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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默言의 즐거움 / 이정호

테오리아2 2013. 11. 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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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言의 즐거움

 

 여름 휴가 동안 선수련(禪修鍊) 차 지리산 쌍계사를 다녀왔다. 새벽 세시 도량석 목탁소리에 잠을 깨면서 시작하는 승가(僧家)의 하루는 길들여지지 않은 내게는 무척 힘드는 일과였지만 정신 없이 바쁘게 그날 그날 흘려보냈던 내 일상(日常)을 차분히 되돌아 보는 좋은 기회 였다.

  수련이라고 해서 별난 것이 아니다. 평소 생각 없이 지내던 일들을  찬찬히 의식적으로 점검하면서 어떤 것이 참된 나의 모습인가를 살피는 일이다. 먹고 배설하는 지극히 생리적이고 사소한 것들이 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새삼 일깨워 주었다. 앉아 숨쉬는 너무나도 평범한 행위를 통해서 바로 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 하였다.  

   수행중에는 철저히 묵언(默言)을 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여럿이 함께 지낼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서로간 의사를 주고 받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없는 가운데 쓸데 없는 오해가 일어날 소지가 없어 말을 주고 받을때 보다도 훨씬 더 마음이 편했고 가까운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쓰잘데 없는 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말을 하지 않으니 눈과 귀와 생각이 한층 맑고 단순해 지는 것 같았다. 내 눈과 귀와 의식이 잠시 쉴틈도 없이 밖의 경계에 시달려 온게 사실이다. 여기 조용한 산사에서 세상 소식을 접하지 않으니 그렇게 느긋하고 편할 수 없었다. 안으로 부족한게 없으면 말이 필요치 않은 법, 묵언이 내 안뜰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자연 말하고 싶은 욕망도 스러지게 된 것.

   밖으로 내닫던 의식을 안으로 되돌림으로써 나의 진정한 실체를 바라보는 눈을 뜨게 하려는 것이 참선 이라던가, 그러나 며칠간에 깨달음에 이를 수는 없는 것이고 다만 묵언으로 고여지는 내 안뜰의 맑은 연못물에 귀와 눈과 의식이 얼마쯤은 정갈해 지는 듯, 그만으로도 일없는 한가(無事閑)의 기쁨을 조금은 맛볼 수 있었다. 간간히 뜻모를 눈물이 잔잔하게 솟아오를 때 가슴은 맑은 슬픔으로 채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분명 환희였다.  

   파르스름한 새벽과 고요가 묻어나는 저녁, 산사의 새벽과 저녁은 지그시 가슴을 짖누르는 침잠(沈潛)과 청정(淸淨) 그 자체다. 저녁 예불을 기다리는 어둠속에는 만상이 편히 쉬는 휴식이 있다. 솥쩍새 울움이 종소리에 이어지면 산사의 밤은 깊은 잠에 든다. 그리고 다시 새벽, 별은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한데 동쪽 계곡 노송가지에 어렴풋이 걸려 있는 하현달이 뒷꼍을 흐르는 물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고요한 새벽을 지키고 있다.

   이때 만큼은 유정(有情) 무정(無情)에 대한 분별심이 사라지고 모두가 평등한 존재들로 너와 나, 시비선악의 개념이 무의미 해진다. 온 세상이 말없는 가운데 이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가득가득 선열(禪悅)로 충만한 듯 하다. 무언의 설법인가, 온 세상을 뒤흔들고도 남을 우렁찬 침묵의 언어가 온 법계(法界)에 흐르는 듯 장엄하다. 우주는 말이 없는 것일까. 응당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인간의 말만큼 교활하고 혼탁한게 또 어디 있을까. 이 순간 나는 차라리 만고에 무정한 돌에 부끄러웠다.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이기 보다는 말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지혜의 달빛이 선명히 내비칠 수 있도록 마음의 못(淵)을 맑게 채우고 고요히 가라 앉히고 싶다. 내 지금은 어쩔수 없이 말을 해야하는 삶을 살고 있으나 언젠가는 말 없이 그저 담연(淡然)한 나이고 싶다. 그렇게 살다가 영원한 침묵, 말없는 세계에 들고 싶다. 

출처 : 행단문학
글쓴이 : 손진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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