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그러나, 아내는 괜찮다 / 신현식

테오리아2 2018. 3. 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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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내는 괜찮다 / 신현식

 

 

 

딸의 목소리는 곧 숨이 넘어간다. 아내가 위급하여 구급차를 불렀다는 전화다. 가슴이 철렁 한다. 어느 병원으로 걸 것인가를 다급히 묻는다. 마른 침을 삼키며 어떤 증상이냐고 되묻는다. 구토가 심하고 어지럽다 하니 종합병원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넘어지거나 자동차 사고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어디에 부딪친 것이 아니라면 조금은 안심이다. 혈압도 정상이어서 뇌질환은 아닐 것 같다. 예전에 귓병으로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그 쪽이 의심 된다. 그렇다면 구태여 대학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다.

나는 우리 집 부근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라고 한다. 딸은 쭈뼛거리며 그래도 대학병원으로 가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일단 보내라 하고 부리나케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을 하자 곧 이어 구급차가 도착한다. 간호사가 체온과 혈압을 체크하고 심전도 검사를 하는 사이 담당의사가 응급실로 내려와 상태를 살핀다. 곧이어 CTX-rey 촬영에 들어간다. 실로 일사분란하다.

아내는 오후에 딸네 집에 갔다. 외손녀의 재롱을 보는 중 어지러워 옆방에서 혼자 쉬었다고 한다. 안정을 취하면 곧 괜찮아 지리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런데 두통은 점점 더 심해져서 천정이 빙빙 돌아가고 마침내 구토까지 하게 된 모양이다. 그 광경을 본 딸이 깜짝 놀라 구급대를 부른 것이다. 아내가 구급차 신세를 진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였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체한 것인가 배탈이 난 것인가를 물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점심 때 외식을 했으니 내 짐작으로는 배탈이었다. 상비약이 준비 되어 있으니 먹으라고 했으나 참아 본다며 먹지 않았다. 차츰 증상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얼른 먹으라고 물과 약을 코앞에 대령해도 먹질 않았다. 오히려 약을 그렇게도 좋아하느냐며 눈총을 주었다.

머쓱하여 내 방에 와서 일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보라지 하다가 그래도 안 되겠다싶어 다시 약을 대령 했다. 그제야 마지못해 약을 먹었다. 그런데도 통증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 -”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자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이제 약을 먹었으니 나아질 것이라며 가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병일지도 모르니 가자고 했으나 가지 않는다고 버텼다. 언성을 높여도 막무가내였다.

끌고 갈 수도 없어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약 기운이 도는 데는 5, 아니 10분은 걸릴 것이다. 이렇게 셈을 하는데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이고!” 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제야 안 되겠다 싶었던지 구급차를 부르라며 손짓을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건만 조처라는 것이 검사뿐이었다. 체온과 혈압 체크는 물론 심전도를 시작으로 온갖 검사가 끊이지 않는다. 환자는 고함을 지르는데 담당의사는 오지 않았다. 응급실은 초기대응이 생명이건만- 거대 조직의 순발력에 분통이 터졌다. 삼십여 분 지나자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는 듯했다. 집에서 먹은 약이 효력을 내는 것이리라. 결국 몇 시간이 지나서야 담당의사가 내려와 내린 진단은 예측한대로 장염이었다.

아내도 처음 약을 먹으라고 했을 때 먹었으면 박테리아인지 바이러스인지 박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고통을 겪지도 않았고 구급차 신세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나 병원이나 초기 대응을 잘 못한 탓으로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약봉지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의 귓병도 증상이 약하더라도 빨리 약을 사 먹었으면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귓병도 하루 이틀 앓은 병이 아니라 무슨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곧 나아지겠지 하고 버틴 것이다.

아내는 영양제이건 치료제이건 약을 싫어한다. 몸에서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그저 나아지겠지 참으며 버틴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도 어느 정도는 체내의 면역물질이 퇴치를 시킨다. 그러나 한계를 넘으면 자가 면역력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하다.

병을 치료하는 것과 화재 진압은 흡사하다. 불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물 한 컵으로도 끌 수 있다. 그러나 한계를 넘으면 수십 대의 소방차가 오더라도 끌 수 없다. 담배꽁초 하나가 마을을 다 휩쓸어 버리고, 감기로 시작하여 폐렴으로 죽지 않던가. 그래서 초기대응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내는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을 할 때엔 단호하다. 뿐만 아니라 할 일을 두고 그냥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자기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왜 재바르게 대처를 하지 않는 것일까. 지난해에도 골든타임을 놓쳐 그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말이다. 그것이 내가 풀지 못하는 의문이다. 아무튼 그런 아내 때문에 나는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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