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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힘이 현실이 되는 것을 나는 출가 이후 줄곧 목격해온 셈이다. 그래서 가끔 무엇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생각이 곧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일체를 마음이 이룬다는 말을 이보다 분명하게 느낄 수는 없다.
노스님들이 말씀하시고는 하셨다. 함부로 남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단순하게 생각했다. 남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 나쁜 것 아닌가, 하는 정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 말은 진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화가 날 때도, 누군가에게 손해를 입어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악의를 품거나 엉뚱한 기도를 하지 않는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책을 내고 인세를 받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 출판사 사장을 거리에서 자주 만났다. 그는 언제나 곧 준다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공수표였다. 공수표를 수시로 날리는 그를 향해 나는 한 마디했다.
생각의 힘을 믿으면
우리는 함부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생각만을 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 행복한 삶의 모습 아닌가
생각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수행자를 그렇게 속이면 과보를 받게 된다”고. 그는 내게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는 인과를 아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행한 행위의 인과는 몰라도 타인이 자신에게 남길 인과의 두려움은 아는 것만 같았다.
그의 따지는 듯한 항변에 나는 말을 바꾸었다.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버세요” 라고 축원을 한 것이다. 축원을 하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는 아마 좀 더 있으면 돈도 많이 벌고 좋아질 것이다. 어찌 이 진심어린 축원이 헛되이 사라지 수 있겠는가.
언젠가 미얀마에 갔을 때 일이다. 해가 지는 양곤의 대탑 아래 앉아 미얀마에 자그마한 학교 하나를 짓고 그 곳을 평생 후원하고 싶다는 발원을 했다. 그 이후 나는 나의 발원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 그 발원을 다시 떠올린 것은 올해 정초 삼사순례를 갈 때였다.
그때 미얀마에서 내가 했던 발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신도님들을 모아놓고 미얀마에 학교를 짓자고 했다. 모두 다 찬성이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데 누군들 기쁘지 않겠는가. 그것도 남해에 있는 조그마한 절에서 미얀마라는 먼 나라에 학교를 짓는 일인데.
내가 진행 하고 있는 방송의 청취자들과 남해 용문사 신도님들이 그렇게 마음을 모아 미얀마에 학사 하나를 짓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삼년 전의 발원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는 생각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늘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간혹 부정적이고 원망의 마음이 들 때면 얼른 마음을 고쳐먹는다. 스스로 바보처럼 자신을 어렵게 몰아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절망이나 원망은 우리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생각의 무게를 우리가 감히 어떻게 감당해 낼 수가 있겠는가. 형상 없는 마음이 빚어내는 생각의 무게는 태산보다도 무겁지 않은가. 일이 잘 안 될 때에도 난 그것을 비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인과라면 당연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받아들인다. 그러면 마음이 이내 괜찮아진다.
생각의 힘을 믿으면 우리는 함부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좋은 생각만을 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 행복한 삶의 모습 아닌가. 생각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지금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