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산필<안녕 2013년>
동성로는 인파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젊다. 오가는 이들의 어깨가 부풀어 있다. 삶의 수고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에서일까. 여성의 구두 뒤축에서 빠른 걸음으로 지는 해를 본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서 어느 음식점에 들렀다. 거의 이십 대이다. 밝고 환한 모습이다. 나도 저만한 때가 있었는데 딸아이가 그들 나이가 되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눈도 의식해야 하고 편하게 음식점조차 드나들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작심했던 많은 일을 이루지 못한 채 해를 넘긴다. 연말이 되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기반성은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프로이트는 말했지만 지나치면 압박감을 주게 된다.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월되는 과제로 생각하니 편하다. 심판대에 올려놓고 점수를 매기기보다는 사느라고 수고했다고 격려와 칭찬을 해본다.
한해를 살면서 내 삶은 어떠했을까. 사소한 것도 풀리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 복이 없다고 불평했었다. 더 많이 가지려 했고 더 높이 오르려고 했다. 신은 그날그날 분량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복을 주셨는데 말이다. 시련은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계획이었음을 늦게야 알았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신도 나약한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달라는 것은 많고 주면 감사할 줄 모르고, 감사해도 그때뿐이니 가련할 것이다.
가시에 찔린 일도 있었다. 그것마저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 찔림은 삶이 주는 주의사항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여닫아야 할 문들이 얼마나 많은가. 얽히고설키는 것이 싫어서 될 수 있으면 거리를 두는 것을 좋아한다. 내 뜻대로 내 원칙대로 인생이 살아지던가. 나를 낮추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어도 자존심만 건드리고 떠나는 사람. 매몰차게 내치지 못해 어정쩡하게 대처했던 일. 365일 만큼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감당해냈다. 대견하다. 삶이 어떠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만든 모습이라 후회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
이해가 가기 전에 미안했던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한 사람이었었다. 거절하고 나니 빚을 진 것처럼 늘 가슴 한쪽이 불편했다. 어쩌다 마주쳐도 내가 눈길을 피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다. 일을 마치고 오면서 케이크를 샀다. 케이크 하나로 그분의 상한 마음이 보상될 순 없지만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야박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빌려주지 않는 이유는 친구 잃고 돈 잃기 싫어서이다. 그래서 돈거래는 좀체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지 못해도 해명하려 들지 않는다. 언젠가는 내 본심을 알게 되리라 믿으면서.
2013년 한해도 안녕했다. 따뜻한 집이 있어서 안주할 수 있었고, 일용할 양식이 있어서 굶지 않았다. 일터가 있어서 생활비 걱정을 들었고 건강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이 어떤 부요함보다 행복이란 걸 알게 되었다
. 2013,. 12. 30 <김근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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