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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테오리아2 2022. 2. 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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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과 돌멩이와 한낮 - 신춘희

 

눈사람 한쪽 눈이 삐뚤게 붙어 있다

돌멩이 하나 머금었다

 

지금 조금씩 녹고 있는데

눈두덩이가 시릴 만큼 너를 오래 붙잡고 싶어

미안하지만 나는 점점 온기를 갖고

안타깝지만 너는 점점 부피를 줄이고

한동안 우린 밀착된 결빙으로 중력을 버티지

눈송이들 모여 숨겨둔 방

이곳은 해의 꼬리가 닿지 않아 심장을 두기 좋지

두근대는 돌멩이가 감정이라면

겨울은 안전한 밀실이야

사람들은 그저 눈빛을 얹어주거나

손끝으로 훑어볼 뿐

녹아내려야 하는 운명엔 관심이 없지

내가 너를 지키는 방법은

구름을 불러 모으는 일

눈이 자꾸 짓물러지고 있어

눈 속에 갇힌 마음이 죄다 흘러내리고 있어

우리가 견뎌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처음 눈덩이 궁글렸을 때의 설렘 같은 거

아이들 모두 돌아간 뒤 입꼬리를 움직여본 거

별들이 싱싱해서 우리는 하나였던 거야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낮이야

돌멩이와 눈덩이가 분별되어야 하는 시간이야

마지막 냉기가 사라지면

너는 나를 놓아줄 테지

그때까지 나는 너의 공중이 될 거야

머리가 기울고 있어

몸에 금이 가고 있어

물의 장례가 시작되고 있어

 

툭, 돌멩이 하나 그렁그렁 쏟아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