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워오자 문상객들이 모두 돌아갔다. 친정아버지의 장례 마지막 날 밤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산소를 가게 된데다 형제들이 다 모인 자리라 잠들기 전 차라도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늦은 밤이어서 갓 말린 우엉차를 내놓았다. 셋째가 제 찻잔을 들여다보더니,
“누나, 내 차에는 우엉이 적게 들었네. 사심(私心)이 작용한 것 같아.”
“이를 어째! 되는 데로 집어 넣다 보니 ~.”
“농담이야, 농담! 누나도!”
그는 과한 몸짓으로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그의 수려한 얼굴 위로 언뜻 스치는 그늘 한 자락을 보고야 말았다.
형제가 많다 보면 상대적으로 서운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3%의 앞선 자와 그만큼의 밀린 자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정이 그러하고 사회가 그러하고 시대가 그러하다. 우리 집에서는 셋째가 그랬다. 5남매 중 딱 중간, 아들 셋 중에서도 둘째 아들이었다. 맏이라서, 몸이 약해서, 애교가 많아서, 공부를 잘해서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는 형제들 사이에 끼어 그는 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형하고 다투면 건방지게 형한테 대어든다고 혼나고, 동생을 때리면 형이 돼서 동생 하나 건사 못한다고 쥐어 박혔다. 맞고 오면 사내자식이 못나게 맞고 다닌다고 야단맞고, 때리고 오면 커서 뭐 되려고 어린것이 주먹부터 쓰느냐고 핀잔을 들었다. 운동회에서 달리기 일등을 해 와도, 초등 6년 개근상을 타 와도 칭찬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다른 누군가가 돋보이는 항목으로 부모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형과 달리 일급 판정을 받았을 때 동생은 엄마가 자기한테는 한 번도 보약을 챙겨 준 적이 없었다고 말해 식구들을 민망하게 했다. 그랬다. 그는 건강했기 때문에 보약을 챙겨 먹이지 않았고, 평범했기 때문에 공부를 닦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맏이는 처음이라서, 막내는 몸이 약해서 온 가족이 음식을 싸 들고 면회를 갔지만 둘째는 그마저 하지 않았다. 최전방에서도 늘 잘 있다고만 하여 우리 모두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우리는 그를 믿었고, 걱정하지 않았다. 편지마다 지낼만하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어느 여름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군에서 연락이 와서 부모와 내가 달려갔을 때는 사건이 종지부를 찍은 뒤였다. 평소 폭력적인 헌병에 욱하여 주먹을 휘둘렀던 것이었는데, 부대 내에서는 동생에 대한 중징계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몰골을 한 아들을 본 아버지가 다짜고짜 따귀를 후려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전 날 밤을 꼬박 새운 아버지의 걱정이 왜 그런 식으로 분출되었는지 나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동생은 죄인처럼 고개를 떨궜지만 나는 그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숨겨진 분노를 보았다. 이등병이었던 그가 상사에게 대들었을 때는 그로서도 할 말이 많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가족인 우리에게조차 아무 것도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 순간 작정한 듯 입을 닫았고, 눈을 맞추려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빨리 돌아가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무거운 침묵 끝에 그가 등을 돌렸을 때 나는 그의 각진 어깨가 세상을 향한 분노와 증오로 뭉쳐져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마음 속 깊은 곳에 짐승처럼 몸을 웅크려 호시탐탐 포효할 때를 노려왔음에 틀림없었다. 그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제 편이 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있었다. 어쩌면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자기 속에 갇혀 버렸는지도 몰랐다. 우리가 다시 면회를 갔을 때는 가족으로부터도 자취를 감춘 뒤였다. 월남 파병을 자원했던 것이었다.
군 복무를 마친 동생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을 때는 씩씩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의 상처를 건강하게 다스려 왔음이 틀림없었다. 몸속 깊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폭력성마저도 곰삭고 발효되어 사내다운 에너지로 승화된 것 같았다. 나는 동생이 성숙한 감성으로 그를 향한 아버지의 빗나간 사랑을 이해해 주기 바랐다. 인간의 내면에는 당사자가 감당할 수 없어 회피한 감정 덩어리들이 무의식층을 이루고 있다지만 그 또한 사랑의 다른 얼굴이 아니던가.
우엉차를 마신 형제들이 장례식장에 얼기설기 누워 잠을 청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신음소리에 눈을 떴다. 희미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중에 어둠을 등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동생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 붙박이처럼 꿇어앉아 있었다. 밤을 꼬박 밝혔음이 틀림없었다. 동생은 울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울음이 아니었다. 덩치 큰 짐승이 온 몸으로 토해내는 신음소리였다.
“아버지.”
동생이 통곡을 삼켰다. 대신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가 아버지의 애도를 통해 자신을 애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또한 그 아픈 의식을 통해 망자와 화해하고 있음도 알았다.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던가. 사랑과 절망. 미움과 분노. 아픔과 상처. 나도 그의 등 뒤에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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