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식탁/김륭
새는 힘껏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발이 없는 것은 새가 아니다
오늘의 메뉴는 구두입니다
얼룩말은 제 몸의 얼룩이 다 지워질 때까지 달리고
박지성은 펄펄 등번호가 다 지워 질 때까지 달리고
사랑에 빠졌잖아요. 우리는, 발이 완전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달리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 놓은 곳 없지만
바람의 발바닥이 두근두근 날개로 부르틀 때까지
꽃의 나이를 캐물을 수 있을 때까지
달리고 달리겠지만
도대체 한 짝은 어디 간 거야?
포크로 발등을 찍습니다
식탁 위의 구두 한 짝이 움칠,
새를 토해냅니다
시단평 (김세영/시인)
새의 식탁/김륭(초기 발표 시)
새는 힘껏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발이 없는 것은 새가 아니다
오늘의 메뉴는 구두입니다
얼룩말은 제 몸의 얼룩이 다 지워질 때까지 달리고
박지성은 펄펄 등번호가 다 지워 질 때까지 달리고
사랑에 빠졌잖아요. 우리는, 발이 완전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달리 어디로 가야 할지 정해 놓은 곳 없지만
바람의 발바닥이 빨갛게 파랗게 노랗게 부르틀 때까지
그때까지만 우리 울지 말고
걸어요. 아무래도 구두는
새들이 걱정입니다. 내일의 메뉴는
날개입니다.
- 『현대시』(2009년 6월호)
새는 인간이 선망하는 존재이다. 인간이 신성시 하는 하늘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는 힘껏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발이 없는 것은 새가 아니다.”
즉, 새는 하늘을 나는 날개뿐만 아니라 땅위로 걷거나 나뭇가지에 서있을 수 있는 발도 가지고 있다.
발이 육체를 상징하고 날개는 정신을 상징한다면,
새는, 육체와 정신의 이원적 존재인 인간의 은유적 대상이 된다.
오늘의 현실에서 메뉴로 제공되는 구두는
지상을 걸어가야 하는 발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 실용적 도구이다.
사자에게 쫓기는 얼룩말의 질주는 바람에 ‘얼룩이 다 지워질’ 정도로 필사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박지성도 주전선수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등번호가 달아날’ 정도로 필사적으로 달려야 한다.
그래서 그는 달리는 산소탱크가 된 것이다.
사랑의 도피행각도 ‘발이 완전히 닳아 업어질 때까지’
어디로 가야할 지도 모른 채 밤길을 울지 말고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발바닥이 빨갛게 피가 나오고, 파랗게 멍이 들고, 노랗게 굳은 살 생길 때까지 걸어야 한다.
날기를 포기한 타조가 아니라면, 오늘 메뉴인 구두는 비상을 갈망하는 새들에게는 걱정거리이다.
옆에 붙어있는 “내일의 메뉴는 날개입니다” 라는 메뉴판이 구원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선택의 자유가 없이 구내식당에서만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
오늘의 메뉴가 구미에 맞지 않아도 내일의 메뉴가 마음에 들면 참고 먹을 수 있듯이.
세상의 구내식당 주방장들이여, 오늘과 내일의 메뉴를 선정할 때는,
하나님처럼 균형과 조화의 배려를 베푸시기를!
<미네르바> 2009년 가을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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