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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 샹블랑 · 그림과 시와 단평 / 이령

테오리아2 2018. 3. 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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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샹블랑 · 그림과 詩와 단평  이령




        낙타가시나무풀*



         고비를 건너며 생각했죠.
 
         난
         잘 번식하는 種
 
         이 시간, 이 방향엔
         평균적일 경우 착하다는 엄마,
         왜 하필 소소초죠?
         젊다는 건 이미 봄이니까! 뿌리를 내리렴!
         어떤 방식으로도
         너희는 작고 작아
         엄마가 파리하게 웁니다
 
         난
         매우 적합한 種
 
         축축한 엄마와 갈라진 언니는
         한 번의 우연으로 모래톱을 쌓나요?
         이곳에선 오해가 행복의 근원입니다
         예측불능은 아름다운 거잖아!
         만삭의 언니가 뾰족 합니다
 
         난
         잘 적응할 種
 
         무엇을 위한 출발점인가
         방을 춥게 하려면 벽난로를 두시죠
         차라리 크라이머스와 오스카 클라인을 심지 그래?
         언니의 엄마, 나의 엄마
         제 피로 목을 축이며 연명하는 낙타여!
         다르다는 건 틀린 것과 달라!
         이곳에선 불협화음이 지천입니다
 
         사막의 결이 자주 바뀌는 동안에도 언니는 돌아오지 않고
         가시와 뿌리와 별과 사랑과 침묵과 빛과 다시 어둠
         고비를 건너며 생각 했죠!
         넓이와 깊이는 비례하지 않아
  
         모래집의 다른 이름, 가족
         결국 우린
         필연적으로 자주자주 뭉치고 흩어지는 種
 ​


       ​    *낙타가시나무풀- 蘇蘇草라 불리는 낙타가 먹는 풀







시작노트 이령의 낙타가시나무풀



  소소초(낙타가시나무풀)를 만난 건 2016년 7월 일군의 문인들과 실크로드 탐방 길에서였다. 고비 사막을 횡단하는 야간열차, 창밖에선 지평선까지 내려앉는 별들의 군무가 펼쳐지고 일행들의 탄성 속에서 나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이 세상으로 최초의 나를 불러준 존재, 내게 神이며 내 존재가 드러나도록 ‘있음 그 자체’로 빛나게 해준 어머니가 별들의 표정 속에 있었다.


  다음날 열사의 땅에서 입을 앙다물고 핀 소소초를 보면서 지난 밤 그 별들의 군무가 꽃망울에 내려앉은 것이라 생각 했다. 누구에게나 선택적 출생이 주어지지 않듯 가정이라는 울타리 에서 가족은 증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관계가 아닌가. 낙타에게 사막의 먹거리란 가시 돋힌 소소초일 뿐,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가시에 찔려 피를 흥건하게 흘리면서도 터벅터벅 사막을 횡단했던 낙타를 생각하며 모래언덕에 내려앉던 저녁 별들을 가슴으로 다 떠받치지 못해 아팠던 기억이 또렷하다.

 

  고비고비 인내하며 살아오신 어머니에게 가정은 헤겔의 말처럼 안식처이자 곧 감옥은 아니었을까? 그런 어머니에게 나는 시나브로 가시를 품은 소소초는 아니었을까? 가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가시라도 삼켰을 나의 어머니, 그곳에서 나의 행복으로 환원된 어머니의 희생이 아프게 아프게 빛나고 있었다.

 


이령_2013년 격월간「시사사」신인문학상 등단. 2015년 한중시인공동시집『망각을 거부하며』 출간





《시산맥 2017년 가을호》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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