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이민
우리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이었다.
단지 그 사람의 어머니가 청상이시고 그 사람이 외아들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옛말에 외아들 둔 홀시어머니를 모실래, 아니면 맨손으로 바람벽을 오를래하면 맨손으로 바람벽을 오른다고 했다.”는 이해 못할 비유까지 들며 반대를 하셨다.
“난 모실 생각 없어요. 그냥 같이 사는 거지. 도대체 그게 무슨 문제람.”하면서 고집을 피웠고 결혼은 되었다.
한 집에 한 남자와 두 여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내 눈에 비친 현실에서 어머니는 여자였다. 내가 아내로서 예상했던 나의 일을, 나 이전에 이미 오랫동안 해 왔던 여자였다. 여자 나이 28살에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는 일점혈육인 자식의 그림자였다. 어디든, 무슨 일을 하든, 남편의 동선에는 어머니의 익숙한 그림자가 따라 붙어 다녔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무영탑이었다. 어떤 모양으로 따라 붙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나를 남편도 낯설어했다. 그림자로 따라 붙는 어머니의 역할을 오히려 편해 하였다.
싫었다. 내 남편과 하나인 어머니의 그림자가 싫었다. 그렇다 해도 남편에게 그런 내 생각을 말한다는 것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30해 이상 자신을 따라 다녔던 그 그림자가 제 그림자로 알고 있을 자신의 어머니요, 모든 것이었을 테니.
나는 점점 말없음표가 되어갔고 속으로 말라갔다. 마음으로 어머니를 가해하고, 어머니의 그림자를 잘라내는 백만 가지 상상을 매일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고해를 고해소에 하면서 상상 속에선 어머니를 가해했다. 그런 마음의 병을 내 몸이 못 이겨내 끝내는 첫 아이가 유산되고 말았다. 당연히 내 유산의 슬픔은 모두 어머니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 다음날, 난 어머니께 처음으로 싸움을 걸었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았다. 물론 어머니도 거기에 상응되는 말을 하셨다. 그러니까 그건 대화가 아니고 자리다툼 같은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왔을 때 우리 두 여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감정을 숨겼다. 난 그가 알면 제일 힘들 사람은 그 사람이겠다 싶은 아마도 사랑의 마음이었고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셨던 것 같았다. 며칠을 쉬지 않고 그런 싸움을 했다. 남편의 그림자 노릇은 이제 그만하시고 그 자리를 나에게 넘겨 달라고 했다. 그 자리는 이제 내가 평생 있을 자리이니 비켜 달라고 했다.
어머니가 무언가 부스스 무너져 내리는 표정을 지으셨으나, 난 어머니가 받았을 충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싸우면 친해진다고 했었나, 옛말에.
내가 뱉은 말들 중 일부씩 어머니가 고치시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어머니의 말이 곰곰이 삭혀졌고 역지사지의 맘이 많아졌다. 남편에게 나의 무례한 쌈 걸기를 전혀 말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신 것은 어머니가 먼저였다. 어색해서 쭈뼛거리시긴 했지만 조금씩 남편의 그림자 자리에서 물러서 주셨다. 나도 물론 쭈뼛거리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싸움이 아닌 대화의 말이 나왔고 차츰 마음의 벽도 무뎌져 간혹 벽을 못 느끼는 날도 생겼다.
며칠 지나면 다시 장정구 파마가 되어버릴 머리를 하러 내가 다니는 미용실로 모시고 간다든가, 외출 때 드라이를 해드린다든가, 이런 식의 스킨십을 해가며, 물론 가끔 후다닥 다툼도 했지만 그렇게 내가 결혼 전 친정 부모님께 했던 말대로, 모시는 게 아닌 같이 살아가는 걸 해나갔다. 싸우며 친해진 두 여자였다.
그러면서 몇 해를 살아내고 돌아보니 어느새 어머니는 나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시장을 가든, 아이 병원엘 가든, 아예 내 꼬랑지에 바짝 따라 붙는 밀착 그림자. 이상한 일이었다. 자식의 뒤를 쫓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분명 칙칙하고 어두워 보였었는데, 내 뒤에 숨어 있다가 들킨 어머니의 그림자는 밝게 깔깔 웃는 듯 보였다.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외롭고 무서웠을 게 뻔했다.
28살에 남편을 잃고 다음 해에 둘째 아들을 잃은 여자의 절대적 외로움이 숨을 곳은 어린 자식의 등 뒤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그림자를 남편에게서 떼어내려 어머니에게 가했던 실제의, 또 상상 속의 말, 위악들이 창피하고 미안했다.
이맘때가 되면 생각이 많이 난다. 죽는다는 건 절대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보고 싶다. 남편에게 들러붙어 있는 그림자 어머니라고 해도 절대로 밉지 않을 것 같다.
나도 이미 내 자식의 그림자 노릇을 내 자식이 익숙해하도록 철저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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