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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봄

테오리아2 2012. 7. 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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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따스한 햇빛 속에 미소를 띠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나는 음악을 들을 때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 볼 때

 잃어버린 젊음을

안개 속에 잠깐 만나는 일이 있다.

문학을 업으로 하는

나의 기쁨의 하나는 글을 통하여

먼 발자취라도 젊음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젊음을

다시 가져 보게 하는 것은 봄이다.


잃었던 젊음을 잠깐이라도

만나 본다는 것은

헤어졌던 애인을 만나는

 것보다 기쁜 일이다.

헤어진 애인이 뚱뚱해졌거나

말라 바스러졌거나 둘 중이요,

남자라면 낡은 털 자켓같이

축 늘어졌거나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시뻘게지고, 눈빛이

 혼탁해졌을 것이다.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며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하다

 

 

순간마다 가까워 오는 봄- 피천득 '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