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
무심한 기계도 때로는 낯가림을 하는 것일까.
연전에 새로 장만한 자동차가 자주 말썽을 부려 한동안 부지런히 정비 공장을 들락거린 적이 있다. 나는 몇 차례나 손을 보았는데도 어찌하여 여전히 옳잖은가 하며 정비기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정비기사는 긁은 땀방울을 연신 소맷자락으로 훔치며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점검 하다가 내게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말 투로.
"선생님, 자동차도 낯가림을 한다는 것 여태 모르셨어요?"
범상치 않은 한마디가 뒤통수를 내리치는 충격으로 나를 가격해 왔다. 나의 죽어 잇던 의식의 심연이 급류처럼 요동을 쳤다.
'낯가림' 이라.
아하, 그랬었구나. 내가 여태 녀석에게 재대로 정다운 정을 쏟지 않고 있었구나. 그래서 녀석이 내게 낯가림을 한 게로구나.
나는 반성을 했다.
십 수년을 자동차와 한 몸처럼 가까이 지내고 있건만 나는 아직 한 번도 그이를 생명체로 대한 적이 없다. 그저 값이나 따지고 모양새나 따졌을 뿐이다.
그 정비기사는 평소 자동차를 대할 때 얼마만큼 깊은 애정을 쏟기에 녀석의 낯가림까지 꿰뚫고 있는 것일까. 그에게 있어 자동차는 그저 감정 없이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이거나 짐을 실어 나르는 수단에 불과한 정도가 아니었다. 호흡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노래하는 어엿한 생명체였음이 분명하다. 엔진은 그 애의 심장이며, 갖가지 노즐들은 얽히고 설킨 그 애의 핏줄이며, 핸들은 그 애의 마음인 셈이었다. 말하자면, 자동차에 대한 그 나름의 철학은 직업의식적 차원을 초월해 있었다고 해야 옳겠다.
말없는 기계가 낯가림을 한다는 깨우침, 그건 나에게 종교보다 가슴에 와 닫는 설법이었다.
이처럼 단순한 기계조차 낯가림을 하는데, 무릇 생명 가진 것에 있어서이랴.
낯가림은 아직 애정의 결핍 상태다. 그 어색한 조우에 부지런히 생명의 물을 주고 사랑의 거름을 뿌려야 한다. 그래야 정이 붙고 살가워질 것이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갓난아기를 대할 때 그 어린 생명은 자신에게 전해 오는 애정의 진실성 여부를 본능적 감각으로 알아차린다. 참사랑으로 마주하면 연신 방글거리다가도 애정 없이 의무감으로 대하면 금새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어른들의 세계인들 그리 다를 게 뭐 있겠는가.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타인을 대한다. 여기서 자연히 마음은 멀어지고 낯설음이 자란다. 이런 낯설음이 마주 대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힘에 부치게 만든다.
진실한 마음으로 맺어진 교분은 손질 잘된 가구처럼 반들반들 윤기 나지만, 이해관계로 얽힌 사귐은 이끼 묻은 푸석돌처럼 틈이 벌어져 이내 허물어진다.
나는 이후로 애정 어린 마음을 쏟아 내 자동차를 돌보기로 했다. 그래야 녀석도 나에게 낯가림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내 앞에서 방글거릴 것이다. 비단 자동차에 한하겠는가. 사려 깊은 관심과 믿음으로 세상사를 대한다는 그 마음가짐 하나가 뭣보다 소중하리라.
마음의 문을 열고 살피면 처처에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 세 사람이 동행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그 정비기사는 설혹 배운 것은 나보다 적을는지 몰라도, 내가 발벗고 쫓아가도 결코 미치지 못할, 보석처럼 반짝이는 삶의 지혜를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는 바로 내게 가르치지 아니하고 가르침을 준 훌륭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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