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 / 임만빈
아파트 옆 차도와 대로가 만나는 귀퉁이에 아담한 집이 하나 있다. 모티(MOTTI)라는 간판을 단, 차도 팔고 칵테일도 파는 집이다. 옛날 고딕체의 예쁜 영문 간판과 앙증스런 건물 모양 때문에 모티라는 간판이 적어도 서양에서, 서양 중에서도 유행이 앞선다는 프랑스에서 따온 불어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술이 취한 나를 택시에 태워 집까지 바라다 준 친구가 고마워, 마지막 입가심만 하자고 억지로 택시에서 끌어내려 모티로 들어서면서 나는 허풍스럽게 말했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나 있음직한 불란서 풍의 칵테일 바에서 한 잔 하자고.
친구가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가, 내가 마음속 어느 한 곳에 언젠가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이국의 멋있는 찻집에 대한 동경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간단히 나의 망상을 깨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얘야, 술 깨라.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그래 사투리면 어떤가. 불란서 말이 아니면 어떤가. 나를 떼어놓고 일하러 호미를 메고 무정하게 산모퉁이를 돌아가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해 주면 되지 않는가. 엄마를 따라가고 싶어 한없이 울던 내가 제풀에 지쳐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산모퉁이를 돌아 불어와 나를 잠재우던 산들바람을 그리워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멋모르고 우리 집 뒤꼍으로 들어온 다람쥐를 잡으려고 달려갔을 때 허겁지겁 집 모퉁이를 돌아 도망치고는, 내가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이자 다시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얄미운 다람쥐를 한 번 더 미워하게 만들면 되지 않는가.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오후였다. 산길 옆으로는 개망초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산모퉁이를 돌자 여자아이 하나가 저 멀리 앞서 걸가고 있었다. 좋아하던 여자아이였다. 무명 저고리 색은 개망초꽃 색과 구별되지 않아 꽃 속에 숨고 검은 치마만 길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숨이 차도록 달려가 와락 끌어안고 싶어 뛰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심장은 갑자기 멈춘 듯 하다가 미친 듯이 팔딱거렸다.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렸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그녀 옆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땀으로 미끈거리는 발과 부자연스러운 몸동작으로 몸은 기우뚱하고 넘어지려 했다. 그 때 언뜻 보았던 그녀의 눈빛, 의아해 하면서도 내가 넘어질까 봐 걱정스럽게 빛나던 그 빛, 모퉁이는 그 눈빛만 내 기억 속으로 끌어오면 되는 것이다.
산등성이에 앉아 모퉁이를 돌아 달려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골짜기에 질러대는 기적 소리만큼이나 공허한, 대처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마음속으로 소리치던 때가 있었다. 소리는 화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에 실려 하염없이 하늘 속으로 사라졌었다. 그 허망함, 그래도 언젠가 이루어지리라는 꿈을 접지는 않았었다. 기차를 타고 날아오르던 그 어렸을 적 야망과 꿈을, 이제는 늙어 자꾸만 시들어만 가는 내 마음 속에, 다시 한 번 더 불을 지펴 태우도록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물으며 끝없이 방황하던 젊음의 시절이 있었다. 소주잔과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원인모를 슬픔과 허망함으로 밤늦도록 흐느끼기도 했다. 삶이 온통 고통으로 채워진 양 안주로 나온 날 고구마를 이빨이 시리도록 깨물던 시기였다. 밤새워 길을 물어 돌아가면 또 나타나고 돌아가면 또 나타나던 삶의 모퉁이를, 안주로 나온 번데기의 주름살같이 세고 따라가면 없어지고 세고 따라가면 없어지던 삶의 길, 삶이란 그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돌고 돌아 가다가 마침내 온 몸에 번데기 같은 고뇌의 주름을 만들고 사라진다는 것을 깨우치려고 조숙한 몸부림을 치던 시절도 있었다. 모퉁이는 그런 것만 나에게 가르쳐 주었어도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가 생겨 속을 태웠다. 초등학교 학생의 젖꼭지 같은 사랑이 아니라 성인의 사랑이었다. 만나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스물 네 시간 빤히 눈을 쳐다보고 싶었던 여인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을 텐데 모퉁이를 돌아서지 못했다. 숨바꼭질 하듯 숨어서 눈길을 주다가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 눈길을 엇갈렸다. 순진함을 빙자한 미련함 때문에 우리는 서로 꼭꼭 숨어 있었다. 결국 사랑하는 자는 휘어진 뒷골목의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별이 되어 내 가슴 속에 박혔다. 지금까지도 캄캄한 밤이면 한 번씩 빤짝거려 잠을 설치게도 한다. 모퉁이는 그런 별만 내 마음 속에 만들어 주었으면 되는 것이다.
결혼하고 자식 낳아 정신 없이 고속도로 같은 삶을 살아왔다. 어느 날 문득 삶이 단조롭고 무의미해졌다. 쭉 뻗은 고속도로 옆 풍경은 언제나 똑 같았다. 내 삶에도 모퉁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다가 한 번씩 피를 토하며 울고 싶을 때는 더욱 그랬다. 남한테 보이지 않는 공간, 움츠리고 울먹일 수 있는 모퉁이가 필요했다. 어릴 적 숨바꼭질할 때 술래가 영영 나를 찾지 못하는 나만의 숨을 장소가 있기를 바랐듯이, 내가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하는 그런 삶의 모퉁이가 말이다. 허연 백발이 서러워서, 지나 온 삶이 아쉬워서 애달피 울 수 있는, 아무도 영영 찾을 수 없는 그런 모퉁이 같은 장소가 나에게 필요한 시기가 다가 온 것이다.([행복해지고 싶으면] 한국의사수필가협회 공동수필집 제3집)
(작법 해설)
작품의 제목 ?모티?는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한다. 이 작품은 인생이라는 것의 한 단면을 모퉁이 이미지에 접목하여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구조상의 첫 인상은 이 작품의 작법이 모퉁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퉁이에는 여러 종류의 모퉁이가 있다. 길모퉁이도 있고, 어떤 물체의 모서리도 있다. 작가는 그 중에서 인생의 어떤 전환점들에 모퉁이의 의미를 맞추고 있다.
작품을 끝까지 읽어보면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모퉁이를 형상화하고 있는 듯이 보이던 작법의 목적이 수필화자 ‘나’가 살아 온 인생의 어느 정점에서 느끼는 모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진행하여 온 모퉁이에 대한 형상화작업은 결국은 인생의 의미를 모퉁이를 들어 형상화한 작업임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생의 한 단면을 모퉁이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이달의 작법 해설은 <무엇이든지 시(詩)화 ? 이야기(story)화 하면 창작이 된다>는 명제를 놓고 생각해 보고 있다. 이 작품의 창작발상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모티’라는 시적 언어 발견 ? 착상에 있을 것이다. 즉 인생에 대한 시적 관조, 시적 인식을 형상화한 작품인 셈이다. 소재에 대한 비유창작이란 곧 소재 속에서 시를 발견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창작문예수필의 기본 작법으로 가장 많이 발견되고 있는 창작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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