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이어령
나들이
어머니는 최초의 외출, 집을 떠나고 마을을 떠나고, 그리고 고향을 떠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 집으로 돌아오고 마을로 돌아오고,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법도 함께 가르쳐주셨다. 그것이 한국말 가운데 가장 미묘하고 아름다운 나들이다. 나들이는 나가면서 동시에 들어오는 모순을 함께 싸버린 아름다운 한국말이다.
어머니는 나의 작은 손을 잡으신다. 그리고 보리밭 길과 산모롱이, 마찻길, 신작로 이렇게 작은 길에서 점점 넓어지는 길로 나는 어머니를 따라서 나들이를 한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 오신 작은 가죽구두를 신고 흙을 밟으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 그것은 새 가죽이 구겨지는 구두소리가 아니라 눈부신 이공간異空間 속으로 들어가는 내 작은심장의 고동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길가에 있는 뱀풀을 처음 본 것도, 땅개비가 뛰는 것도, 하늘에 높이 떠서 원을 그리는 솔개도 모두 어머니의 등 너머로 본 풍경들이다. 나들이를 하실 때의 어머니의 몸에서는 레몬 빠빠야 박하분 냄새가 났다.
이 나들이의 절정은 십 리쯤 떨어진 외갓집을 찾아갈 때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장승이 서 있는 서낭당 고개를 넘어야 한다(여기가 바로 나의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마지막장에 나오는 바로 그 서낭당 고개이다). 설화산 뒤편의 이 작은 분지에는 유난히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많았고, 그 나무가 우거진 곳에 외가가 있었다. 긴 돌담을 돌아 솟을대문과 십장생도가 그려진 어머니의 장롱 속 같은 안채로 들어가면 정말 믿기지 ㅇ낳도록 늙으신 외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미숫가루라도 외가에서 먹는 것은 집의 것과는 다른 맛이 난다.
사랑채로 가는 일각대문 너머로는 인기척이 없는 남새밭이 있었다. 한구석 빈터에는 양 모양을 조각한 이상한 식물들이 모여 있었다. 벽장이나 벽지의 무늬도 다 달랐다. 어머니가 원주 원씨이고 외할머니는 덕수 이씨라는 것, 어머니의 어머니가 외할머니라는 것, 그리고 여자들의 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이 나들이에서 배운 것들이다.
외갓집은 공간만이 아니라 그 시간도 달랐다. 벽시계는 모양도 시간마다 치는 종소리도 우리 집 시계와는 달랐다. 종소리는 깊은 우물물 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소리를 냈고 문자판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과 십이 간지의 동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어머니의 어머니가 살고 계시는 이 외갓집 시간은 기왓골의 이끼처럼 훨씬 오래된 시간이 있었다. 이곳에 오면 어머니도 나처럼 작은 신발을 신은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외갓집을 떠날 때가 되면 어머니와 할머니는 서로 우신다. 외할머니는 긴 돌담을 돌아 우리가 서낭당 고개를 넘어 갈 때까지 서 계시고 뒤돌아다 보기만 하면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늦은 날에는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별들이 오고 이 나들이로 나의 장딴지에는 조금 알이 배고 키는 한 치가 더 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떠나는 것과 돌아오는 것, 만나는 것과 헤어지는 것, 번쩍이는 비늘을 세우고 먼 이국의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가 다시 모천母川으로 회귀하는 연어 떼처럼 어머니는 나에게 떠나는 법과 돌아오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이제는 돌담도 다 무너지고 감나무도 잘리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 마당뿐인 외갓집인데도 나는 지금도 가죽소리가 나는 작은 구두를 신고 어머니를 따라 이따금 외갓집 나들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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