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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신석정 촛불문학상 당선작] 최정아

테오리아2 2015. 12. 2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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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신석정 촛불문학상 당선작] 최정아

 

발아

 

 

밤하늘의 별들도 때론

지상의 저녁을 즐기고 싶어

갈라놓은 수박에 총총 박혀 깜박이고 있다

누구도 뿌리와 잎의 근원이 씨앗임을

의심해본 적 없을 것이다

 

칼끝만 살짝 댔을 뿐인데

끈적끈적한 핏물

-, 기억 안쪽까지 환하다

 

누군가 씨를 없앴다고 떠들 때도 난 믿지 않았다

인공수정, 시험관아기, 씨 없는 탄생 어디 있다고

 

삼복염천에도 씨앗을 품어

숨죽여 견디는 것이 모태의 삶이라면

초승달 돌돌 말아 삼키고

열 달 동안 누워 지낸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꼭 다문 입,

칼에 찔린 듯한 산고에 죽을힘으로 쏟아낸 비명

내 손톱에선 자꾸만 반달이 떠올랐다

식구들 둘러앉은 저녁

수박 한 조각 입에 넣어보면

불경하게도 내가 엄마 씨앗이었던 것을

 

단맛에 섬광처럼 녹아드는 핏물

엄마 젖이 이러했을까

뱉어낸 씨앗 몇 점

아이들은 풋것처럼 쑥쑥 자라고 있다

 

 

 

 

 

 

 

(심사평)감각적인 형상화와 언어의 균형감

 

<발아>는 수박씨라는 평이한 소재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점이 장점이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시의 표면에 드러난 언어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충분히 안정되어 있는 점도 호감이 갔다

 

-심사위원 / 신경림, 오세영, 정양, 안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