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시 방

[스크랩] [2013 중봉조헌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손병걸/김근혜/이종섭

테오리아2 2016. 1. 1. 13:06
728x90

[2013 중봉조헌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손병걸/김근혜/이종섭

 

 

<대상>

 

의병의 편지 1 -이름 없는 뼈

손병걸

 

 

강기슭에서 뼈가 발견되었다 아무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푸석푸석한 뼈는 할 말이 없고 나라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오래전 무너진 돌무덤 속에 의로운 침묵은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간간이 쟁쟁했다

는개비가 내리고 축축이 젖은 바람은

푹 파인 상처 같은 돌 틈에 고이고 고였다

그 순한 침묵의 뼈는 켜켜이 흐르고 흘러

시푸른 강물처럼 역사를 완성했다

나는 오늘 펼쳐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으며

새삼 문장이 명백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시린 강물에 손을 씻듯 상형문자를 어루만지는 오후

강기슭 배롱나무에서는 꽃향기를 쏟아놓지만

핏빛 일렁이는 모래톱에서 의병의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무너진 돌무덤을 휘감던 물의 파열음은

성곽에서 뜨거운 기름이 튀는 소리처럼

귓전에서 먹먹하게 붉다

지나면 아름다운 그림 같은 단 한 줄의 역사

이름 없는 뼈들이 활자로 일어서는 글귀쯤에서

나는 죽음을 함부로 듣고 해석한 날들을 후회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 목숨을 내놓을 충의忠義가 없었던

번지르르한 내 이름 석 자가 깊은 강 수심 속에 잠긴다

 

 

 

 

 

 

 

 

<우수상> 수필부문

 

김근혜

 

 

장기읍성 둘레길이다. 나지막한 성벽은 여인의 허리선처럼 굽이굽이 감아 돌고 있다. 훤히 드러낸 등허리를 밟고 지인과 자분자분 걷는다.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성벽은 각기 다른 얼굴로 정겹게 서 있다. 푸른 이끼 속에서 새싹은 움을 틔우려고 사르락사르락 발길질을 한다. 발아래 엎드린 동해바다가 유난히 굼실거리며 금방이라도 달려올 기세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낮은 집들이 어미 날개 아래 든 병아리 같다. 포근함이 밀려드는 오후다.

 

지나가는 여행객의 말소리가 외딴집의 담을 넘었는가보다. 반가움에 뛰쳐나온 할머니가 여행객의 말을 받는다. 사람 구경하기가 얼마나 귀했으면 길손들의 발목을 잡을까. 할머니의 풍기는 인상으로 봐서 젊은 날은 담벼락에 심어둔 매화만큼이나 고고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읍성에 얽힌 전설을 엉거주춤 담에 기대어 듣는다.

 

설국이라는 고려 여인이 있었다. 성벽 축조에 동원된 사랑하는 지아비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읍성을 찾아왔지만 힘든 노역으로 인해 지아비는 이미 죽고 없었다. 설국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눈물로 몇 년을 보내다 지아비의 무덤 위에서 죽고 만다. 한 맺힌 설국의 눈물이 비가 되었는지 스무 날은 퍼부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여인이 죽고 나서부터 노랑나비 한 마리가 읍성 주변을 가끔 맴돈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무슨 사연일까. 때마침 노랑나비 한 마리가 나폴거리며 날아왔다. 서둘러 나비를 쫒았다. 한참을 가다보니 길이 끊어져 있었다. 길이 없는 길이었다. 설국이라는 여인이 창자를 끊어낸 흔적 같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막다른 길에서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인연의 길 같다.

 

남편과 아홉 번 굽을 길을 지나면서 고개를 간신히 넘은 적이 있다. 애초에 곡절 없는 삶을 기대한 풋내기는 아니었다. 가슴의 나침반이 서로 반대로 도는 것이 문제였다. 일방통행이 더 위험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과 우왕좌왕, 좌충우돌한 삶이었다. 타인의 방식을 엿보면서 삶이 자라지만 그 사람의 공식엔 흉내내기가 없었다.

 

남편은 내 목소리를 감지하지 못했다. 목소리는 웅웅거리다 벽에 부딪혀 산하할 때가 더 많았다. 낮게 속삭일 때도 가파르게 치솟을 때도 있었지만 남편의 가슴에 닿기도 전에 통통거리며 튕겨져 나갔다. 늘 독백으로 끝이 났다. 독백은 또 다른 독백을 불렀고 벽을 통과하지 못한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내가 내는 소리와 남편이 내는 소리는 늘 빗겨갔다. 그 사이 사이에서 많은 소리들이 만났지만 허공으로 사라졌다. 남편은 제 소리에만 오래 갇혀 있어서 남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남편을 용서하지 않으려고 벽이 되었다. 살아온 횟수의 절반을 사수해서 얻은 것은 분명 승리의 영광이어야 했다. 풀 죽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기쁨의 축가를 불러야 했다. 패배자보다 더한 쓰림이 나를 옥죄는 것은 왜일까.

 

성벽을 두드려본다. 둥글고 넉넉한 소리가 난다. 세상을 품고 보듬은 소리다. 우리 부부가 내던 경박한 소리와 다르다. 서로의 목소리를 아끼고 사랑하며 배려한 순한 소리였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고요함이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고 있었다.

 

성벽은 견고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리들을 마음으로 들으려고 귀를 다스렸을까. 흩어지는 소리들을 한 곳으로 모으기까지 시간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었을 것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달빛 스치는 소리에도 목청을 돋우고 서로 잘났다고 제 각각의 소리를 냈다면 울타리가 되진 못했을 것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티격태격하며 우리를 앞질러 가던 남자와 여자에게 눈길이 머문다. 여자는 남자에게 못마땅한 것이 많은가보다. 날이 선 손톱을 세우고 있다. 배배 꼬여서 좀체 꺾이지 않는다. 남자는 그 심보를 꺾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끈질기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땐 맞받아치는 것 보다 한 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것이 바람을 피하는 방법이리라. 남자는 급하게 해결하려들면 벽만 높아진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몇 발자국 물러서서 숨을 고른다. 지인과 나는 앞서려다가 그들 부부를 지켜본다.

 

남자는 씽긋 웃으며 부드러운 눈길로 여자를 쳐다본다. 그 눈길이 내 맥박을 뛰게 한다. 남자와 여자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의 호흡을 맞추려고 애쓰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 동행이란 저런 것일지도 몰라'

 

튼튼한 성벽도 세월의 힘에 허물어지듯이 삐걱거리는 사람의 일이랴. 부부 간에서조차 내 목소리만 내려다보니 장벽이 되고 마는 건 아닐까. 흙으로 벽을 쌓을 때 볏짚이나 자갈을 적절히 섞어 넣어야 응집이 되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무조건 좋은 자재로 벽을 쌓는다고 견고하지는 않을 것이다. 볏짚이나 자갈이 균열을 막아주는 숨구멍 역할을 하듯이 사람 사는 일도 아옹다옹 얽히고설키면서 엉겨 붙는 것이리라. 서로의 장단을 반죽하면서 삶은 익어 가는지도 모른다.

 

길이 끊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행로를 찾았다. 다른 길을 찾기까지는 여러 갈래의 길에서 헤맸지만 결국엔 출발점으로 귀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 여행이었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 살펴보게 된다. 가던 길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굽은 길만 한 것이 없다. 우리네 인생길과 많이 닮았다. 읍성의 굽은 길도 그 중의 하나인 것 같아 내가 찾는 이유이다.

 

성에 와서 성을 쌓는 법을 배운다. 주어진 삶이 소중해진다. 삶의 각고가 누적된 후에야 행복을 알듯 우리는 선조들의 숨결에서 징비록을 얻는다. 역사의 흔적을 찾고 되새기는 이유이리라. 안온하고 평화로운 읍성이 오늘따라 든든해 보인다.

노랑나비도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지 몸짓이 바쁘다.

 

 

 

 

 

 

 

 

<우수상> 

 

꽃의 무게 - 금산 7백의총에서

이종섭(이종섶)

 

 

꽃이 활짝 필수록

점점 휘어지는 가지

꽃에도 무게가 있는 것이다

떨어지는 꽃을 붙잡으려고

가느다란 손을 내밀며

꽃의 뒤를 따라가는

가지들의 행렬

꽃의 마지막 길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가지마다

아찔한 꽃냄새가 말라간다

바닥에 부딪쳐 누워 있는

꽃들을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느끼는 통증

소름처럼 푸른 싹이 돋는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는 빈자리는

떨어진 꽃잎들이 남긴

맨발의 유서들

천 길 벼랑은 언제나

한 발짝 앞에 있었다

아픔을 잊으려고

바람을 찍어 휘갈기는

산 가지들의 울음

누워 있는 꽃들을 위해

조사를 쓰고 있다

제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 떨어진 꽃들

여기 잠들다

 

 

 

 

 

□ 당선소감

 

- 대상 수상자 손병걸

<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면 왜 눈물이 날까>

 

역사의 육하원칙 기술 방식은 간단하다. 그러나 간단한 문장 속 자간과 자간 사이에 숱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절절한 이야기가 있다. 순한 목숨이 나라를 지탱해온 소중한 진실이 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가 아니다. 오래된 과거가 우리의 미래다. 역사를 버리고 우리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백성을 버린 관리의 사조가 아닌 바로 민중 봉기의 역사가 그러하다. 작품을 쓰기 위해 나는 몇 줄짜리 역사 속 주인공들과 만남을 시도했다. 단연코, 짧지 않은 시간의 통증이 꿈틀거렸다. 시를 탈고하기까지 내내 몸이 아팠다. 안타까움과 복잡하게 얽힌 반성이었다. 몇 번의 꿈도 꾸었다. 꿈속에서 온몸에 생긴 칼자국이 쓰라렸고 솟구치는 피가 뜨거웠다. 끔찍한 전장 속에서 끝내 눈을 감는 의병들의 표정을 읽었다. 누구는 늙으신 어머니와 어린아이 그리고 입덧하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을 테고, 누구는 무기 삼은 괭이로 비알밭에서 캐다가 만 뿌리 열매를 떠올렸을 테고, 누구는 고향에 돌아가 마저 읽을 책 한 권을 떠올렸을 것이다. 순간, 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순한 얼굴의 농부였다. 올곧은 선비였다. 그러나 달빛을 품은 바람이 무심히 새벽 쪽으로 불고 돌무덤 즐비한 강가, 강물 위에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낭자했다. 꿈을 깬 아침이면, 나는 강가에서 오래된 궁금증 하나를 떠올렸다. 왜, 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면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가. 궁금증은 쉬이 풀렸다. 내가 볼 수 있는 하늘과 상쾌한 호흡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름 모를 뼈와 뼈가 흙이 되어 견고히 다져진 터전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서러운 역사가 역설적이게도 아름다운 풍광이었던 것이다. 새삼 절경의 의미를 일깨워준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의 일익 번창하심을 기원하며 부족한 작품을 큰마음으로 읽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프로필 : 1967년생/인천시/2005부산일보신춘문예등단/2008전국근로자문학상국회의장상/2011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인국무총리상/경희사이버대학원 석사

 

 

 - 우수상 수상자 김근혜

 

중독되어 간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면서 손을 뗄 수 없는 일입니다. 수필쓰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글이 되지 않아서 몸살을 앓을 땐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나를 발견하곤 놀라기도 합니다. 늘 미련이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아직 수필을 떠나보내지 못했나봅니다. 수필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침몰하는 꿈을 꾸면서도 글 판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절망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스스로를 추스르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칭찬 한마디 듣지 못하면서도 앙다물고 버터야 했던 일들이 어제이기도 합니다. 버틸 수 있다는 건 분명 중독일 것입니다. 이런 중독이라면 푹 빠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쁜 소식이 기운을 돋웁니다.

 

부족한 글을 선選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어깨에 무게가 더 실리지만 격려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저를 아는 모든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 62년생/대구시/대구행복의전화소장/제11회산림문화공모전 시, 수필 부문 대상(국무총리상)/제2회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동상

 

 

 

- 우수상 이종섭

<5월의 나뭇잎이 더욱 푸른 이유>

 

무성했던 한 시절을 살다가 메마른 채로 추운 겨울 지나 봄까지도 여전히 땅에 누워있거나 가지에 매달려 있는 마른 것들. 한 방울 남은 눈물의 기억마저 징발하는 찬바람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애처로움이 지난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뼈가 부러진 손으로 땅을 치고 있는 마른 풀들, 일년생 초목의 헐벗고 헐벗은 박피들의 깡마름, 나뭇가지에 달려 서걱서걱 목이 쉰 소리로 아직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잎사귀들, 그들 모두가 마음 편히 물러가지 못하는 모습과 그 시절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엉킨 철사 같던 검불들이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땅바닥에 엎드려 손톱이 깨지도록 흙을 움켜쥔 채 결코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던 덩굴들이 손에 힘을 빼기 시작했다. 어린 새싹들이 연둣빛 눈망울을 반짝이며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여쁜 제 새끼들을 기어이 보고 눈을 감고자함이었던가. 이제는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의 흔적을 지상에서 완전히 지울 마른 잎사귀와 덩굴들의 족적. 그리고 그들의 세대를 이어갈 새싹들의 푸른 행진. 세상은 그래서 살만한 것인가. 5월의 나뭇잎이 더욱 푸르다.

 

프로필 : 64년생/경기도고양시/필명:이종섶/2008대전일보신춘문예당선/수주문학상, 시흥문학상, 민들레예술문학상 등 수상

 

 

 

□ 심사평

 

제7회 중봉조헌문학상에도 많은 분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시 부문에 93명 472편, 수필부문에 63명 131편을 응모해주었다. 작품의 양이 반드시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작품 수 만큼이나 그 문학적 수준도 향상되었다는 평가이다. 다시 한번 중봉 선생을 기리는 이 역사적인 사업에 옥고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제7회를 계기로 중봉조헌문학상이 권위있는 문학상을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신인뿐만 아니라 기성문인의 참여가 대폭 늘었다. 수로만 따지면, 기성문인의 참여 수가 훨씬 많다고 하겠다. 변방의 조그만 문학상에 그렇게 많은 문인들과 문인 지망생에 찾아줄 지는 몰랐다. 짧은 기간 안에 눈에 띄게 발전한 것이다.

 

이번 응모의 특징은 중고등학생부터 나이 지긋한 어른신들까지 신인들의 문학적 패기도 상당했지만, 기성문인들이 원숙한 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기성문인 중에서는 중앙일간지와 지방신문 신문춘예를 통해 등단한 문인뿐만 아니라, 전국의 쟁쟁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문인들도 상당했다. 또 이미 여러 시집과 수필집을 출간해서 나름의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거나 문학지에 지속적으로 기고하는 등 왕성한 문단활동으로 자신의 문학적 지평을 확보하고 있는 분들도 많았던 것이다. 또한 지역적인 면에서도 중봉 선생과 직접 관련 있는 김포나 충청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에서 관심을 표명하였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작품이 답지하였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중봉 선생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와 현장답사를 통해 이를 현재화하는 작품이 매우 많았다는 점이다. 흔히 역사인물을 선양할 목적으로 하는 문학상의 경우, 목적의식이 불거져 문학성을 담보하기 어렵거나 얕은 역사성으로 그 인물의 겉모습만 과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는 사실의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솜씨가 단기간에 만든 작품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어서 심사위원 모두 경탄했던 것이다. 중봉 선생의 삶과 사상을 스스로 육화하는 과정에서 빚어낸 다양한 아픔과 그 극복의 언어를 펼쳐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심사하는 과정에서 몇 배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격론하는 과정에서 중봉 선생을 선양하는 의미가 더 커졌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작품을 읽는 내내 무척 가슴 뜨거워졌다는 것도 숨길 수 없다.

 

이번 문학상 공모는 중봉 선생만을 소재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봉 선생을 재료 삼은 작품들의 수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수상작을 그런 작품들에 한정하지는 않았다. 이 문학상이 경향각지의 숨어있는 문학의 고수를 호출하여, 문학을 보다 대중화, 일상화하려는 의도도 있으므로 중봉 선생을 다루지 않았다고 논외로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상 수상작을 결정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그 거친 토론 끝에 손병걸의 시 <의병의 편지1-이름 없는 뼈>로 결정하였다. 중봉 선생과 이름없는 뼈로 남은 의병의 생각과 의지와 몸은 분리할 수 없다. 중봉이 곧 이름없는 의병이고 이름없는 의병이 곧 중봉 선생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이름 없는 뼈로 누은 의병이 있다. 이 시는 죽음보다 치열한 전장에서 외롭게 쓸쓸하게 산화해 간 의병들을 위한 헌시(獻詩)다. 이름 한 자, 명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그러나 죽어서 역사의 주인공이 된 백성들을 위한 진혼곡인 것이다. 이 시에서 무엇보다 특기할 점은 이를 현재화하려는 노력에 있다. 그들의 삶과 현재 화자의 삶을 대비하면서 깊은 자기 성찰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상에는 김근혜의 수필 <벽>과 이종섭의 시 <꽃의 무게-금산7백의총에서>를 각각 선정하였다. 작년 수필부문은 응모된 작품 수에 비해 그 문학적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었으나, 이번의 경우에는 달랐다. 수준높은 작품들이 앞뒤를 다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봉 선생을 재료로 하여 형상화하는 솜씨는 여전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산문의 특성상 역사적 사료를 중심으로 이를 의미화하는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근혜의 <벽>은 기본적으로 수필이 가져야 할 필요덕목들이 잘 어울려 녹아있다. 일상화, 문학화, 의미화라는 3박자를 두루 갖추고 있는 수작이다. 화자의 일상에서 불거진 ‘벽’을 다의적인 의미로 활용하면서 일정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우수상으로 또 한편 결정한 것은 이종섭의 <꽃의 무게-금산7백의총에서>이다. 공교롭게도 우수상도 의병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시로 결정되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낙화하는 의병들의 의로운 죽음을 화자는 정제된 언어로 통감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이 중봉조헌문학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문학적 역량을 더욱 날카롭게 벼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성원해주신 문인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다.

 

 

출처 : 신춘문예공모나라
글쓴이 : copyzigi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