으로 지켜낸 유학산의 여린 영혼들이 짓밟히지는 않을까 저어해서이다.

   영혼들의 피가 스며들었을 바위와 나무와 흙들을 딛고 민초들이 하늘거린다. 해가 기울고 산 능선을 따라 달빛이 스민다. 달빛이 산행을 하는 동안 나는 잠시 고요를 맛본다. 서두르지 않고 영혼들과 호흡을 하며 천천히 걷는다. 오래 전 잃어버린 오빠들이 하나, 둘 일어나 오랜 산행에 지친 내게 손을 내밀고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울컥 가슴 깊숙이 한마디가 치밀어 오른다.

   “어머니 오빠들이 왔어요!”

   함부로 민초 꺾지 마라. 함부로 민초 밟지 마라. 이름 없이 죽어간 육체를 딛고 꿋꿋이 일어난 영혼의 꽃일지니 또 그들을 잊거나 아프게 하지 마라. 어쩌면 이 숲의 나무와 민초들은 그들이 오랜 세월 만들어 놓은 영원한 안식처이자 그들이 살아가는 소박한 오두막일는지도 모른다. 민초들은 지천으로 피어 올해보다는 내후년 새끼 풀들을 더 무성히 키워 낼 것이다. 찬바람이 불면 민초는 바스락히 말라 바람에 덧없이 산화할 것이다. 서로 같으면서 이념의 대립으로 60년을 맞서고도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는 언제쯤 마무리가 될까. 유학산 자락 굽이굽이마다 민초들이 무성히 자라 군락을 이루는 것은 어쩌면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한 포기 민초로, 한 송이 꽃으로 수천 년 대를 이어 자자손손 뿌리내리고 싶은 이 땅 모든 아들들의 욕망은 아닐까.

   다시 회귀의 길을 택한다. 혹시나 무심코 스쳐왔을 민초들의 손짓에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 주지는 않았을까 뒤돌아보고 싶다. 뼈저린 전쟁으로 회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그때의 아픔을 쉽게 잊을 생각도 없다. 내가 하루 동안 남긴 발자국이 영혼들을 달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푸른 청춘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약속으로 남겨 둔다.

   푸른 나무 한 아름 움켜 안고 유학산이 웅크리고 있다. 또 해산을 하려나 보다. 엄숙하고 근엄하여 어금니 꽉 물고 메아리도 차마 새어나올 수 없는 산. 숙연해지는 마음을 나뭇잎 사이사이 남겨두고 하산을 한다. 수많은 아들을 가슴에 보듬고 유학산은 유유히 세월을 흘러갈 것이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시인의 서랍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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