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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유씨의 목공소/권성훈
자음과 모음에 톱질을 시작했어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게
욕조에 1492 콜럼부스를 틀어놓고 등단 해
ㄱ자로 ㄴㄷㄹ ㅁㅂ ㅅ
목젖에서 꿈틀거리는 ㅇㅈ ㅊㅋ
혀를 막고 ㅌ ㅍ ㅎ 닿소리를 열네 토막 내는 거야
저항하다 둔기 맞은 자음의 입 안에
고여 있던 구절이 흘러나와 바닥에 닿으면
한꺼번에 잘려나간 모음의 내장이 터질 것 같아
ㅏㅑ하며 눈물짓는 받침을 ㅓㅕ 떼어낸
실밥 풀린 홀소리가 엎치락뒤치락
ㅗ ㅛ것 봐 언어의 살갗에 붙어 있다
켜켜이 떨어지는 나뭇잎의 잔말들
자꾸 의문을 던지는 것 같아
지워진 기억조차 차례로 지워야 했어
나이테의 ㅜ ㅠ 빛깔만 그루터기로 남을 때까지
연쇄로 쏟아지는 풍문을 대패질 하는 거야
어제 파 묻혔던 새벽이 삐걱 문을 열고 들어와
동강 난 음절로 절절하게 이슬 맺힌 어둠
헐렁해진 마지막* 가는, 문신을 ㅡ ㅣ새겨 넣을 줄이야
얼굴 없는 어근을 못질하는 유씨의 목공소에
관절 빠진 몸시(肉詩) 한 그루 널브러져 있다지.
—《다층》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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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 1970년 경북 영덕 출생.
경기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석사), 국어국문학과(박사).
2002년 계간 <문학마을> <문학과 의식>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아스팔트를 깨우는 비』『푸른 바다가재의 전화를 받다』등.
출처 : 시인의 형님
글쓴이 : 시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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