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 개방된 수필 (윤 재 천 교수)
이어령 교수는 “21세기는 수필의 시대”라고 말한 바 있다.
시대변화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작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수필은 대중을 계도啓導할 수 있을 정도의 주관이 없다면, 그 글은 혼魂이 없는 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어느 하나의 색깔에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자기 스펙트럼을 구축해 주제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논리와 정취를 펴는 융통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서의 “주제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논리와 정취를 펴는 융통성”은 독자의 구미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개성과 빛깔 없는 무색무취의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수필은 경험에 따른 후일담이나 간직하고 있던 것의 고백 정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교시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 않다.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수필이 사람들에게 힘을 충전시켜주는 기능을 다하도록 자기 발전에 최선을 다하며 정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점유하고 다양한 감동을 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는 무수한 벽이 존재한다.
그 벽을 허물지 않으면 벽 안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다. 자연히 쇄국적인 수필을 낳을 수밖에 없다. 독자가 글을 신뢰하고 그를 통해 마음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먼저 의식의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 그들을 개방된 공간으로 안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감금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다.
수필의 명예를 지키고 수필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수필을 쓰는 사람들의 몫이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글만 고집해서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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