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수필 방

바다의 변주곡 / 김백윤

테오리아2 2022. 2. 2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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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돌변했다. 성난 파도가 하얀 거품을 토해낸다. 억누르고 있던 화를 뿜어내듯 거침없이 엉키고 달려든다. 바위를 부수어버릴 듯 인정사정없다. 한낱 평평하던 물의 알갱이들이 수평을 거스른 채 수직으로 몸을 세운다. 꼿꼿하고 팽팽하게 일어선 물이 화살처럼 허공을 뚫고 솟구친다. 거대한 물기둥은 포효하는 짐승 같다. 금방이라도 모든 걸 삼켜버릴 기세다.

 

바위는 몸을 낮춘다. 대항할 수 없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듯 묵묵히 버틴다. 파도가 할퀸 몸에는 검은 길이 수천 갈래다. 상처가 아물고 덧나기를 반복하는 사이 짠 기운은 화석으로 남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다는 잔잔했다. 특히 아침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품을 듯한 아늑함과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파도가 일렁일 때는 메밀꽃 핀 들판 같기도 했고, 벚꽃 이파리 휘날리는 꽃그늘도 같았다. 동그란 물의 입자들은 속살거리며 반짝였다. 미풍은 물결의 오선지를 달리고 음표는 그리움과 낭만을 노래했다. 가만 보기만 해도 가슴속으로 밀려와 파란 물감을 부려놓았다. 하지만 그 안에 성난 울음을 담고 있었던 것일까.

 

빛의 밝기에 따라 순간순간 변하는 물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그림처럼 때로 신비로웠다. 새벽과 해 질 녘에는 붉은빛의 성전을 떠올리게 했다. 한낮의 태양 빛을 머금었을 때는 또 어떤가. 빛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원초적인 흰색은 눈부심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바다는 수시로 얼굴을 바꿨다.

 

파도가 잔잔해진 뒤 바위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핀다. 악몽의 시간을 보냈지만, 상처를 돌아보며 삶의 의지를 다진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한 것일까. 아니, 그건 바다가 가르쳐준 교훈일지도 모른다. 긴장할 필요도, 경계할 필요도 없는 삶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입체적이 아닌 평면적인 삶은 고루하다.

 

인생도 파도와 바위처럼 다양한 변주곡으로 다가온다. 뜻하지 않은 불행 앞에 내쳐지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할 때도 있다. 때로는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좌절 앞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가끔 생각 없이 목덜미를 만지다가 흉터 때문에 깜짝 놀라곤 한다. 수없이 해가 바뀌었음에도 흉터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겉으로 만져지는 이질적인 감각 때문이 아니라, 당시에 느꼈던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목을 드러내놓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한때는 흉터를 감추고 다녔다. 남들이 뜨악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싫어서였다. 늘 목이 긴 옷을 입었다. 그러다 보니 윗옷을 벗었을 때 차가운 바람이 목에 스치면 오싹 소름이 돋았다.

 

45년 전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총기의 결함으로 총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부대가 발칵 뒤집힐 정도의 큰 사고였다. 총알이 목을 꿰뚫고 지나간 바람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실려 갔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목을 다치는 바람에 신경이 손상되었다고 했다.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보니 인생이 끝났다는 좌절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한탄하며 울부짖었다. 놀라서 달려온 어머니의 통곡이 가슴을 저몄다. 망가진 아들을 봐야 했을 당시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얼얼하다. 어머니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에 힘입어 한동안 포기했던 마음을 접고 적극적으로 물리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뼈를 깎는 고통이 이어졌다. 그러나 차츰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걷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타올랐다. 살고 싶다는 절박한 심정은 내 안에 있던 안간힘을 끌어올렸다. 걸을 수 있게 되기까지 좌절과 고통에서 헤매던 시간이 기억 속에 퇴적물처럼 쌓였다. 전역 후에도 왼쪽 팔이 자유롭지 못했다. 팔의 불편을 느낄 때마다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수없이 받아들이는 연습만이 길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큰 불편함 없이 팔을 사용하고 있다. 총상 사고를 통해 인생의 파도와 맞서는 법을 배운 셈이다. 고난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자신의 힘을 기를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진지하고 절박했던 그때가 삶의 전환점이었다.

 

파도에 온몸을 내어주지만, 바위는 쓰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시련 앞에 비틀거리지만 꿋꿋하게 견뎌내고 나면 생의 진리를 깨닫는다. 몸과 마음으로 터득하기까지 삶은 대충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한다.

 

잔잔해진 바다 위로 삽상한 바람이 분다. 햇살은 물방울과의 유희를 즐기고 시나브로 바다는 순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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