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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母情

테오리아2 2014. 4. 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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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母情

 정 원 정

 

 모정母情! 화제畵題가 가슴을 몽클하게 했다. 그림 앞에 섰다.

서양화 30호에 어미 소 얼굴과 어깻죽지의 목덜미가 우람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 옆에는 새끼소가 기운 없이 주저앉은 채 몸통 반만 들어내고 있다. 서로의 얼굴이 맞닿아 애처롭게 부비는 조화로운 배치로 화폭 가득 담겨진 수채화다. 배경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단순 살아 있는 듯, 소 두 마리의 얼굴이 시선을 확 끌어당긴다. 화폭에서 잘려나간 큰 몸통은 상상으로 볼 뿐이다. 시 한 줄이 퍼뜩 떠오른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아 났다. ‘ 백석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더수구니를 길게 숙인 어미 소의 이마에는 두 개의 뿔이 나란히 뿌장귀처럼 솟아 있다. 위용을 제법 돋보이게 하는 눌눌한 면모面毛가 얼굴에 잘 고루 갖추었건만 눈매는 슬퍼 보였다.

 어미 소의 주둥이가 새끼 소 옆얼굴을 조심히 더듬고 있다. 갓 태어난 듯. 아직 양수도 채 마르지 않은 새끼소를 핥아 줄 태세이다. 금방 어미 소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가야! 수고 했다.”

따뜻하게 귀엣말로 소곤대는 표정이기도 하다.

  그 눈빛이 퍽이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해 보인다. 소의 산방産房에는 가리개도 없고 어디서 가져다 풀어놓았는지 푸석한 검불만 부스럭대며 깔려 있다. 그 게 소에게는 폭신한 자리겠거니 짐작하면서도 왠지 가난해 보인다. 수놈의 거주지居住地는 어디일까? 어미 소 혼자 새끼를 출산한 모양이다. 무척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언젠가 수놈과의 흘레를 치르니 종족을 잉태하였을 터이다. 열 달 내내 뱃속에서 자라서 어미 몸 밖으로 생명을 지닌 채 나온 아가소가 유다르게 높고 신비감을 자아낸다. 어미의 산도를 통과할 때 얼마나 무서웠으랴. 또 엄마는 산통이 얼마나 지독했을까? 

 어디선가 막 수놈의 영각소리가 전해 올 법 한데 아무데서도 기척이 없다. ‘이제 몸을 잘 풀었소?  수고 했소이다.“   이 한 마디의 안부가 있었던들 저리 눈매가 슬픔 가득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면, 어미의 생이 고달프듯, 새끼소의 살아갈 길을 내다보고 슬픈 얼굴을 하는지 모르겠다. 엉뚱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다시 보니 지극히 따스한 사랑을 품고 송아지를 살피는 눈빛이다.

  용케 한 장면을 포착해서 ‘모정母情’으로 표출해 낸 화가의 솜씨가 경이롭다.

 이 우주 안에 나를 가장 아끼고 이해하는 건 어머니가 나를 아끼는 모정이 아니었을까?  지나온 세월에서 한창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좌절하기를 몇 번, 그때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정 때문에 생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다시 힘을 냈다. 반면 팍팍한 세상에서 내 아이들을 보고 희망을 찾고 미래의 꿈을 키우기도 했었다.

 모정! 참 가슴 뛰게 하는 따뜻한 말이다. 이 그림을 직접 보기 전 ‘모정母情’이란 화제畵題를 접하고서 가슴이 꽉 차는 감동을 느꼈었다. 나는 지금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서 눈물 나게 경이로운 모정母情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소는 어떤 집짐승보다 모자간의 정이 남다르다고 한다.


  2010년 겨울 무렵, 전국이 구제역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소들을 살처분하던 현장에 참가했던 한 축산 전문가의 이야기란다. 어느 신문 기자의 소개 글이다.

 어미 소를  안락사 시키려고 근이완제 석시콜린을 주입하는 순간 금방 태어난 듯한 송아지는 어미 소의 고통을 알 리가 없었다. 새끼소는 어미 소 곁으로 다가와 젖을 달라며 보채기 시작했다. 소마다 약에 반응이 나타나는 시간이 다르긴 하지만 대개 10초에서 1분 사이 숨을 거두는데 어미 소는 태연히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30초, 1분…….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어미 소는 다리를 부르르 떨기 시작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2,3분이  흘렀을까. 새끼가 젖을 떼자 어미 소는 털썩 쓸어졌고 영문을 모르는 송아지는 어미 소 곁을 계속 맴돌았다. 결국 살처분 대상인 송아지도 어미 곁에 나란히 묻혔다고 한다.


 이 세상을 사랑으로 감싸시는 하느님은 어쩌다 휴식이 필요해서 잠시 쉬실 때가 있다면 아마 그 자리에 모정이란 지극히 따뜻한 사랑을 대신하게 하셨을 것 같다. 그늘진 구석까지 모정을 흐르게 풀어놓고 세상은 참 아름답다 하셨을 것이다. 사람만이 아닌 짐승에게도 모정은 속속들이 부여해 주셨나 보다.

 온고을 미술대전에서 우수상으로 빛난‘모정母情’은 오래 가슴 저리도록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그 그림은 화가의 거실 벽에 모셔져서 바라 볼 때마다 내면 깊숙이 삶의 풍요가 음악처럼 흘러넘칠 것이다. 인생길에서 혹여 바람 부는 날이면, 섬세하게 털 한 올, 한 가닥도 소홀한 점 없이 감동을 자아내게 그려진 이 그림 앞에 서 볼 일이다. 붓질 하나하나의 흔적에서 환희의 물줄기가 솟을 것이다. 몇 달을 그 그림에 정성을 쏟았을 화가에게 정중히 머리 숙여 존경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이 그림에 화가의 혼신을 쏟아 붓지  않았던들 보는 이에게 어떻게 이처럼 긴 감동이 여울져 왔겠는가?

2011.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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