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 우산을 쓰고도 옷이 젖을까 노심초사 걷고 있었다.
“같이 쓰고 가요!”
대학생 또래의 아가씨가 갑작스레 뛰어드는 바람에 나는 거절할 틈도 없이 그녀를 받아들였다. 맹랑하다.
‘안 되는데요.’라고 말을 할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그녀는 내 우산 안으로 들어왔고, 우산 밖은 장대비가 내리는데.
그녀는 허락지 않은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처럼 몸의 반은 밖으로 내놓고 어색한 몸짓으로 따라왔다. 나는 맨망한 그녀의 행동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쳐다보았다.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며 동행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옷소매를 끌어 내 몸쪽으로 바짝 당겼다. 옷이 다 젖었지만 더는 비를 맞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작은 우산이다. 온자 쓰고 있어도 굵은 빗방울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일 우산을 둘이 썼다.
연애 중 남녀는 우산이 두 개 있으면서도 하나의 우산을 쓰곤 한다. 나도 남자 친구와 그러고 싶었다. 팔짱을 끼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인데, 작자 우산을 쓰고 가면 십 리는 떨어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방 속에 우산을 숨겨 두고 같이 쓴 적도 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절반을 우산 밖으로 내놓으면서도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직각으로 있어야 할 우산의 각도가 점점 기울어졌다. 팔이 힘이 들어서가 아니었다. 사랑의 무게와 비례해 우산의 기울기가 변했다. 그렇게 한 우산 아래에서 속 깊은 사랑을 느낀 적도 있었다.
갑자기 맞은바람이 불어와 우산을 앞으로 숙였다. 바람의 힘에 맞서 걸어가는데 우산이 뒤로 밀리면서 뒤집힌다. 얼른 접었다 다시 편다. 그녀가 손으로 슬며시 내 팔을 당긴다. 염려하는 마음이 전해온다. 물에서 막 건져낸 빨래같이 그녀의 소매에서 뚝뚝 빗물이 떨어진다. 내 팔에도 빗물이 흐른다.
점점 그녀의 오른팔이 젖고 어깨가 젖고 아랫도리까지 젖었다. 차가운 날씨인데 살갗의 따스함 때문인지 맞댄 어깨가 따뜻하다.
비를 맞으면서도 기분이 좋은 것은 왜일까. 나를 삼킬 것 같은 비바람도 어깨를 맞대며 걸으니 두렵지 않다. 초면일지라도 옆에서 어깨를 맞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우산도 내 마음을 아는지 자꾸 옆으로 기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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