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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약통장/김다영

테오리아2 2014. 8. 2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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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통장

김다영


세상에는 온통 아파트 천지인데, 아파트는 우리 식구에게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다.
우리 다섯 식구가 처음 거주하게 된 아파트는 고모네 아파트였다. 고모 소유 아파트가 아니라, 고모네 4식구가 이미 살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 식구의 첫 집은 아주 초라한 단칸 월세 지하방이었기에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생각에 마냥 부푼 삼남매와는 다르게 엄마, 아빠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와 같은 형국이었다. 그저 이웃과의 헤어짐이 아쉬워서라고 생각했던 철없던 어린 날의 나…….
이사를 마친 첫날부터 군포의 48평 고급 아파트는 우리 집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방 5개 중 우리 방은 가장 작은 방 2개뿐이었다. 게다가 고모네 세탁, 청소, 젖먹이 딸 돌보기는 모두 엄마 차지였다. 아, 엄마가 고모네 식모를 하는 조건으로 아파트는 우리에게 곁을 조금 내준 것이었다.
고모나 고모부가 모질고 나쁜 분들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고모네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부터 온갖 소리 없는 수모들을 엄마는 입술을 깨물며 이겨냈다. 그 드넓은 집을 광이 나도록 쓸고 닦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사정을 아신 외삼촌이 한달음에 달려오셨다. 엄마의 몰골을 보시고는 가까스로 눈물을 삼키었다. 그 후 군포에서의 하루하루는 엄마, 아빠의 다툼과 눈물로 빚은 깨져버린 유리파편 같았다. 늘 같은 또래의 고모 아들에게 치여 살던 안쓰러운 내 남동생, 부쩍 말수가 줄고 늘 울던 울보 여동생, 돌이켜보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악몽 같은 3년 세월을 견디고 우리 식구는 군포에서 머나 먼 하남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엄마는 우리가 처음으로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된 그 아파트를 너무도 사랑했다. 군포에서와 똑같이 하는 일은 청소뿐인데도 엄마의 얼굴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 미술 전공자였던 막내 외삼촌은 우리 아파트 한쪽 창에 한지로 색색의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냈다. 그 창문 너머에 햇살이 들이치면 내뿜어지던 색의 향연들, 그건 잡을 수 없는 꿈의 한 조각이라서 그다지도 아름다웠을까? 아파트가 우리에게 그리 쉽게 곁을 내줄 리 없었다. 아빠의 사업이 철저하게 망했다. 엄마는 너무도 사랑하는 그 아파트를 지키려고 새벽에는 우유배달, 오후에는 아파트 청소부로 일했다. 같은 아파트의 고생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려도 엄마는 개의치 않았다. 너무도 고단했을 그 세월, 모든 것이 그 아파트 때문이었다.
아파트를 지키려는 엄마의 사투는 슬프게도 부질없었다. 온 집안에 차압 딱지가 붙은 것이다.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우르르 몰려오거나 새빨간 딱지를 덕지덕지 붙이는 드라마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슬프도록 조용하게 판결문이 낭독되고, 분홍빛 딱지가 사붓이 가구 위에 나려 앉았을 뿐…….
우리는 겨우 친척들이 급하게 마련해 준 월세 아파트에 잠시 거주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생이 된 우리 삼남매에게 가난은 청춘의 훈장이라기에는 지나친 서러움과 수치였다. 사이즈조차 비슷하지 않은 다 해진 교복, 급식비와 학비가 미납되어 우리 삼남매의 이름은 학급 게시판에 인두로 지진 주홍글씨처럼 박혀 있었다.
결국 엄마, 아빠는 아파트 보증금으로 작게 가게를 내기로 하고 그 작디작았던 아파트마저 포기했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첫 시작점이었던 월세 지하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슬픔조차 사치일 뿐이다. 엄마, 아빠는 우리 식구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기도하셨다. 그 말이 참 고맙다. 고난과 역경 속에 피붙이 버리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태 속에 우리 삼남매를 이렇게 길러내신 것만도 훌륭하다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아파트로 인해 많이 울고 아팠지만 난 그 끈을 아예 놓지는 않으련다. 26세 주택 청약통장에서 매달 나가는 2만원마저 아쉽지만 나는 이번에야말로 아파트가 우리에게 곁을 조금만 내주었으면 싶다. 정말 아주 조금만

출처 : 수필쓰기
글쓴이 : 주인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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