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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유씨의 목공소 /권성훈

테오리아2 2016. 1. 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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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좋은시 best 10>    유씨의 목공소/권성훈

 

자음과 모음에 톱질을 시작했어

비명이 새어 나가지 않게

욕조에 1492 콜럼부스를 틀어놓고 등단 해

ㄱ자로 ㄴㄷㄹ ㅁㅂ ㅅ

목젖에서 꿈틀거리는 ㅇㅈ ㅊㅋ

혀를 막고 ㅌ ㅍ ㅎ 닿소리를 열네 토막 내는 거야

저항하다 둔기 맞은 자음의 입 안에

고여 있던 구절이 흘러나와 바닥에 닿으면

한꺼번에 잘려나간 모음의 내장이 터질 것 같아

ㅏㅑ하며 눈물짓는 받침을 ㅓㅕ 떼어낸

실밥 풀린 홀소리가 엎치락뒤치락

ㅗ ㅛ것 봐 언어의 살갗에 붙어 있다

켜켜이 떨어지는 나뭇잎의 잔말들

자꾸 의문을 던지는 것 같아

지워진 기억조차 차례로 지워야 했어

나이테의 ㅜ ㅠ 빛깔만 그루터기로 남을 때까지

연쇄로 쏟아지는 풍문을 대패질 하는 거야

어제 파 묻혔던 새벽이 삐걱 문을 열고 들어와

동강 난 음절로 절절하게 이슬 맺힌 어둠

헐렁해진 마지막* 가는, 문신을 ㅡ ㅣ새겨 넣을 줄이야

얼굴 없는 어근을 못질하는 유씨의 목공소에

관절 빠진 몸시(肉詩) 한 그루 널브러져 있다지.

 

—《다층》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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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 1970년 경북 영덕 출생.

경기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석사), 국어국문학과(박사).

2002년 계간 <문학마을> <문학과 의식> <시조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아스팔트를 깨우는 비』『푸른 바다가재의 전화를 받다』등. 

 

 

 

출처 : 시인의 형님
글쓴이 : 시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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