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김근혜
아파트 앞에 조그만 개울이 있다. 그 개울이 이쪽과 저쪽을 가르고 있다. 개울 저쪽에 외딴집 한 채가 쓰러질 듯 서 있다. 예사로 봐서 저쪽에 집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옮겨갈 만한 곳이 없어서 제 몸 감추고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겨울바람에 홀로 떨고선 외딴집을 보니 옛 생각이 난다.
결혼을 하면서 구입한 임대 아파트가 5년 만에 내 집이 되었다. 작은 평수지만 행복했다. 기쁨에 젖을 겨를도 없이 전세를 놓아야 하는 사정이 생겼다. 남편은 결혼 전에 산더미처럼 빚을 쌓아 놓았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갚아도 십여 년의 세월이 걸릴 만큼의 빚이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원금과 이자를 공제하고 사는 삶은 늘 적자를 면치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사원주택으로 집을 옮겼다.
처음 집을 보러간 것이 겨울 초입이다. 마흔여 가구가 두 채씩 어깨동무하고 있는 낡고 키가 낮은 집이었다. 산 속의 바람은 차가웠고 빈집에선 미처 뽑지 못한 잡초만이 한들거리고 있었다. 위풍을 막겠다고 창문에 비닐을 쳐놓았는데 바람에 찢어져 펄럭이는 모습이 스산했다. 빈민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멋지게 그려진 전원주택을 꿈꾸며 잰걸음으로 달려간 길이었다. 형편상 가릴 입장은 아니었지만 내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니 감사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래된 집이라 방마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아서 겨울이면 모든 것을 안방에서 해결했다. 밥도 안방에서 먹고 잠도 온 가족이 한 방에서 잤다. 겨울에 세수라도 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연탄보일러에 양동이만 한 물통을 연결해서 물을 데워 사용했는데 물의 분량은 한 사람이 겨우 머리에 물을 적실 정도였다. 마당에는 잡초들이 하루가 다르게 사람 키 높이만큼 자라났고 집 주변에는 뱀이 나올까봐 백반가루를 뿌려 놓고 살았다. 밤이면 천장에서 뛰어노는 쥐를 쫒기 위해 베개를 던지며 잠을 설쳤다. 이런 곳에서 사는 것이 초라해서 누구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
교통 문제는 더 심각했다. 시내버스가 다니질 않았고 자가용도 없었다. 사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회사에서는 하루에 한 번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그 차를 놓치면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같은 지역인데도 택시기사들은 시외요금을 요구했다.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반찬거리도 일주일 분량의 것을 비축해 두고 먹어야 했다. 미처 손이 닿지 못해 버려지는 것도 많았다. 돈을 모으는 것보다 낭비가 될 때도 있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으며 내가 감수해야할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불편한 생활 때문에 남편이 져 놓은 빚이 더 자극이 되어 이틀이 멀다하고 열심히 싸웠다. 갈라서자는 말이 몇 번 오가면서 서로가 지쳐갔다. 둘째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마음은 누그러워졌다. 남편에 대한 미움이 조금씩 걷히고 안아 줄 아량도 생겼다. 부모님을 보살피느라 진 빚을 가지고 내가 앙앙거리는 것이 불효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측은지심이 생겨 내 고통보다 남편의 허물을 덮게 되었다. 살다보면 비천에 처할 때도 부요할 때도 있다는 성경 구절에 큰 위로를 받았다. 편안함을 얻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를 막았다. 현란해 보이는 모든 것엔 눈을 가렸다. 귀와 눈이 막혀 있으니 고개를 들던 욕심이 수그러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갈등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사원주택에서 십여 년을 살면서 순리대로 사는 것이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라는 걸 느꼈다.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꽃이 핀다고 젊음의 대가를 지불하고 체득한 삶이라 성숙되고 의연해지지 않았을까. 고비가 있었으니 인생의 애환을 맛보며 삶이 주는 강한 애착도 느꼈을 것이다. 때론 불편한 것이 인생에 크게 유익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어서 작은 상처 하나도 가지지 않으려 하지만 낮고 어둔 곳에 인생의 진리가 있는 건 아닐까.
철새들은 보금자리가 일정치 않다. 생존을 위해선 늘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살이도 철새와 비슷한 것 같다. 나도 적은 돈을 조금이라도 불리기 위해서 이십여 년 동안 네댓 차례는 옮겨 다녔다. 사원주택에 살면서 쪼개고 푼푼이 모아둔 적금으로 조금씩 평수를 넓혀갔다. 작은 평수였지만 집값이 올라 큰 평수로 이동하는 행운도 있었다. 이젠 이사할 만큼의 기력도 없고 텃새로 살고 싶은데 집은 나와는 애초에 인연이 없는가보다.
큰 아이가 대학 등록금을 마지막으로 납부하는 날, 숨을 좀 쉴 수 있을 거라 안도 했었다. 아이가 취업을 해서 주는 용돈으로 남들처럼 자식자랑하며 여행이나 다닐 줄 알았다. 복병이 숨어있으리라곤 예상도 못했다. 큰 아이는 입사 원서를 내는 곳마다 다 떨어졌다. 신은 모질고 냉정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내딛는 것 같았다. 아이의 표정이 곧 내가 관리해야할 얼굴색이었다. 웃을 일이 있어도 아이 앞에선 참아야 했다. 죽겠다고 방안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가슴이 타들어 갔다. 아이는 자꾸만 아팠다. 보고 있는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럴 땐 자식의 입장이고 싶었다. 엄마라는 입장이 너무 작았다.
소낙비 맞은 것도 아닌데 견디지 못한다고 누굴 닮아서 나약하냐고 위로 반, 타박 반을 한다. 아이한테 소리를 지르지만 나에게 하는 책망이다. 아이는 한없이 여리기만 하다. 온상에서 자란 화초 같아서 실바람에도 허리가 꺾인다. 험난한 세상에 내놓으려니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홀로서기를 진즉에 가르쳤다면 꿋꿋이 견디지 않았을까.
집이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혹자는 재산 가치로서의 집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난 보금자리로서의 역할에 비중을 둔다. 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먼저 가족이 생각난다.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정겹게 식사하는 장면이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난 창틈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불빛을 바라본 적이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귀를 기울였었다. 두런두런 들려오는 가족들의 얘기나 간간히 흘러나오는 웃음이 고대광실보다 행복해 보였다. 고대광실에서 냉랭하게 사는 것보다 소담하지만 행복이 있는 안온한 집이 진정 가족이 편히 쉴 곳이 아니겠는가. 그 이상의 낙원이 어디 있으랴. 능력이 있어서 좋은 집에서 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없다고 해서 기 죽을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집값이 내린 후부턴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매매가도 예전 같지 않다. 거품이 다 빠져서 분양 받았을 때의 가격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집이 없는 서민에게는 집값 내린 것이 좋은 기회이겠으나 가진 사람은 있음으로 해서 더 가난해진다. 집이라도 팔아야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데 걱정이다.
어미의 타는 마음을 큰 아이는 알까. 차라리 어미 속을 모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집을 팔아서 커피집이라도 해준다고 하니 아이는 신이 나는 모양이다. 작지만 집이라도 있어서 아이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다는데 위안을 삼아야 하나. 어디에서 살든 맘 편히 등 기댈 수 있으면 내 집이지 명의가 뭐가 그리 중요할 것인가.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미워서 쥐어박고 싶은데 손이 주춤한다.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멍하게 있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 마음이 가벼워야 하는데 무거워지는 건 왜 그럴까. 손을 놓으려니 위태롭고 잡고 가자니 능력이 한계에 부딪힌다.
남편은 여전히 빚쟁이로 산다. 십여 년 동안 빚을 다 갚았나 했더니 나 몰래 조카들 세 명에 동생들까지 대학 다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형님 댁을 보살핀 것 같다. 남은 것은 숯덩이 같은 가슴뿐인지 돈 얘기만 하면 벌컥벌컥 화를 낸다. 그런 남편에게 의논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다.
내 삶은 갈수록 작아진다. 긴 터널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내 집에서 살아보나 했다. 호사를 누리며 살 팔자는 아닌 것 같다. 집 한 채 장만하는 것도 나에겐 오르기 힘든 높은 산이었는데 운명은 이것마저 시기하는지 겨울나무처럼 알몸으로 서라 한다. 꿈길인 듯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려니 심란해진다. 겨울나무로 서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아파서 울지 못한 삶이었다. 너무 아픈데 웃으면서 살았다. 내 얼굴은 호사스럽게 산 듯 평온하기만 하다. 내 얼굴을 보고 아픔을 발견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식 앞에서 어미가 눈물을 보인다면 아이는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부모는 아무리 아파도 자식이 보는 데선 강한 척 하는 게 아닐까. 너무 오래 참고 살았나보다. 이젠 눈물구멍도 앙탈을 부린다.
겨울나무처럼 허허롭다. 내 살점 다 내어놓고 알몸으로서야 하는 까닭이다. 온몸엔 상처투성이로 깊은 골이 패였지만 내색 한번 할 수 없다. 힘들면 슬며시 팔을 저어도 될 터인데 미련하게 내 몸 다 내어놓고 혼자 가슴 쓰다듬고 있다.
아파트 앞 오두막도 제 할 일을 다 했는지 근래에 들어 보이질 않는다. 겨울바람만 빈터에 휑하니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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