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글

대일산필<우산> -김근혜

테오리아2 2013. 12. 31. 20:47
728x90

대일산필<우산>

 


김근혜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할머니 몇 분이 우산을 쓰고 간다. 그 옆에 어정쩡하게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따라가는 또 한 할머니가 있다. 허리까지 굽어 잰걸음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다. 갑자기 내린 비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나 보다. 함께 걷는 할머니들은 우산을 씌워줄 생각이 없는지 빠른 걸음으로 간다. 같이 쓰고 가도 될 터인데 모른 체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너는 우산도 없느냐고 그 할머니에게 호통을 친다. 소리가 너무 커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말투로 보아 노인정에 같이 있다가 나온 것 같았다. 보기가 안쓰러워서 빨리 할머니 옆으로 다가갔다. 우산을 씌워드릴까 하다가 마음을 더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떨어져서 걸었다.

 

   우산도 씌워주지 않으면서 무시하는 할머니들이 얄미웠다. 우산도 없느냐는 소리가 내 귀에서 떠나질 않는다. 흘려버리면 그만이지만 그 할머니에게만 겨냥한 말이 아닌 것 같아 내 마음도 언짢았다. 그 말은 자식도 없느냐로 들렸다. ‘자식이라고 다 같은 자식이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호통을 치는 할머니는 왠지 당당해 보였다. 체구도 좋고 허리도 꼿꼿하다. 옷도 때깔이 좋은 것으로 보아 넉넉한 우산을 마련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못 들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적허적 걷는 할머니가 슬퍼 보였다. 살아온 세월만으로도 힘겨웠을 텐데 타인에게조차 서러움을 당하고 있다. 그 광경을 보노라니 어머니들의 삶이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우산만 되어준 세월이었지 당신을 위해 우산을 쓴 적이 있었을까. 삶이 힘에 부쳐도 자식이 있었기에 절망치 않았을 할머니의 삶. 어머니에게 자식은 잘나나 못나나 사랑하는 분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난마저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할머니는 자식을 위해 산 세월이었지만 정작 할머니의 우산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할머니의 가슴까지 비가 적실 것만 같아 애가 끓었다

 

  가끔 시장가는 길에 그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대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오는 사람, 가는 사람을 번갈아 보며 시선을 쫓는다. 이젠 노인정도 가지 않는가 보았다.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반가움에 말을 건네곤 하는데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는다. 말동무를 해줄까 망설이다가 못 본 체하고 말았다. 사람이 그리웠을 무게가 느껴져 가슴이 아렸다. 서러운 눈빛이 오래도록 골목길에 맴돈다. 할머니의 눈빛이 남아있는 골목길을 갈 수 없어서 다른 길로 돌아다닌다. 그 할머니의 눈빛엔 어머니의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띈다. 빗방울이 튈까 봐 상체를 아이 옆으로 바짝 기울였다. 바람 불면 넘어질까, 비가 오면 맞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리들의 어머니 상이다. 그 할머니도 자식을 위해 온몸을 기울여 우산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먼 훗날 저 할머니같이 버림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구도 예외는 될 수 없을 것 같아 씁쓸했다.

 

       2013. 12. 9 < 김근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