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스크랩] 일월(日月)의 땅을 읽고

테오리아2 2015. 1. 8. 09:31
728x90

                                    - 경북문화체험 수필대전 수상작-

 

 

                                       일월(日月)의 땅을 읽고

 

 

                                                                                                   -김동수-

 

 

농촌이라고 하면 옹기종기 모인 초가집과 논밭이 떠오르고 어촌이라고 하면 파도에 일렁이는 고깃배와 수평선이 떠오르지만 산촌이라고 하면 선뜻 풍경이 떠오르지 않는다.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지는 곳, 봄이 늦게 오고 겨울이 일찍 오는 곳, 산촌이다.

 

산골에서 자라 산촌 풍경에 익숙한 나그네는 산골짜기로 돌아다니는 여행을 즐긴다. 한반도의 등뼈를 타고 남하하는 길, 영양 일월의 치마폭에서 하루의 고단을 뉘고 어둑새벽 서둘러 정상에 올랐으나 구름에 가려 해돋이를 보지 못했다. 내륙에서 해와 달을 먼저 볼 수 있다 하여 일월산(日月山)인데, 아쉬움을 선녀골 선녀탕에서 씻고 조지훈 생가와 이문열 고향을 돌아 산촌생활박물관으로 향했다.

 

영양이 산촌문화와 민간신앙을 이어온 고을이라는 걸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추를 먼저 떠올린다. 나그네도 그랬다. 수비면에 있는 반딧불이생태공원에서 밤까지 기다려 기어코 개똥벌레를 본 적이 있지만 일월산 자락에 산촌문화와 민간신앙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이 정도면 나그네의 호기심과 향수가 발동할만하다.

 

박물관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굴피집과 너와집 그리고 귀틀집이 어우러진 야외 마당이다. 흙과 돌과 나무, 말 그대로 토속재료로 지어 화려하지 않은 무채색 풍경은 다소 심심해도 마치 벽에 걸린 수묵담채화 속으로 들어온 듯 나그네의 감성은 차분한 위안을 받는다. 그 시절의 생활도구들이 제자리에 있어 보따리 하나만 안고와 무위자연의 삶에 귀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산 비탈길 오르느라 등짝이 땀에 젖더라도 원래의 자리에서 보았으면 하는 욕심은 객기일까. 현란한 네온사인 사이 아스팔트 바닥에서 뜀박질하느라 지친 도시인의 향수이리라.

 

본관 안으로 들어간다. 산촌의 풍습과 생활도구가 밀랍인형과 함께 칸칸이 잘 전시되어 있다. 타임머신이 따로 없다. 자치기 앞에 수줍게 누워 있는 풀각시 앞에서 나그네는 잠시 회상에 빠진다. 풀각시는 손재주가 있어야 맵시 있게 만든다. 나그네는 유년시절에 강아지풀로 다람쥐를 만들거나 자연물로 이것저것 만드는 손재주를 즐겼다. 찍어낸 플라스틱 인형이 어찌 풋풋한 재료로 한껏 손재주를 부린 풀각시의 맛에 비하랴. 생활도구의 크기나 맵시가 모두 달라 조상들의 손맛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그네를 사로잡은 건 민간신앙에 관한 기록과 유물이다. 황씨부인 설화는 귀동냥으로 들었지만 설화 주변에 얽힌 더 자세한 이야기는 황씨부인당을 들러보고서야 알았다. 영양고을을 품은 일월산은 음기가 강한 여산(女山)이며 그믐달 내림굿을 하면 영적 능력이 신통해진다고 하여 전국의 무속인들이 성산(聖山)으로 모신단다. 옛 불교 흔적인 석탑이 몇 남아 있지만 일월산은 황씨부인이 주신이어서 부처님을 모시지 못해 오래된 절이 없단다.

 

오래된 절에서 칠성할매를 모시는 칠성각이나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민간신앙이다. 불교가 우리네 민간신앙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차치하고라도, 일월산 자락의 민간신앙이 다른 종교에게 흡수되거나 짓밟히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거니와 우리네 민간신앙의 문화적 가치를 새롭게 한다. 성황나무 아래 정화수 올리고 소원을 비는 아낙네는 우리네 어머니다. 실타래를 감아 집안에서 가장 높은 대들보 위에 모신 성주신은 우리네 할아버지요, 집안의 재물을 맡긴 구렁이나 두꺼비는 우리네 친구요, 집안을 기웃거리는 잡귀를 뾰족한 이빨로 쫓는 엄나무는 우리네 장난감이 아닌가.

 

부처님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한 일월의 땅이라서 우리네 토속문화가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가. 외래종교와 과학이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내지만 생활에서 배척할 수 없음은 우리네 정서도 자연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 게다. 물아일체라는 철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도 자연물의 하나기에 자연을 공경해야 내가 보호 받는다는 생각은 콩 심으면 콩 나는 소박한 진리가 아닌가. 영양고을을 무속의 땅으로 보지 말고 우리네 민간신앙과 전통 토속문화가 잘 보존된 땅으로 보고 이를 학문과 문화로 정리해 전승했으면 좋겠다. 과학을 믿는 시대지만 내면의 갈증과 길흉화복은 과학도 다 해결해주지 못하니 말이다.

 

전시실을 다 둘러보고 전통문화공원으로 향한다. 흥부놀부, 해님달님 등 전래동화가 조형물로 서있다. 인당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바라보며 연꽃 위에 오롯이 서있는 심청이의 모습이 이채롭다. 그러고 보니 지극한 효성을 민간신앙의 반열에 올려도 괜찮을 듯하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를 꿈꾸는 요즘 아이들이 커서 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를 선호하는 건 당연한 일, 연오랑 세오녀에서 해와 달을 읽은 우리네 선남선녀가 단오 나들이에서 연분을 쌓다가 칠월칠석 날 오작교에서 견우직녀의 이름으로 사랑을 고백하면 안 되나. 우리네 순박한 정서가 사라지는 게 아까워 나름대로 쓸데 있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네 민간신앙을 거슬러 올라가면 자연물에서 해와 달을 거쳐 칠성별에 닿는다. 어쩌면 우리네는 별똥별처럼 떠돌다 지구별에 내려와 다시 별을 꿈꾸는 영혼들, 이 영혼들이 꽃을 피우고 고향별으로 떠난 자리에 사연 하나 없는 들 어디 있으며 설화 하나 깃들지 않은 골 있으랴. 나그네는 일월의 땅에서 아득한 칠성별 너머 자미원(紫微垣)을 떠올린다. 이상향으로 전해오는 별자리, 그래서 우리네는 그리움이 밀려오면 별을 보나보다. 혹시 여기가 자미원과 교감하는 플랫폼이 아닐까.

 

일월의 땅을 주마가편으로 읽고 그 향기를 허투루 말하면 일월신에게 야단이라도 맞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하루 고단을 뉘라고 해가 자리를 비킨다. 곧 산마루에 달이 뜨고 산촌 사람들의 꿈길에 별들이 반짝이리라. (2010.9)

출처 : 김이랑 문학이랑
글쓴이 : 마음맑은아침햇살 원글보기
메모 :

'그룹명 > 수필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뿔  (0) 2015.01.08
[스크랩] 먹  (0) 2015.01.08
[스크랩] 음지에서 피고 지고  (0) 2015.01.08
[스크랩]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동화  (0) 2015.01.08
[스크랩] 너와집  (0) 201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