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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7회 중봉문학상 시상식 모습 |
중봉조헌선생선양회가 주최하고 김포시가 후원하는 제8회 중봉조헌문학상 수상작이 발표됐다.
중봉조헌문학상은 우리 김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칼을 잡고 일어나 왜군과 싸우다 금산싸움에서 700의병과 함께 장렬히 전사하신 조헌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작된 상이다. 조헌 선생은 동국 18현 가운데 한 분이자 사회개혁가, 교육자, 유학자, 문인, 사상가로 김포가 낳은 위인이다.
2014년 2월 공모를 시작한 중봉조헌문학상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모 장르는 시와 수필이었으며, 신인·기성 작가를 불문하고 응모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20일까지 접수를 받은 결과 총 146명 문인들이 시 445편, 수필 139편을 보내주었다. 대상 1인에게는 상금 300만원, 우수상 2인에게는 각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9월 중봉문화제 때 함께 열릴 예정이다.
한편 지난 5월 23일 동천아카데미하우스에서 열린 문학상 최종 심사에는 시 부문은 천선필, 김민철, 최재영, 이명식, 박미림, 이소연 시인의 작품이, 수필 부문은 박윤진, 김상문, 남명희 3인의 작품이 올랐다. 심사결과 이하준(김포문화원장,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중봉조헌선생선양회 이사장, 수필가), 홍문표(명지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창조문학가협회 회장), 홍성식(인천재능대학교 교수, 평론가) 심사위원들은 대상에 천선필 시인의 <어떤 혁명-중봉선생을 생각하며>를, 우수상에 박윤진의 ‘살아있는 책’, 김민철의 ‘의병아리랑’을 선정했다.
□심사평
제8회 중봉조헌문학상에 전국 경향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중봉문학상 응모를 계기로 처음으로 붓을 든 참신한 신인부터 이미 중앙일간지의 신춘문예와 권위 있는 문학지를 통해 등단하여 주목할 만한 문학이력을 쌓고 있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까지 응모해 주었다. 중봉문학상은 시와 수필을 대상으로 하는 바, 총 146명 문인들이 시 445편, 수필 139편을 보내주었다. 특히 이번 응모에서는 예심을 거치는 과정조차가 매우 힘겨웠다니, 그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이 모든 것이 중봉 선생의 뜻과 의기를 기리는 이 역사적인 사업이 더욱 넓게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으로 알고, 귀한 작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제8회 중봉조헌문학상을 통해 확실히 느낀 점은 글쓰기의 대중화시대가 만개했다는 것이다. 응모 편수나 응모한 분들의 연령대에서도 그러한 점으로 느낄 수 있지만, 각 작품에 녹아있는 이야기 속에서 더욱 그렇다. 이는 또한 시민들이 글쓰기의 대상에서 글쓰기의 주체로 오롯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시민 모두가 문학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시민들의 글쓰기가 당시만 해도 수기나 일기 같은 형식을 통해 표출되었다면, 이제는 고도의 세련된 문학형식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토로하듯 이야기하는 데서 자신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형상화할 수 있는 데까지 발전한 것이다. 시민들 누구나 모두 글쓰기에 참여해 담론을 형성할 수 있는 글쓰기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이번 ‘중봉조헌문학상’ 응모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응모작품에서 시는 중봉 조헌선생의 삶과 사상을 형상화한 것이 특히 많았다. 중봉 선생이 현재 우리 삶에 던지는 파문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을 선양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문학상 응모인 경우, 목적의식만이 과도하게 불거져서 인물은 있으나 문학성은 없는 작품이 허다하다. 혹은 선양의 목적만 지나치게 앞서 아무런 역사의식 없이 소위 찬양 일변도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응모작에서는 균형 잡힌 시선으로 중봉 선생을 현재화하고 있는 시들이 상당했다. ‘중봉조헌문학상’의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반면 수필의 경우는 그 장르적 특성에 맞게 개인의 일상사가 매우 다채롭게 펼쳐졌다. 글을 풀어놓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글쓰기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두 말할 여지없이 훌륭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너무나 똑같다는 점이다. 소재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들도 너무나 흡사한 것이 이번 수필 응모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것이다. 육화된 개인의 삶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이를 문학적 사상화로 이어가는 힘이 약했다고 하겠다.
거듭 강조하지만, 중봉조헌문학상은 중봉 선생만을 소재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봉 선생은 국난의 위기에서 의연히 떨쳐 일어난 의병장이자 뛰어난 학자․사상가였고, 이는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다. 하지만 중봉 선생이 시 332수를 남긴 시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본 문학상은 탁월한 문학자이기도 했던 중봉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응모작 중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할 때 중봉 선생의 삶과 사상을 다루었는가의 여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여러 문인들의 이름을 건 문학상 응모에서 그 문인 자체를 소재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상 수상작은 천선필의 <어떤 혁명 – 중봉선생을 생각하며>로 결정하였다. 시의 주제와 이야기성이 특히 뛰어났다. 이 시는 김포시 북변동 삼거리에 서 있는 중봉 선생의 동상을 아주 쓸쓸하게 그려내고 있다. 흔히 동상은 숭모(崇慕)의 표상일 텐데, 이 시에서는 혁명을 꿈꾸다 돌아와 동상 아래서 지친 몸을 누이는 남루한 어떤 사내의 모습과 겹쳐지고 있다. 동상으로 서 있는 중봉 선생을 보며 정반대의 시선을 던진 것이다. ‘어떤 혁명’이라는 제목이 가지는 여러 울림과 선양이라는 이름의 일종의 허울이 갖는 씁쓸함 등이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수상에는 박윤진의 수필 <살아있는 책>과 김민철의 시 <의병아리랑>를 각각 선정하였다. 박윤진의 <살아있는 책>은 수필이 가져야 할 요소들로 잘 짜인 글도 표현의 감각도 뛰어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제의 치열함은 상당했다. 시대와 지식인을 말하면서 에돌아가지 않고 정공법으로 맞서고 있는 패기가 신선했다고 하겠다. 우수상으로 또 한편 결정한 것은 김민철의 <의병아리랑>으로, 이 시는 매우 잘 짜인 시라 하겠다. 의병이라는 소재주의의 한계도 칡으로 상징화하는 수법으로 신선한 반전을 주는 수작이라 하겠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이 ‘중봉조헌문학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문학적 역량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원해주신 전국의 문인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늘 문운이 함께 하길 기원한다.
□대상 당선작
어떤 혁명 - 중봉선생을 생각하며
천선필
북변동 삼거리에 중봉선생 동상이 서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손바닥에 태양을 받쳐 들고 있다
강풍에도 펄럭거리지 않는 중봉선생의 구릿빛 도포자락
한 사내가 신문지를 깔고 동상 그늘 속에 눕고 있다 그늘이 마치 제 무덤처럼 오랫동안 품고 살아온 가슴을 둥글게 말고 있다
사내는 어떤 혁명을 꿈꾸다 돌아왔을까 어느 병사의 죽음처럼 여기 지치고 고단한 몸을 고요히 잠재우고 있다
신문 기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내의 두 발이 그늘 속에 싸늘히 버려지고 있다
동상 위에서 태양이 흘러내리고 도시소음이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다 바닥에 빈 술병이 사내의 남루한 얼굴을 지켜보고 있다
북변동 삼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자동차불빛이 중봉선생을 위한 조문 행렬처럼 길게 늘어서고 있다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동상의 도포자락 핏빛으로 물들고 있다
□당선소감
대상 수상자 천선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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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필 시인 |
자주 횡단보도를 건너고 중봉 선생의 동상을 봅니다. 노을이 동상 위로 물들면, 내 하루의 혁명이 또 수포로 돌아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현실이 더 각박해지고 촌각을 다투며 쫒길 때마다, 나의 작은 혁명이 나를 멀리까지 뒤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도 북변 삼거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 중봉 선생의 빛나는 정신이 나를 또 횡단보도 앞에 불러 세웁니다. 김포에 살면서 이런 영광스런 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굳이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중봉조헌선양회 측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번 기회를 위기로 삼아 더 마음 정진할 것을 스스로 약속합니다.
프로필 : 1971년생/김포시/2013년 대한민국 한춘문학상 대상 수상
□우수상 수상작
의병아리랑
김민철
칡은 한때 하얀 옷을 입던 의병이었다
주검이 썩은 내로 봉분을 세우는 동안 어둑발을 뿌리에 단단히 고정시키는 칡, 혼불은 풀잎 뒤에 매복하고 기습적으로 두려움을 터트리곤 했다
밭을 가는 소리에 밀리고 밀려 무덤들의 울타리가 되어 버린 칡넝쿨아, 비석은 붓의 느낌보다 핏자국에 익숙하고 관이 없는 시신들은 어둠 밖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본다
그러나 구름의 화살촉을 잘못 만진 어리숙한 산새들이 많았는지 길고긴 장마와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흙속에서 버선 끈을 꽉 조이고 햇살로 나오는 칡의 검은 얼굴들을 보라 도라지꽃이 그들에게 독한 향기를 투구로 씌워주는 것도 보라
죽은 의병의 심장에서 자줏빛 칡 함성이 피고 지는 소리를 함께 들어보자.
□우수상 수상작
살아있는 책
박윤진
중봉 조헌. 필적을 보고 있으려니 한 남자의 두 모습이 그려진다. 책상에 앉아 글을 읽고 쓰는 것의 기쁨을 아는 사람,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추구하는 호탕한 사람. 이 두 가지 면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었다는 게 쉬이 실감나지 않는다. 덥수룩한 수염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대장부가 책을 읽고 앞길을 내다보아 상소를 올리는 장면이 그래서 내 상상 속에서는 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요즘 같은 시대의 지식인이 나라에 곧 위기가 닥칠 것을 확신했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똑똑한 사람이다. 아침 밥상 앞에서 늘 그랬듯 국내외 신문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저를 탁 내려놓고 만다. 이리저리 짜맞춰보니 곧 엄청난 재앙이 찾아오게 생긴 것이다. 아무리 경고를 해도 고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은 태평하다. 고위층은커녕 아내조차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는 과연 비행기를 타지 않을 수 있을까? 10년 이상 공부한 사람이 태반인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경고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확실히 배웠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거나, 나서야 할 때 침묵했던 사람들을 다룬 기사를 접할 때에 나는 느낀다. 지식인의 가치관은 너무나 많이 변하였다는 것을. 어쩌면 조선시대와 같은 애국심을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사회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 시점이므로. 그러나, 그걸 감안하더라도 현대의 지식인들은 진흙탕 싸움보다 탁상공론이 익숙하다. 시위에 나가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어리석다고 한다. 피 흘려봤자 결국 변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잠자코 있는 것이 능사인 양 말이다. 밉보이면 정말로 죽을 수도 있는 절대 존재인 왕에게, 자신의 말이 틀리면 도끼로 자신을 죽이라는 상소를 올린 중봉 조헌의 행동은 이런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본보기가 되는가. 특히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려는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실로 큰 충격이었다. 문학은 그래도 사회 문제를 환기하는 용감한 행위라고 자부했었다. 식탁에 앉아 술과 함께 세상의 부조리함을 안주 삼아 씹거나, 그저 뒷짐 지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그의 이야기를 읽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느낀 것이었다. 그는 어떤 전설에 나오는 영웅보다도 더욱 영웅 같았다. 글을 사랑했고, 권력을 가졌으나 좀처럼 자신을 지키고 숨으려들지 않았다. 아닌 것과 맞는 것을 가리고 주장할 줄 알았다. 몇 번의 귀양과 모함이 바른 삶에 대가처럼 찾아왔을 지라도 그는 그렇게 살았다. 세상이란 강가에 돌을 던지고 도망치면 그만이라는 나의 가치관에 그가 진짜 돌을 던진 기분이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나의 상상은 비로소 또렷해진다. 처음 필적을 보고 그의 얘기를 훑어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그는 말도 안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소중한 생태계 속 멸종 되어 가는 동물처럼, 꼭 필요하지만 스러져가는 존재였던 것이다. 생애 최후의 전투 날, 금산 아래 경치는 어떠했을까. 피비린내 역한 산 위에서 그가 어떠한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하다. 원래 있어야 할 수에 턱없이 모자란 관군을 데리고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를 벌인 그는 그러나 올곧기만 한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로, 나라를 사랑하는 혈기로 돌격하며 조선의 안녕을 바라고 또 바랬겠지. 그는 우리에게 한 권의 살아 숨 쉬는 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드는 사람도 아니었고, 비겁하게 뒷짐 지고 죽은 책 행세를 하지도 않았다. 자유로운 만큼 위태로운 시대, 지식인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선 언제나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시위를 어리석다 하고, 유명인이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 거북해 한다. 물론 무모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살아서 한국 땅을 밟는 것이 어떤 사람들 덕분인지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어느 정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