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스크랩] 높은 집과 납작 집/이정임(대일산필 2010년 12월 9일자)

테오리아2 2013. 1. 11. 00:35
728x90

높은 집과 납작 집

 
이정임 수필가·청람수필문학회원
   스산한 바람이 분다. 내 마음이 스산하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주위에 불뚝불뚝 선 아파트들이 눈에 거슬린다.

 

   내가 이 집으로 이사 올 때만 하더라도 납작한 집들이 대부분인 주위 정경이 오순도순 정겨웠다. 한 블록만 나가면 큰 도로가 있어서 고만고만한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도시의 모습이 그다지 밉지는 않았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길 건너엔 지금 대구에서도 제일 높다는 50층의 아파트가 뽐내기라도 하는 양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마천루로 솟아 있다. 우리 집에서 그들을 바라보기라도 할라치면 고개를 90도 각도로 꺾어야만 한다. 길 건너뿐만이 아니다. 이젠 바로 옆의 납작 집도 재개발이란 미명 하에 수십 층이 올라갔다. 평범하던 집이 이젠 상대적으로 더 납작해졌다.

 

   건물이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오며 가며 목을 꺾어 꼭대기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사곤 했다. 소형 평수는 아예 없을뿐더러 중형 평수도 몇 가구가 안 된다니 나로선 언감생심 발도 못 부친다.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게 작은 나라에서 큰 것만 소유하고자 하는 과도한 욕망을 부린 대가인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그 멋진 건물이 이젠 애물단지가 된 것이다.

 

   해 질 녘이면 따뜻하고 은은한 불빛이 창을 장식하고 가족애 모락모락 식구들과 만찬을 나눌 시간이지만, 까맣게 먹칠한 문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을씨년스럽다. 요즘은 오다가다 집으로 들락거릴 때면 위로 꺾이던 목이 이젠 아래로 꺾인다.

 

   유럽이나 일본 등 우리보다 더 선진국인 나라들의 가옥구조와 화장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화장실은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공간밖에 없을 정도로 좁았고 부엌도 가사일 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외각지가 아닌 도시 중심에선 더군다나 더 협소하다. 최소 공간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철두철미한 절약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가족 중심이었던 우리의 문화가 언젠가부터 서서히 핵가족 중심이 되면서 가구당 식구가 얼마 되지 않는다. 큰 것만 중요시하다가 급기야 유례없는 미분양이란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건설 회사들은 과욕의 대가로 된통 혼이 나고 있는 실정이다.

 

   집이란 개인의 안식처이자 사람에게 기본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집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을 위해 존재하는 꼴이 되고 있다. 고급자재에다 지나치게 화려함이 그것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너무 화려한 것은 그 매력이 오래가지 못한다.

 

   좁고 낮지만 오랫동안 살던 집이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의 체취가 서려 있으며 몸에 맞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출처 : 청람수필
글쓴이 : 곽흥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