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스크랩] 어머니의 달

테오리아2 2013. 11. 14. 00:18
728x90

어머니의 달

김명규


달이 뜨는 밤이 싫었다.
가을이면 새로 바른 문 창호지에 환한 달 그림자가 슬픔처럼 내려앉는 밤이 나는 싫었다. 해질 무렵까지 동무들과 뛰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을걷이로 집안 식구들은 정신없이 바빴다. 그럴 때면 저녁밥이 늦어져서 잠에 취한 나는 저녁을 굶기가 예사였다.
초저녁 잠을 실컷 자고 나면 건넌방에서 어머니의 인기척이 있을 뿐, 사방이 고요한 밤이었다. 낮에 못다 하신 일을 어머니는 혼자 밤 늦게까지 하시는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쓸쓸한 콧노래 소리가 조용히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어머니의 콧노래는 점점 애조를 띠었고 그러다간 흐느낌이 되어버리곤 했다. 어머니의 고향은 함경북도 청진이었다. 한의학 공부를 하러 청진에 가셨던 청년 시절의 아버지를 만나, 어머니는 혈혈단신 월남하셨다.
내가 여섯 살이던 그 해, 어머니는 서른 살의 고운 여인이었다. 성품이 조용하고 말이 없어 웃어른들께 얌전하다는 칭찬을 들으셨다. 어머니는 북에 계시는 외할머니와 이모들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한 집에 대가족 식구가 사는 살림을 하시느라 낮에는 고향을 그리워할 틈도 없었을 것이다. 그 외로움과 그리움을 어른들 앞에서는 내색조차 못했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깊은 밤에 혼자서 눈물 섞인 향수를 달빛에 적시었다. 그런 어머니가 나는 못 견디게 가엾었다. 어머니가 우실 때면 나도 베개가 다 젖도록 소리 죽여 따라 울었다.
달력이 귀하던 그때 벽에 붙여 놓고 보던 달력은 일월부터 십이월까지 사절지 한 장에 꽉 차 있었다. 할머니는 음력 일수를 손가락으로 꼽아보며 보름이 며칠 남았다는 말을 혼잣말로 하시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무거웠다. 어머니의 눈물이 또 나를 슬프게 하기 때문이었다. 낮에 푸새한 빨래를 달빛에 비추어가며 손질하는 어머니가 콧노래로 탄식을 하실 것이었다. 그 푸른 달밤이 나는 싫었다.
달이 지친 깊은 밤마다 나는 너무 많이 울면서 자랐다.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은 온통 슬픈 감정만이 얼룩진 것 같았다. 기와지붕의 소슬한 추녀가 창호지 문에 판화처럼 찍히는 밤이 나는 싸늘하고 무서웠다. 어머니는 친정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한처럼 안고 세상을 떠나셨다. 서른 아홉에.
내가 여중학생이 되어서도 어머니의 달밤은 찾아들었다. 처서가 지나고 서늘한 가을 기운이 돌면 어디선가 나타난 약장수가 가설 무대를 차리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정비석의 '산유화'나 방인근의 연애 소설을 친구들과 돌려가며 열심히 읽던 무렵이었다. 밤이면 약장수의 손풍금 소리가 서늘한 바람에 실려 들려왔고, 탱자나무 울타리 건너에 살던 여드름 많은 농업고등학교 학생이 '네버런 선데이'를 간드러진 하모니카로 연주하던 그 밤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귀를 대고 듣던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쩌면 바로 나일 것만 같았다.
그 때 우리 집에는 부엌일을 하던 언니가 있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를 어려서 여의고 어머니 홀로 남의 집에서 일하고 받는 품삯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언니는 우리 집에 식모로 들어왔다. 그의 어린 동생도 서울로 남의 집 살이를 갔다고 했다. 보자기에 몇몇 옷가지를 싸서 가슴에 안고 낡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왔던 언니는 열일곱 살이라고 했다.
배가 고파 찾아온 언니가 우리 집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식구로 친숙해졌다. 저녁 설거지가 끝나면 언니는 벽장 구석에 넣어두었던 옷 보따리를 가끔씩 꺼내어 풀어보았다. 옷가지 속에는 노란 봉투가 끼여 있었고 그 안에 무엇인가 쓰여 있는 종이를 펴보고는 다시 접어 소중히 간직해 두는 것이었다. 그런 날 밤이면 언니는 뒷마루에 혼자 앉아 달빛을 받고 있었다. 달빛은 사람의 감정을 여리게 하는 신비한 힘을 지녔나 보다.
저녁밥을 짓기 전 방에 미리서 군불을 땔 때면 아궁이 앞에 앉아 유행가도 시드러지게 곧잘 불렀다. 그 노래 속에는 언니의 순정이 스며 있었다. 노란 봉투 안에 감춰둔 게 무엇인지 나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는 오빠의 주소라고 말하던 언니의 볼은 분홍으로 물들었다. 내 운동화와 교복을 깨끗이 빨아주던 언니는 집 모퉁이 호젓한 곳으로 나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그 오빠에게 편지 한 장 써 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꺼내는 것이었다. 언니는 초등학교 이 학년을 다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학교를 중퇴하였다. 오빠는 언니가 살던 산골 마을에서 시오리쯤 떨어진 동네에 살았었는데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공장에 다니고 있는 형을 따라갔다고 하였다. 언니는 그 오빠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는 평소에 언니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기에 처음으로 연애 편지를 써 보았었다. 오빠 이름은 준식이었다. 내가 대신 써 주었던 편지를 몇 번이고 읽어보던 언니는 편지를 잘 썼다면서 흐뭇해하였다. 편지를 부치고 답장이 올 때쯤 되어 나도 설레임으로 기다렸다. 언니는 우체부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 같았다. 바람에 대문이 삐걱거려도 방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그로부터 보름쯤이 지나 답장이 왔다. 언니는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봉투를 뜯었다. 공장을 다니면서 성실하게 살고 있던 준식 오빠와 연애를 하는 것은 언니가 아닌 나였다.
남의 집에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언니는 행복해 보였다. 그 때 언니의 얼굴은 복숭아처럼 예뻤었다. 준식 오빠를 언니에게로 끌어준 것은 내가 대필해주었던 편지의 힘이 컸던 것 같다. 설 명절에 집에 다녀온 언니는 동네 사람들 몰래 준식 오빠와 만났던 얘기를 비밀스럽게 들려주었다. 언니는 그렇게 우리 집에서 삼 년을 살다가 준식 오빠가 있는 서울로 갔다.
가로등도 없었지만 그때의 가을 달밤은 그림보다 더 아름다웠다. 팔월 대보름 십리 밖에 신파극이 들어오면 집집마다 이른 저녁을 지어먹었다. 과년한 딸들을 울안에 가둬 놓고 살던 때라 그런 밤에야 처녀들은 비로소 먼발치나마 총각들의 얼굴을 훔쳐보며 킥킥거렸다. 가난에 찌들어 밤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돈벌러 가는 연인들의 이별도 달밤에 이루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보름을 향한 달은 둥글게 떠오른다. 가혹하고 괴롭던 추억을 삼킨 채. 그러나 요즈음의 보름달은 옛날의 정취를 잃어버렸다. 오염된 하늘에 뜬 달은 옛날의 그 푸르고 서늘한 빛을 잃어버렸다. 그 시절 벼 포기 사이에 메뚜기가 잠든 고즈넉한 들녘의 달밤을 다시 보고 싶다. 달밤의 밤길을 걷고 싶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가냘프게 한들거리는 밤에 이슬 같은 맑은 눈물로 나를 정화시켜 보고 싶다. 배고픈 설움에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던 그 순박한 처녀들, 달밤이면 서로 만나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서글퍼하던 그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옛날은 지나간 것이므로 그리워지는 것. 라디오 드라마에 흠씬 빠졌던 설레임을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담아 보고 싶어진다.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 같은 달을 하염없이 바라볼 때가 있다. 아득히 지나간 동화를 다시 품어 보면서.

출처 : 광주문인협회
글쓴이 : 수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