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문화 에세이

[스크랩] 감나무 / 김형진

테오리아2 2013. 11. 1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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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 잎이 성글다. 소슬한 바람 한 줄기가 가지를 흔든다. 윤기 잃은 잎이 우수수 진다.

 성근 잎 사이로 드러난 발갛게 익은 장두감이 탐스럽다. 감을 단 가는 가지는 힘이 겨운 듯 휘어져 있다.

 감나무 옆으로 다가간다. 처음에는 탐스러운 감이 먹음직스러워서였다. 부드럽고 달콤한 홍시를 한입 문 듯 입안엔 침까지 고였다. 홍시 하나쯤 뚝 떨어지기를 기대했을는지도 모른다.

 감나무 밑에서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바람 한 줄기가 또 가지를 흔든다. 병든 감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내 눈앞에도 내 어깨 위에도 떨어진다. 내 가슴 안에서도 감잎이 떨어진다.

 이제 장두감은 입안에 침을 괴게 하는 먹음직스럽게 감나무 가지에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먹어 통통하게 몸피를 부풀리고도 끝장을 볼 때까지 매달려 빠는 못된 것으로 보인다.

 고개를 젖히고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숭숭 뚫린 구멍- 혹은 둥그스름하고, 혹은 각지고, 혹은 얼기설기한 구멍- 으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들여다보인다. 그리고 그 아래 발갛게 익은 장두감과 불긋불긋 병든 나뭇잎이 보인다. 허망하다.

 봄부터 그렇게 치열하게 움을 틔우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비와 바람에 부대끼며 살아온 감나무, 감을 살찌워 익히기 위해 자신의 영양과 수액과 기력을 다 소모하여 머지않아 야윈 줄기와 가지만 남을 감나무.

 아! 어머니. 감나무의 애달픈 신고에 하늘빛이 흐려진다.

출처 : 행단문학
글쓴이 : 손진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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