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출근길에 통화했으면 됐지 뭐 하러 밤에 또 하나 싶어서 건조한 목소리로 “왜?” 했더니 “엄마!” 하는 목소리가 축축하다. 오래전, 부대에서 동계훈련을 받고 들려줬던 목소리와 똑같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아들은 며칠 동안 혹한과 싸우다 그만 동상에 걸려 병원에 왔다고 했다. 그때 “엄마!”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와 닮은, 괴롭고 지친 목소리였다.
그 후에 이런 목소리를 들려준 적이 없었는데 웬일인가 했더니, 직장 생활 10년 만에 자존감이 이렇게 무너지긴 처음이라고 했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일의 양도 양이지만, 그보다는 무조건 ‘나 때는 말이야’로 밀어붙이는 힘을 막아내기 버겁다고 했다.
‘오죽하면 내게 전화했을까’ 싶어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아들이 시시콜콜히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들은들 생소한 직장 용어 때문에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이해도 안 됐다. 그저 네 말을 듣고 있다는 성의 표시로 한마디 한다는 게 기껏 “그럼, 직장 다니지 마.”였다. 그러자 아들이 픽 웃으며 “어떻게 그렇게 해요. 애들도 있는데….” 했다. 그러자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나는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한 후에 기어코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생각해 봐라. 아버지는 네 나이보다 훨씬 어릴 때 전쟁터에 가서 돈 버셨어. 너희들 자라는 것도 못 보고….” 그러자 아들이 풀 죽은 목소리로 죄송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 때는 말이야’를 또 들먹거렸다. 그것도 치사하게 내 이야기도 아닌, 이란·이라크전이 한창일 때 이란에 파견되었던 남편의 이야기로 아들의 입을 막고 말았다.
‘나 때는 말이야.’ 이것이 속된 말로 꼰대들이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재치 있는 어느 바리스타가 카페라테 위에 흔하게 그렸던 하트와 잎사귀 대신 ‘말[馬)]’을 그렸나 보다. 이름하여 ‘라떼는 말이야’다. 그걸 보면서 ‘누군지 잘했네. 재치가 있네.’ 했는데, 아들에게 위로보다는 충고해야 직성이 풀리는 암꼰대 질을 하고 말았다. 오죽 힘들면 아무 힘도 못 주는 내게 전화 했을까. 그냥 들으면서 ‘그렇구나. 힘들겠구나’ 하면 될 걸….
하긴 얼마 전 모 프로그램에서 ‘음식점에 가서 나보다 어린 사람이 수저를 놓지 않으면 버릇없다고 생각하는가?’ 외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당신은 꼰대인가? 아닌가?’를 체크해 보라고 했는데, 나는 다섯 가지 다 해당됐다. 그때 얼마나 놀랐던지….
며느리 오기 전에 명절 음식 해놓기, 내 생일에 외식하기, 특히 지난가을 김장할 때 며느리들은 각자 집에서 아이들과 있으라 하고 남편과 아들들만 데리고 했기에 꽤나 너그러운 신세대 시어머니라고 생각했는데 내 안의 깊은 곳에는 보수적이고 권위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나 보다.
집안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며느리 보란 듯 바지 대신 치마를 입었고, 가족의 생일에는 반드시 편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아들들이 출근길에 전화해야 마음 놓았고, 손자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안 인사를 시키는 며느리를 ‘착한 며느리’라고 동네방네 자랑했다. 지금처럼….
‘내가 며느리였을 때는 말이야.’ ‘내가 신입사원일 때는 말이야.’ ‘내가 문단에 발을 들여놨을 때는 말이야.’
혹시 ‘나 때는 말이야’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 제자들이 힘들어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진 않을까.
사나흘 전, 어느 지인의 하소연이 떠오른다. 스승과 대여섯 살 차이밖에 안 나건만, 자기 의견을 조금만 강하게 말해도 ‘누구 씨! 어디 선생에게 대들어?’라고 해서 예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게끔 만든다는 말.
나는 적어도 그런 선생은 되지 말자 다짐하지만, 자기 흉을 자기가 알면 그렇게 하진 않겠지. 스스로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꼰대’일 확률이 높다는 말을 떠올리고 있을 때 동네에 사는 제자에게 전화 왔다.
“선생님! 오늘 날씨가 라떼 드시기 좋은 날 같아요. 차 마시러 갈까요?” 한다. “고마워. 나도 오늘 커피 생각이 많이 났는데…. 그 집에서 만나자.” 해놓고 지갑을 챙긴다. 나이 먹을수록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가는 찻집에선 아직도 라떼에 잎사귀를 그려주지만, 오늘은 ‘라떼는 말이야’를 마신다 생각하고 말수를 줄여야겠다. 물론 말수가 적은 제자 앞에서 성공할 확률은 오늘도 낮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